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대한민국 전역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편지봉투가 배송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정부는 긴급 발송한 안내 문자를 통해 편지봉투를 절대 개봉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봉투를 받은 국민은 대테러 센터 또는 경찰서에 신고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상한 날이었다. 우체국에서도, 택배회사에서도 배송한 적이 없는 편지봉투가 수만 가구에 전달되었다.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이를 소셜 미디어에 올렸고, 이후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자신도 비슷한 것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 둘씩 등장했다. 그들이 받은 것은 동일한 편지봉투였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봉투, 그렇지만 묘하게 반짝이는 푸른빛이 감돌았다. 한 아파트에서도 받은 사람이 있고 받지 않은 사람이 있었기에 이를 표적 테러로 여기고 공포에 떠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신고 절차는 간단했다. 신고자가 편지봉투 사진을 찍어 보내고 주소를 입력하면 대테러센터에서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편지봉투를 수거해갔다. 그러나 수만 건이나 되었기 때문에, 이를 모두 수거하는 데에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봉투가 모였고, 모인 봉투의 개수는 1만 3천 3백 4십 2개였다.
대테러센터는 그렇게 모인 봉투 중 몇 개의 검체를 선정해 열어보기로 했다. 새하얀 방호복을 입고, 새하얀 무균실에 들어간 대원이 푸른빛이 도는 흰 봉투를 집어 들었다. 무균실 밖 대기실에서는 다른 대원들과 센터장, 그리고 국무총리까지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대원이 봉투를 열자 종이 한 장이 나왔다. 봉투 안을 살펴보며 다른 물질이 있는지 확인하는 대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가 봉투 안을 면봉으로 쓸어 독극물 검사 키트에 넣었다. 이를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대기실의 사람들.
“저 종이에 뭐가 쓰여 있는 거 같은데?” 국무총리가 센터장을 보며 말했다. 총리의 말에 센터장이 무균실의 스피커와 연결된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 종이…….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좀 읽어보지?”
무균실 안의 대원이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알겠다는 표시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가 무균실 밖의 스피커와 연결된 마이크로 다가갔다. 벽에 붙어 있는 소형 마이크는 옆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작동하는 것이었다. 왼손에 편지지를 들고 오른손으로 버튼을 누르는 대원.
“읽겠습니다.” 대원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무균실 밖의 사람들이 긴장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무균실 밖의 사람들의 미간이 좁아졌다. 자신이 방금 들은 것이 맞나 싶어서 스피커에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대는 사람도 있었다. 하얀 방 안의 대원이 다시 흰 종이를 읽기 시작했다.
엄마, 너무 슬프지는 않았기를 바라.
갑작스러웠겠지만,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걸.
엄마도 알지?
혼자라서 힘들겠지만, 엄마가 건강히 잘 지냈으면 좋겠어.
그리고 혹시 서랍 밑에 붙여둔 내 비상금 찾았어?
나중에 여행 가려고 모은 돈인데...
혹시 찾으면 엄마가 써. 여행도 다니고 해. 재밌는 일도 많이 하고.
언젠가 혹시 다시 만나면 웃으면서 보자.
엄마 사랑해. 미연이가.
예상하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편지를 끝까지 꿋꿋하게 낭독한 대원이 고개를 돌려 무균실 밖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정말 그 내용이 맞나?”
센터장이 무균실과 대기실 사이의 유리창에 얼굴을 갖다 댔다. 무균실 안 대원이 편지지를 들고 유리창 쪽으로 향했다. 그가 편지지를 쫙 펴서 유리창에 붙였다. 대기실 안 사람들이 편지를 웅얼대며 혼잣말로 읽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내용이야?”
“돈을 요구하는 걸까요? 비상금 얘기를 하는 걸로 봐서.”
“무슨…….”
“이게 도대체 어디에서 온 편집니까?”
총리가 답답한 듯이 센터장을 보았다. 센터장은 자신도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장난으로 쓴 편지 같은 거 아닐까요?” 옆에 있던 직원이 입을 열었다.
“장난 편지?”
“장난 전화 같이요. 편지를 무작위로 보낸 거죠. 무슨 사연을 써서.”
“왜 그런 짓을…….”
“모르죠, 뭐. 무슨 카드사 마케팅, 혹시 그런 거 아닐까 싶은데요?”
