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로
나는 두부를 꽤나 좋아한다. 두부는 왠지 평온하고, 조용하고, 수더분하다. 만드는 과정조차도 거칠지 않고 부드럽다. 살살 다루지 않으면 쉽사리 깨지기 때문에 고요하고 안정감 있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먹은 두부 중에 가장 맛있었던 두부는 허겁지겁 먹은 두부다. 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는 수학여행을 각 반이 알아서 짜서 가야 했는데, 우리 담임 선생님은 영주 쪽으로 수학 여행지를 정하셨다. 그곳에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다양한 체험도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은 두부 만들기 체험이었다. 어르신들이 두부를 만드실 때 옆에서 도와드리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두부 만드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 좋았다. 고생했다고 밥을 주셨는데, 갓 만든 두부에 김치였다. 두부도 투박하게 자른 애들을 국그릇에 담아주셨는데, 그냥 먹어도 어찌나 고소하고 맛있던지. 김치와 먹으니까 환상의 궁합이었다. 그때 술을 마실 수 있었다면 막걸리 한 잔 따악... 했으면 좋았을 텐데 고등학생이었다는 게 아쉽다. 갓 만든 두부를 먹어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집에서 두부를 만드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런 시골에 가서야 먹을 수 있는 거다. 그때부터 두부를 좋아하기 시작했나 보다.
순두부도 좋아하는데, 회사 근처에 있는 순두부 집은 순두부를 시키면 두부를 마음대로 퍼다 먹을 수 있다. 거기에 간장을 뿌려 먹는데, 난 시킨 순두부찌개보다 그게 더 맛있다. 그것만 먹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난 콩물도 좋아하는데, 이영자가 TV에 나와서 마신 콩물 집이 우리 동네에 생기자 초반엔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요즘은 방문 빈도가 조금 줄긴 했지만 말이다.
순두부로 할 수 있는 요리 중 최강자가 요즘 등장했다. 바로 순두부 열라면이다. 조합이 기가 막힌다. 아는 언니네 집에 가서 처음으로 먹어봤는데, 뭐랄까, 왜 처음부터 순두부 열라면이 아니니 싶을 정도로 완벽했으며, 열라면엔 원래 순두부가 들어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최근에도 끓여 먹었는데, 수프를 풀고 순두부를 넣어주는 게 팁이다. 순두부에 수프가 좀 배어들어간 다음에 라면을 넣어줘야 한다. 생각보다 순두부에 맛을 입히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달걀 하나 탁 풀어주면 금상첨화 화룡점정이다. 다른 라면에는 넣어먹어 본 적이 없으나, 열라면만큼 맛있을 것 같지는 않다.
두부 같은 사람을 좋아한 적도 있다. 얼마간이었지만, 두부 같은 사람 정말 무해할 것 같지 않은가? 내 말도 잘 들어주고 왠지 다정다감까지는 아니어도 무심할 것 같지는 않다. 어디에나 잘 어울리지만 본인의 색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을 조심스럽게 다뤄주는 만큼 남들에게도 조심스럽게 다가갈 것 같다. 두부 같은 사람, 찾기 쉽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