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화합
고등학생 때였다. 어머니가 내 방에 들어와서 울었다. 표현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해줬다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그랬다고, 앞으로는 표현을 잘하겠다며 미안하다고 고백했다. 당시 어머니는 보육교사 준비 중이었는데, 교육 과정에 있는 아동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내 생각이 난 것이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은 바로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시대는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도 표현을 받지 못한 채 성장했고, 당연히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도 못했다고 했다.
어머니의 용기 있는 고백은 내 안의 어떤 벽을 깨버렸고, 성격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전까진 어버이날 학교에서 쓰게 하는 편지에서만 ‘사랑'한다는 말을 소심하게 적어 넣었지만, 어머니의 고백 이후로는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게 되었다. 더불어 어머니에게 깊은 얘기도 터놓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영향은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친구들에게도 감정 표현을 잘하게 됐다.
이건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성인자아와 내면아이와의 이야기기도 하다. 고독을 통해 내면으로 들어가 보자, 겁에 질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낯선 아이가 있을 것이다. 외부에는 친절하게 하고 자신에게만 모질게 굴었던 나를 두려워한다. 상사에게 부당한 말을 들으면 앞에서 아무 말 하지 못하다가 뒤돌아서 이렇게 역정을 낸다.
“이 바보 멍청아! 앞에서 한마디도 못 하다니, 나는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야!”
밖에서는 굽신거리다가 집에 들어와 화풀이하는 부모와 같다. 이건 마치 ‘방구석 여포'(밖에선 조용하지만, 집 안에서만큼은 삼국지 여포처럼 기세등등해지는 사람)가 아닌 ‘맘구석 여포'다. 그럴수록 내면아이는 점점 더 구석으로 숨게 된다. 성인자아는 무심하거나 욕만 퍼붓는 아주 무서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무서운 존재가 아니고 네 편이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
내면아이와 사랑을 나누게 되면, 그것은 밖으로 흘러나오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진정 위하는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내가 어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내면아이는 당신에게 더 많은 표현과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러는 과정을 통해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고, 잠재력을 발견할 수도 있다.
외부 세계에서 도피하여 자기 위로와 정신 승리를 하자는 게 아니다. ‘사랑해’란 표현은 앞으로 그 대상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성장을 바란다는 의미이다. 선의의 피드백을 주겠다는 뜻이다. 고통을 피하자는 게 아니며 고통을 마주하고 함께 해결하자는 의미다. 자신과 가까워지지 않으면 외부의 문제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 누군가와 맞서려면 내면아이와 손을 잡고 논리를 갈고닦아야 한다. 내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는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려야 대응할 수 있다. 또한 사람마다 ‘좋음'의 기준이 다르다. 그렇기에 내면아이를 마주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좋음'이 어떤 것인지 알 수도 없고, 당연히 행할 수도 없다. ‘정신 승리’가 아닌 ‘현실 승리’를 위해 나와의 사랑은 필요하다.
사람의 불행은 ‘자신과의 불화'에서 온다고 한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친구가 많아도, 그게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게 아닌 외부의 기대와 시선이었다면 의미가 없다. 아무리 멋지고 비싼 곳에 여행을 가도 내면이 냉전 상태라면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수백만 원짜리 하와이 여행을 가는 것보다, 방에 있는 3만 원짜리 의자에 앉아 자신을 마주하는 게 더 가치 있을 것이다. 또한 자기도 자신을 사랑해 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내면아이에게 지금이라도 사랑한다고 얘기하자. 아직 늦지 않았다. 고독으로 들어가 내면아이를 마주하자. 그게 어렵다면 거울을 통해 나를 마주 보자, 양팔로 자신을 감싸 안고 따뜻한 목소리로 고백하자
“그동안 미안했어, 앞으론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할 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