“뭐어? 카드사?” 국무총리가 뒷목을 잡았다.
“전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이딴 짓거리를 하는 미친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아주 잡히기만 해!”
대기실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편지에 대해 떠들고 있는 동안 무균실 안의 대원은 그저 편지지를 들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들이 마이크를 켜지 않았기에 무균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가 다시 확인한 독극물 검사기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대원은 편지지를 다시 편지봉투에 넣었다. 한참을 떠들던 대기실 안의 사람들은 뒤늦게 무균실 안 대원의 존재를 알아채고 그에게 나오라고 손짓했다.
“총리님, 그, 저 편지봉투들은 다 어떻게 할까요?”
“마케팅이고 뭐고……. 어쨌든 간에 쓰레기니까 봉투까지 싹 다 태워 버리자고. 뭐 검출된 것도 없잖아?”
“그렇긴 하죠.”
“알아서 해, 그럼. 아오 바빠 죽겠는데, 정말.”
“총리님, 그럼 대국민 발표는…….”
“그건 검체 결과 나오면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총리가 먼저 대기실 문을 열고 나가고, 그의 수행비서 둘이 뒤를 따랐다. 센터장은 직원들에게 무작위로 표본 검체 몇 개를 더 확인해보고,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으면 3일 뒤에 소각을 진행하자고 했다. 그렇게 그들은 조금은 허탈한 편지지 내용에 뭐 더 말을 붙일 것도 없이 대기실을 빠져 나갔다.
수많은 국민들에게 배송된 1만 3천 3백 4십 2개의 봉투가 대테러센터 창고에 쌓여 있는 그 때, 수거되지 않은 단 하나의 봉투가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작은 단독 주택 마룻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추레한 행색의 남자, 차영이 앉아 있었다. 편지봉투를 발견한 그는 신고하지 않고 집으로 몰래 가지고 들어왔다. 이 집은 그의 어머니가 홀로 살던 집이었다. 앞마당이 있는 작은 단독주택으로,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앞마당이 울긋불긋한 꽃들로 가득했었다. 이곳은 모든 것을 포기한 차영이 찾아 돌아온 곳이었다. 서른일곱 살의 그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다. 인생에서 대부분의 일에 실패했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실패했다. 아니, 어쩌면 시도조차 한 적이 없을지도 몰랐다. 그는 그래도 마지막으로 어린 시절 살았던 집에서 포근했던 품, 따뜻했던 기억을 조금이라도 되찾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없는 집은 집이 아니었다.
1년 전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머릿속을 가장 먼저 스친 생각은 그녀가 드디어 자신을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둘만 남게 되자 어머니는 장남인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일궈 온 과수원을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넘기게 되었을 때도, 이 때문에 그녀를 볼 낯이 없어진 그가 친구 따라 서울로 갔다가 도박에 빠져 돈을 다 잃게 되었을 때도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기대했다. 그리고 이런 맹목적인 기대는 그에게는 무겁디무거운 부담이었다. 그가 어머니와 절연을 생각한 것은 그저 한 마디 말 때문이었다.
‘우리 아들은 잘 될 거야.’
그는 이 근거 없는 기대가, 대가 없는 희망이 싫었다.
그렇게 기대와 희망이 사라진 이 집에서 그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고, 그의 단 한 가지 걱정은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어머니가 서 계실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수선하고도 복잡한 마음을 안고 슈퍼에 갔다 온 그가 발견한 것은 우편함에 꽂혀 있는 푸른빛이 감도는 하얀 편지봉투였다. 슈퍼에서 번개탄을 살 때 봤던 뉴스가 떠올랐다. 여러 사람들 집에 편지봉투가 배달되었다고, 독극물이 들어 있을 수 있으니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뉴스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자신의 우편함에서 그 봉투를 발견했을 때 차영은 사실 기뻤다. 뜻밖의 행운에라도 당첨된 기분이었다.
차영이 거실 마룻바닥에 슈퍼에서 사온 물건이 담긴 봉투와 편지봉투를 내려놓고 앉았다. 그의 핸드폰이 갑자기 징징 소리를 내며 울렸다.
[행정안전부] 정체불명의 편지봉투를 받으신 분은
절대 봉투를 열어보지 마시고,
가까운 경찰서 또는 대테러센터로 신고바랍니다.
