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용 Mar 02. 2022

봄볕 아래에서


1.

요즘은 어느 때보다 마음이 좋다. 모든 면에서 나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나를 괴롭히던 막연한 조급함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견딜 수 있겠다는 초연한 마음도 생겼다. 이 모든 변화가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 삶은 이제 막 어지럽고 혹독한 겨울을 지나 완연한 봄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

어제는 잠들기 전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어.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튜브에 의지한 채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 거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계속 나아가고 있어.' 그런 기분에 휩싸이자 갑자기 몸이 긴장되고 식은땀이 흘렀다.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스스로 대답했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면 어때. 지금까지도 정처 없이 잘 헤쳐나갔잖아. 그럼에도 돌아보면 꽤 만족스러운 삶이었어. 나는 앞으로의 삶도 그럴 것이라고 믿어.' 그러자 스르르 긴장이 풀리고 이내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깊은 잠에 들었다.


3.

오늘 아침에는 아스팔트 위에서 봄볕을 발견했다. 그것은 분명 봄볕이었다. 겨울의 볕과 봄볕 사이에는 선명하게 구분될 수 있는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햇빛의 색감과 온도, 주변 공기의 습도와 냄새, 길 위에 반사되는 정도, 내리쬐는 기운, 그 아래서 사람들이 걷는 속도와 표정은 사뭇 다르다.


봄볕 아래서는 천천히 걷게 된다. 봄볕 아래서는 밝은 노래를 듣게 된다. 봄볕 아래서는 더 작은 것들을 살피게 된다. 봄볕 아래서는 지나간 사람보다 다가올 사람을 생각한다. 길 고양이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불안도 봄볕 아래서는 가만해졌다.





제가 쓴 에세이와 글, 음악 추천을 메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서 뉴스레터를 구독해보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그럼에도 살아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