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용 Dec 31. 2019

절주(節酒)의 이유


내가 술을 배운 이유는 무척 소심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무 살의 나는 벙어리처럼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도 못했다. 그러나 술을 마시면 어깨에 들어간 힘이 빠지고 긴장이 풀렸다. 긴장이 풀리니까 꾹꾹 참아왔던 말을 쏟아낼 수 있었다. 이를테면 동기들에게 먼저 다가가 스스럼없이 어울린다던가, 무서운 남자 선배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시시한 농담을 던질 수도 있었다. 다음날 술이 깨면 나는 다시 벙어리에 부끄럼쟁이가 됐다. 그래서 나는 매일 수업이 끝나는 대로 술자리를 찾았다.


자제를 몰랐던 나는 걸핏하면 필름이 끊겼다. 정신을 차려보면 기숙사 침대일 때도 있었고, 친구의 자취방일 때도 있었고, 왕십리 골목일 때도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뒷머리에 혹이 있거나 팔꿈치에 생채기가 나있을 때도 있었다. 간밤에 기억에 없는 통화기록이 남아있을 때도 있었다. 핸드폰이나 지갑은 잃어버리기 일쑤여서 애초에 비싼 걸 사지도 않았다. 매일 아침이면 동기들에게 '나 어제 실수한 거 없었지?'라고 묻는 것이 일상처럼 되었다.


아버지는 '너는 술 마실 자격(資格)이 없다.'라고 내게 말하고는 했다. 그때마다 나는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바로잡지 못했다. 나에게는 현실의 수치스러움보다 취한 상태에서 얻는 마음의 자유가 더 컸다. 내가 그토록 술을 갈구했던 이유는 스물몇 살인 처지에 너무나도 큰 감정의 응어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움과 분노, 좌절과 자기혐오, 불안과 고통이 지층처럼 겹겹이 가슴에 쌓여왔다. 그 응어리가 어찌나 단단한지 모두 녹여내리는 데 대략 십 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지금에 와서 술을 통제할 수 있게 된 요인은 세 가지다. 첫째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이고, 둘째는 더 이상 체력이 받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언제든 내 속의 감정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백 번 넘어지기를 반복하고 스스로를 상처 내면서 얻은 결과였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술로 인해 걱정을 끼치거나 힘들게 만든 사람이 많다. 당시 철없고 어린 나의 행동을 받아주고 넘어가 준 이들에게 그저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언젠가 만나 맥주 한잔 할 수 있다면, 나는 이제 술을 마시지 않아도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누구도 묻지 않은 고백을 하고 싶다.






제가 쓴 글과 브런치 글, 음악 추천을 메일로 보내주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서 저의 메일레터를 무료로 구독해보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에세이를 읽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