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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영 Aug 14. 2021

초월한 사랑

: 단편소설




한이 슬며시 웃었다. 웃음은 느지막한 저녁놀처럼

따듯했다. 그런 한을 볼 때면 나는 표현하기 어려운, -어쩌면 표현할 수 없게 만든 듯한-감정에 휩싸인다.


표현해서는 안 되는 그런 감정.


나는 빙빙 맴돈다. 감정인지 한인지, 하여튼 그 중심을.


"가끔 그런 적 없어?"


내가 뗀 운에 한이 시선을 이리로 고정했다.

윤슬처럼 찰랑이는 눈빛에 빨려 들 것만 같았다.


몸이 붕 뜨고 목덜미로 사랑이 차오르는 기분.

목이 뻥 뚫려 온 세상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느낌.

그런 거 말야.


"난 가끔 그래. 어릴 적에 본 아주 오래된 애니메이션을 볼 때에도 버스의 열린 창을 볼 때에도 낡은 건물을 볼 때에도 그리고."


나는 뒷말을 삼켰다. 마무리 지어지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한은 고갤 끄덕였다. 그리곤 다시금 웃었다.


새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뜨거워져 걸음을 옮겼다. 괜히 둘러보는 체 했다.


한의 웃음과 돌아오는 대답에서 잠 들기 전 어수선한 도로가 보였다.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까?

한을 볼 때면, 들을 때면 그리고 멀리서 만질 때면


소나기 밑이기도 수년 전 골목 앞이기도 하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한을 통해 떠오른다.

그렇게 돼 버린다.


나는 도무지 표현할 수 없어 혀를 잘근 잘근 문다.



"... 그 장소에 먼저 나와 있는 널 유리창으로 볼 때가 있었거든. 이상했어. 전기가 목덜미를 스치는 것 같은 거야... 웃기지. 한참 그러고는 한참을 서 있었다니깐."



언젠가, 언제였던가.

한이 아니 내가, 아니 누군가 한 말이 생각났다.


몹시도 작아져 한가운데 흐릿하게 깜박이는 화면에 갇힌 말이 날 이끌었다. 이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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