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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텐텐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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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세핀 Oct 04. 2023

독개미법




아무래도 그녀를 사랑한다.

나의 여왕님.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

.

.


 며칠 째 밖으로 정탐을 하러 간 동료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 영토로 왕국을 옮기고 나서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도 돌아오지 못한 동료들을 걱정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은 여왕이었다. 


 "어쩌죠? 다시 영토를 옮겨야 할까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여왕의 수족과도 같은 신하들은 여왕에게 좀 더 기다려보자고 말했다. 여왕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여왕이 들어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신하들이 입을 열었다.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어? 점점 돌아오지 않는 병사들의 숫자가 늘고 있어."

 "그래야 하겠지. 그들이 돌아오지 않으니까 식량도 줄어들고 있다고."

 "영토를 옮겨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여왕도 데려가야 하는가?"

 "요즘 영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던데."

 "모르지, 새로운 곳에서 우리의 새로운 여왕을 찾을 수도."


 여왕을 갈아 치워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한 그들의 말에 분노했지만 내가 끼어들 수 있는 대화가 아니었다. 입을 다물고 다시 일하는 곳으로 돌아갔다. 왕국의 성벽을 쌓는 일이 나의 일이었다. 성벽을 공고히 쌓아서 여왕님을 지켜야지. 사랑하는 여왕님을. 


 병사들이 돌아오지 않자, 신하들은 새로운 전략을 제시했다. 더 많은 이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살아 돌아오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나도 그 탐험대에 포함되었다. 

 이 왕국에서 처음 눈을 뜨던 때를 기억한다. 성벽조차 없던 이 왕국. 오롯이 여왕의 힘으로 많은 이들을 끌어 모으고, 그들의 힘을 모아 왕국을 건설해 나갔다. 우리들은 모든 것을 함께 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었고,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삶과 생활을 건설해 나갔다. 


그렇다. 

나는 한 번도 이 왕국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이 왕국이 내가 아는 모든 것이었다. 


 성벽 밖을 잘 아는 병사들 몇 명이 이끄는 탐험대는 나와 같이 일을 하던 동료들도 몇 명 섞여 있었다. 그들도 처음으로 밖에 나가 보는 터라 다들 긴장한 눈치였다. 


 "걱정할 것은 별로 없습니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서 다니면 됩니다."

 "밖에는 무엇이 있나요?"

 "많은 것이 있죠. 누군가는 괴물을 봤다고 하더군요."

 

 괴물...이라는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지금이라도 뒤돌아서 원래 일하던 성벽의 곁으로 가고 싶은 표정이었다. 나 또한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겁이 났다. 가장 앞에 서 있는 병사는 이런 표정을 예상했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괴물은 눈이 높은 데 달려서 우리를 못 볼 수도 있습니다. 조심해서 다니기만 한다면 괜찮을 겁니다."

 "네."

 "가장 중요한 것은 밖에 우리를 먹여 살릴 식량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는 마지막 말을 남기더니 성벽 밖으로 힘차게 걸어 나갔다. 우리는 그의 뒤를 따랐다. 


 밝았다. 성벽 밖은.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다른 동료들도 눈이 부신지 서로서로 부딪히느라 여념이 없었다. 앞에 가던 병사가 잠깐 멈추어 섰고, 뒤따라 걷던 우리는 모두 쓰러졌다. 그는 우리를 하나씩 살펴보며 다시 줄을 세워주었다.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그때부터 본 것들은 모두 적합한 단어가 없을 정도로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혼란스러웠다. 우리 왕국에는 왜 저런 것들이 없지 싶은 것들 뿐이었다. 그런 것들에 시선을 빼앗긴 동료들이 경로를 이탈하기도 했다. 병사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사라진 이들은 다시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잠깐 거대한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저 앞에 식량 창고가 보입니다. 다른 왕국의 식량 창고지만,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지요."

 "양이 많네요."

 "다들 힘을 합쳐 옮기면 됩니다."


 우리는 누군가 쌓아 놓은 식량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하나씩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식량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여왕이 좋아할 것 같았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자 다들 차례대로, 들키지 말고 가는 겁니다."


 대장 병사의 말에 따라 모두가 두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들 식량을 들었지만 무겁다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뿌듯했다. 첫 번째 탐험에서 이런 귀중한 성과를 내다니. 사라진 동료들은 아마 한눈을 팔았을 것이다. 바깥의 다른 왕국은 조용했다. 다들 어디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식량 창고를 이렇게 밖에 내어두고. 

 다시 성벽으로 가는 길은 처음에 걸어왔을 때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의외로 쉽게 얻은 성과에 다음에 한 번 더 성벽 밖으로 나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왕국에 거의 도달했을 때, 불현듯 아까 길을 벗어난 동료들이 떠올랐다. 


 "이탈한 동료들은요?"

 "정해진 길을 벗어났으니, 돌아오기는 힘들 겁니다."


 대장 병사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앞서서 걸어갔다. 그때 뒤에 있던 병사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괴물이 오고 있어요!! 괴물이!! 더 빠르게!!"


 그의 말에 우리는 간격을 더욱 좁혀 걸어갔다. 들고 있는 식량 무게 때문에 이리저리 몸이 흔들렸다. 뒤에 따라오던 동료들 중 넘어진 이들이 있었지만,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벽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나도 그들을 따라서 달렸다. 


 그리고 보았다.

 거대하고 어마무시한 그 괴물을. 

 그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동료들을 사라지게 해 버렸다.


 살아 돌아온 이들은 의기양양하게 여왕에게 음식들을 전달했다. 그녀는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우리를 하나하나 다독여가며 감사 인사를 전했는데, 특히 나의 어깨 위에 오랫동안 손을 올려놓았다. 분명 그랬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날 밤은 유일했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잠시 잊고,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음식을 나누어 먹는, 다시없을 그런 밤이었다. 


 




 "여보세요? 어, 아니. 나 잠깐 다이소 갔다 왔어. 뭐 또 샀냐고? 아니... 집에 자꾸 개미가 나오더라고. 그래서 검색해 보니까 다이소에서 파는 거 있더라? 그거를 설치해 두면 개미가 그 사료 같이 생긴 거를 먹는데. 어어. 아니 그거를 여왕개미한테 갖다 줘야 한다더라고. 여왕개미가 죽어야 다 죽는다고. 그러니까. 신기하지? 응응. 개미? 이제 안 나오냐고? 어... 없는 것 같네. 효과가 좋네. 생각보다. 응 아니. 밥은 아직 안 먹었어, 나는.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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