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이에요
가기 전에 가장 고민을 하고 가는 곳이 아닐까 싶다. 미용실. 주기적으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완전히 스타일을 바꾸는 경우가 아니면 잘 가지 않으려고 한다. ‘헤완얼’이라는 말도 있듯이 머리 스타일이 달라진다고 외모가 크게 급상승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완벽한 머리 스타일이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 미용실이나 가서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다는 것도 있다. 머리카락을 자를 때 무엇보다도 헤어 디자이너가 나를 얼마 큼이나 아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맡기기 어렵다. 나를 잘 모르는 디자이너 분에게 맡겼다가 (물론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겠지만) 어떤 머리 모양으로 집에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가는 곳만 가게 되고, 만나는 헤어 디자이너만 만나게 되고, 하던 헤어 스타일만 계속하게 된다. 참 그 어떤 것보다 도전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나와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미용실은 두 군데가 있다. 한 군데는 우리 엄마가 소개해준 곳이고, 다른 곳은 친구가 소개해준 곳이다. 각 미용실마다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 미용실은 커트를 아주 현란하게 잘해주시고, 두 번째 미용실은 약을 순한 걸 쓰신다. 나는 대체로 미용실에 가서 조용히 있는 편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보면 ‘내향형’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냥 빨리 자르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는 미용실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 듣고 있다 보면 어떻게 저런 것까지 서로 알고 있지 싶을 정도로 알고 계신다. (예를 들면, 딸이 결혼을 했는지, 집이 이사를 어디로 갔는지, 얼마 전에 뭘 추천받아 샀는지까지...) 나는 그런 와중에 끼기가 어려워, 조용히 머리카락만 자르고 간다.
그런데 얼마 전에 두 번째 미용실을 방문했을 때는 좀 달랐다. 오랜만에 간 것이기도 했고, 파마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화를 터두지 않으면 약 3시간 동안 불편할 것이라는 걸 미리 알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머리카락을 감고 딱 자리에 앉았는데, 원장님이 TV를 켜주셨고, TV에서는 <최고의 요리비결>이 방영되고 있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그 프로그램을 꽤 좋아하는데, 이번엔 중식 편이었다. 중화요리사가 나와서 아주 손쉽게 요리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런 거 집에서 해 먹어보면 맛있겠어요.’ ‘해 먹어 봤는데, 맛있더라.’ ‘저렇게 누가 재료를 미리 손질해놔 주면 좋겠다’ ‘그러게요, 설거지까지 누가 해줬으면 좋겠네요’ 등의 대화를 나누며 원장님은 일에, 나는 TV에 집중했다. 잠시 후 오신 할머니 손님까지 합세해 우리 셋은 TV를 보며 요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김장철이어서 TV에서는 시골에서 사람들이 모여 김장하는 장면이 나왔고, 원장님께서는 ‘김장,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내 머리카락을 돌돌 말면서 강의해 주셨다. 할머니께서는 새우젓은 육젓을 써야 한다, 양념을 사이사이 잘 발라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김장을 스스로 해본 적은 없기에 메모라도 해야 할 것 같았고, 나는 3시간 동안 다양한 요리 비결을 구두로 전수받았다.
대부분 어느 정도 신뢰관계가 구축된 사람들만 모이는 미용실은 하나의 작은 클럽 같다. 어쩌면 취향이 비슷한, 원장님과 결이 맞는, 그래서 내 머리카락을 맘 놓고 맡길 수 있다는 사람들만 오는 곳이 아닐까 싶다. 마음을 열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은 요즘이다. 그래서, 한번 마음을 준 곳은 소중하고,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