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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SSTYPE Jul 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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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어떤 글자인가

한글은 조선의 4대 임금 세종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으로 1443년 창제하여 1446년 훈민정음해례본을 통해 반포한 문자로 당시 한문 의존에 따른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한국어의 고유 문자로 창제되었다. 한글이 왜 창제되었는가는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있지만 한글이 어떻게 창제되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결과물에 대한 매뉴얼이 남아있을 뿐 작업 과정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세종대왕 홀로 한글을 창제하였는지. 혹은 집현전 학자들과 공동 제작하였는지. 아니면 명을 내려 집현전의 학자들이 한글을 창제하였는지 알 수 없다. 허나 세종실록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친히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집현전의 도움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그렇다면 과연 세종 홀로 어떻게 한글을 창제할 수 있었을까. 세종이 한글 창제 5년 뒤 한자음을 중국어 원음으로 교정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사용하여 편찬한 동국정운東國正韻을 보면 한국어와 중국어 전반에 걸친 음운학과 언어학에 깊은 조예와 지식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지 모르겠다. 당시 25세였던 세종이 혼자서 한글의 형태와 체계를 완성했다니 놀라울 뿐이다.


한글이 어떻게 그 형태와 체계를 이룰 수 있었는가. 나에게는 한국어에 대한 음운학과 언어학에 조예가 부족하여 한글 창제에 대해서 조사해보았다. 예조판서 정인지의 서문을 보면  ‘……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殿下께서 정음正音 28자字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칠조七調에 합하여 삼극三極의 뜻과 이기二氣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轉換하여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칠조나 삼극이 뭔지.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 통달하게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글의 형태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여기서 고전古篆은 한자체의 전자篆字가 아니라 이전의 문자. 즉 동양권의 문자들. 산스크리트 문자, 구자라트 문자, 파스파 문자, 위구르 문자 등을 말하는데. 글자를 모방했다면 가장 닮은 글자는 역시 파스파 문자다. 파스파 문자는 한글과 동일하게 음소문자이면서 음절단위로 모아 쓰는 문자로 형태도 유사하고 그 운용방식 또한 유사하다. 이때까지는 단순히 글자의 일부가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파스파 문자와 원나라. 몽골과 이성계 가문에서 세종까지 자료를 조사하며 파스파 문자와 한글 사이에 단순 기호화된 형태의 유사성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운용방식과 문자 체계가 중요하다.


어떻게 한글은 파스파 문자를 닮게 되었는가. 파스파 문자 Phagspa script는 1265년 몽골 원나라元 국사인 파스파가 쿠빌라이 칸의 명을 받아 몽골어 표기를 위해 만든 문자로 1269년 완성되어 공표되었다. 본래 티베트 문자를 방형화方形化 즉 네모꼴로 만들고 세로 쓰기 표음문자로 자음 30자, 모음 8자, 기호 8개로 구성되며 뒤에 추크 오세르가 연모음軟母音과 복합 모음 표기법을 고안. 개정하여 자음 31자와 모음 8자의 39개 자모로 개량되었다. 몽골어뿐만 아니라 몽골 통치 하의 여러 민족의 언어를 표기하기 위한 공용 문자로 고안되어서 몽골의 지배를 받던 후기 고려 또한 파스파 문자를 교육받았으니 그 연관성이 클 수밖에 없다. 세종 이전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가문은 애초에 원나라 천호장 출신으로 말하자면 원나라 유민이다. 즉 이성계 가문은 5대에 걸쳐 원나라의 봉건영주로 원나라의 말과 글을 사용하였다. 고려 공민왕 때 고려의 군벌이 되고 이후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왕조를 열었다. 당시 고려는 왕족과 귀족들이 원나라의 왕족과 귀족들과 혈연으로 맺어져 고려와 원나라의 문화 자체가 혼합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보자면 우리말을 한문으로 표기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고. 한자교육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 또한 어려워 문맹률이 높아 우리말에 맞는 우리글이 필요했다. 이에 세종은 파스파 문자의 형태와 체계를 가져다 보다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다듬지 않았을까. 어디까지나 유추일 뿐이지만. 외국의 언문 학자들은 한글과 파스파 문자의 유사성을 꾸준히 주장한다. 훈민정음 제정에 관여한 학자들이 파스파 문자와 한문의 음운을 깊이 연구했다는 기록도 있는 만큼 그 연관성을 부정하긴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파스파 문자만을 가지고 한글을 창제할 수는 없다. 파스파 문자는 실사용이 어려워 원나라 내에서도 통상적으로는 위구르 문자가 쓰였다니 그리 훌륭한 문자 체계는 아니었다. 세종은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문자 체계를 만들기 위하여 명나라에서 유입된 육서론, 문자학, 운성학, 주역, 음양오행론 등의 이론들도 참조했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아음牙音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습을 본뜨다’, ‘설음舌音 ㄴ은 혀가 잇몸에 닿은 모습을 본뜨다’, ‘치음齒音 ㅅ은 치아의 모습을 본뜨다’, ‘후음喉音 ㅇ은 목구멍의 모습을 본뜨다’ (훈민정음 제자해) 형상을 글자로 가져오는 방식에서는 육서론 중 상형문자론에서 이론적 기반을 얻었을 수도 있고. 천지인의 삼재 도리를 따른 기본 모음 구성에서는 음양오행의 이론을 엿볼 수 있다. 발음기관의 분류도 오행의 원리에 따라 어금니 소리, 혀 소리, 입술소리, 앞니 소리, 목구멍소리 다섯 부위로 나뉜다. 조금 정리해보자면 원나라의 파스파 문자의 체계. 자모음으로 구성되는 음소문자. 음절단위의 글자 표기. 초성과 중성. 종성에 초성이 반복되는 형태. 방형화 등의 체계를 기반으로 명나라의 문자학. 운성학. 주역을 참고하여 한글을 창제했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허나 한글이 파스파 문자를 표절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도 없다. 기반이 되는 체계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원리와 이론을 정리하고 소리에 맞추어 기호화된 자모음으로 한글을 창제한 것이라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해례본의 한글은 단순화된 기호의 형태에 가깝지만 이후 널리 사용된 한글의 형태는 한문과 붓의 필법에 따른 영향을 받았다. 지금도 흔히 쓰이는 명조체의 한글꼴이 과연 본래의 한글의 형태인가. 


한글은 어떤 글자인가. 나에게 한글은 한국인의 글자. 한국어에 최적화되어 있는 글자. 한국어 자체가 어렵기에 결코 쉽지 않은 글자. 음소문자임에도 모아쓰기를 하기에 글줄이 매끄럽지 않은 글자. 한글은 아름답다던데. 아름답게 조형하기 참 어려운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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