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이 돼서야 나에게 조금씩 익숙해졌다.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지나고, 직장과 일이 견딜만해지고, 성격과 취향도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다양한 사람과 별의별 사건을 겪고 나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사용 설명서를 적을 수 있을 만큼 내가 단순하게 작동한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내가 나라는 사실에 익숙해지면 좋은 점이 있다. 문득 고장이 났을 때, 조치를 취하고 복구하는 일에 능숙해진다. 어떤 증상을 발견하면 수년간의 경험으로 알아낸, 가장 효과적인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마치 삼십 년 된 자전거 수리점의 사장님이 자전거를 쓱 둘러보고는 어긋난 부분을 금세 고쳐내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나는 무기력해질 때마다 종합격투기 경기 영상을 본다. 처음에 두 선수는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케이지 안에 들어선다.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종이 울리면 그들은 최선을 다해 서로를 무너뜨리려고 애쓴다. 거친 호흡과 파열음,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마침내 경기가 끝나면 둘은 뜨겁게 포옹한다. 판정 끝에 승리한 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패배한 자는 아쉬움에 고개를 떨군다. 나는 이런 치열한 승부를 볼 때마다 몸이 달구어지고 삶에 대한 의욕이 되살아났다. 무력감을 잊고 금방 해야 할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자존감을 높이고 싶을 때는 위스키를 온더락으로 마신다. 평소에는 탄산음료로 가득 채운 잔에 위스키를 쪼르륵 넣어 만든 달달한 하이볼을 좋아한다. 하지만 얕은 잔에 크고 둥근 얼음을 넣고 위스키를 따라 마시면 거친 알코올과 피트 향, 씁쓸하고 들쩍지근한 카라멜 단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런 하드보일드한 맛과 향은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조금 유치한 이야기지만, 나는 대학가 중국집에서 이과두주를 시켰던 날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걸 처음 깨달았더랬다.
마음이 답답할 때는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듣는다. 울고 싶을 때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본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산책을 한다. 자만심이 들 때는 거울을 본다. 멈춰있다고 생각될 때는 지난 일기를 읽는다. 후회스러울 때는 광활한 우주에 대해 생각한다. 바다에 가면 언제나 차분해졌고 마음이 일렁였다.
나는 여전히 나에 대해 배워가는 중이다. 그리고 내가 나라는 것이 아주 조금씩 마음에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