“진짜 뭐가 들었나?”
차영이 푸른빛의 봉투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는 것 같았다. 그의 눈이 번개탄으로 향했다. 그가 고민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살며시 떴다.
“에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그가 봉투를 툭하고 뜯었다. 안에 들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이 지옥에서 구해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손으로 만져보았다. 만져지는 것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영은 봉투에 코를 대고 냄새까지 맡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뭐라도 나오기를 바라며 봉투를 거꾸로 들고 손바닥에 털어보았다. 그의 손바닥이 아니라 마룻바닥에 톡, 하고 떨어진 것은 편지지였다. 그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편지지를 들어 올렸다. 아무리 봐도 그냥 종이 같았다.
“광고 같은 건가?”
그가 편지지를 펼치고 읽기 시작했다. 그의 미간이 아까 전 무균실 밖의 사람들처럼 찌푸려졌다. 그는 자신이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이 맞나 싶어 소리를 내어 다시 첫 줄을 읽어보았다.
“아들, 우리 아들 차영아……. 엄마야…….”
엄마라는 말에 그가 다시 봉투의 겉면을 보았다. 그곳엔 보낸 이도 받는 이도 쓰여 있지 않았다.
“누가 이딴 장난을…….” 차영이 화를 내며 편지지를 구기려고 하는데, 어떤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어머니가 주술처럼 외던 말이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단다. 네게 생길 좋은 일도 늦지 않게 도착할거야.’
편지지의 그 한 문장 때문에 그는 편지를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그의 어머니가 실제로 썼다고 해도 믿을 만큼 그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병 때문에 차영이 과수원을 판 것도, 다시 과수원을 찾아오려고 도박에 빠져든 것도 알고 있었다. 차영은 이 편지가 죽으려는 그에게 떨어진 동아줄인지, 죽을 때가 되어서 보이는 허상인지 혼란스러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멍하니 앉아 몇 번이고 편지를 반복해서 읽던 차영이 문득 고개를 든 순간, 낡은 서랍장 위 어머니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둘이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 그는 경직되어 보였지만, 어머니는 그의 손을 거칠어진 두 손으로 꼭 잡고 있었다. 사진 속 어머니의 모습을 말없이 보던 그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화장실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 문을 딸깍하고 걸어 잠갔다. 차영은 그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고 싶었다. 그가 울 때면 그의 등을 두드리던 어머니의 손이 그리웠다. 화장실 바닥에 쪼그려 앉은 그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바라던 것일지도 몰랐다. 무너져 내리는 것. 그래야 다시 일어날 수 있을 테니까.
어느 맑은 날, 대테러센터 소각장에서는 편지들이 불에 타고 있었다. 편지를 태우는 냄새는 산들바람을 따라 저 먼 하늘까지 날아갔다.
바람은 오르고 또 올랐다.
“아니 이게 무슨 냄새야?” 누군가 반쯤은 당황해서, 그리고 반쯤은 화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저 먼 하늘 위 세상에 있는 환생 운하(運河)의 보안팀장이었다. 하늘 위 세상과 아래 세상이 연결되는 구간인 만큼 항상 두 세상을 주시하고 있던 그가 하늘에서 나야할 냄새가 아래에서 올라오자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것이다. 보안팀장은 이를 즉각적으로 상부에 보고했고, 각 부처는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각 팀을 샅샅이 뒤졌다.
사건의 경위는 생각보다 빨리 밝혀졌다. 영혼 복지팀에서 환생 예정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편지 쓰기 워크숍에서 쓴 편지들이 싹 사라진 것이었다. 환생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늘 아래 사람들에게 보낸다고 생각하고 편지를 쓰는 워크숍이었는데, 이를 담당한 복지팀 신입 사원이 편지들을 소각통이 아니라 우체통에 넣은 것이다. 이 때문에 직원 관리를 소홀히 한 복지팀장은 물론 대외협력팀장까지 우체통 관리 소홀로 인한 경위서를 써야했다.
신입사원이 그런 짓을 저지른 이유는 아직까지도 미궁에 빠져있다. 누군가는 실수로 그랬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환생 예정자의 사주를 받았다고도 했다. 누군가의 운명을 바꾸었을지도 모르는 이 사건은 하늘 위 세상의 주요 사건 기록부에 올라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