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 같은 국물에
베트남 쌀국수를 왜,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요즈음엔 나에게 메뉴를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뭐 먹을래 하면, 베트남 쌀국수를 고르는 편이다. 부담도 없고, 국물도 너무 진하지 않으며 담백하다. 가장 맛있게 먹은 쌀국수는 사실 여러 곳에 있다. 먼저, 예전부터 너무나 가고 싶었던 <분짜라붐>을 발견한 어느 초겨울날이 생각난다. 이미 한 끼를 해치웠으나 밤 9시에 우연히 그 식당을 발견하고는 또 들어갔다. 분짜와 쌀국수를 시켰는데 당연히 맛있었다. 꽉 찬 뱃속에 또 들어갈 정도였으니. 그때는 날씨 때문이었는지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꽤나 맛있었는데, 그 기억을 안고 다른 지점에 가면, 딱히 맛있지 않다. 그게 조금 슬프다.
또 맛있었던 곳을 떠올리자면 성수에 있는 <벱>의 쌀국수가 맛있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듯한, 좀 봐줬으면 하면서도 너무 많이 알면 싫어하는 듯한 느낌을 풍기고 있는 성수동은 작고 의미 있는 가게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베트남 쌀국수를 파는 <벱>을 발견했는데, 딱히 다른 메뉴가 떠오르지 않았고 한 번 들어가서 먹어보자고 해서 들어갔다. 차돌 쌀국수를 시켰는데, 정말 맛있었다. 차돌 쌀국수는 또 처음이었는데, 고소한 기름과 산뜻한 국물이 또 새로운 조화를 이루었다.
다음은 <포앤그릴>이다. 이제 상도정과 합쳐져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의 면모는 조금 잃었지만 새우 완탕 쌀국수가 맛있는 집이다. 매콤한 국물에 아주 실한 새우 완탕이 네 개 정도 들어가 있다. 탱탱한 새우와 얇은 완탕피가 조화를 이루고, 국물도 너무 짜지도 맵지도 않다. 항상 가면 나는 새우 완탕 쌀국수를 시켜 먹고, 아버지는 매운 쌀국수를 먹고, 엄마도 새우 완탕, 동생은 그때마다 다르다. 그 집에 또 맛있는 게 닭튀김인데, 양념이 기똥차다. 이제는 그런 걸 맛보기 너무 힘들어졌다. 다른 식당이랑 합쳐져서 그 전문점만이 주는 느낌이 사라졌다.
쌀국수는 다 똑같아 보이지만 다르다. 국물도 다 다르다. 그래서 각 식당마다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요즘엔 에머이 밀키트를 사서 집에서 해먹기도 한다. 간단하고 녹일 필요도 없어서 금방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내가 베트남 쌀국수를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분주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냥 슴슴하게~ 천천히~ 조용히 먹는 음식이지. 막 감자탕처럼(감자탕도 좋아한다) 왁자지껄 뼈 뜯고 시래기 먹고 정신없이 이것저것 다 먹는 그런 음식이 아니라서인 것 같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소리 또한 거의 나지 않는다. 조용히 국물을 담아서 주신다. 가끔 그런 조용한 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베트남 쌀국수 식당을 찾아간다. 급하게 먹지 않아도 되고, 조금씩 먹다가 국물까지 마시고 나면, 왠지 내 마음까지 편안하고 조용해진 것 같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혼자 밥 먹을 기회가 생기면 쌀국숫집을 찾았다.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이 산더미이고, 외롭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혼자 그 온천 같은 국물에 몸을 맡기고 잠겨있고 싶어서. 그냥 가끔 그럴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