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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Jul 26. 2023

사는 게 처음이라 어영부영 맞이하는 세월


약속에 늦어 지하철역 계단을 급하게 뛰어 내려왔다. 순간 지하철에서 날법하지 않은 구린내가 진동한다. 내 몸에 묻어온 건가, 어깨에 코를 갖다 대본다.


할아버지가 벽면 개찰구 앞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무언가를 쓸어 담는다.

바지 밑단에서 오물이 새어 나온다. 한눈에 봐도 당황하셨고 순간을 대처하기엔 손이 모자란다.


이미 손을 댄 개찰구와 옷은 혼자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오염돼 있다.


정신이 온전치 않아도 수치스러울 일이다. 늙어가는 사람으로서 심신이 무너졌을 것이다.

얼마나 먹먹한 심정으로 자녀에게 연락했을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벌써 16년 전이다.



얼마 전, 같은 내용의 기사를 접했다.

이제는 드문 뉴스거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16년만큼 나이를 먹었다.

아직도 세월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습자지에 먹물 번지듯 세월이 스며든다. 빠르고 진하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막을 도리가 없다.


엄마는 손등이 배추 겉잎처럼 퍼석퍼석하게 늙었다고 야속해한다. 간혹 멍해지는 자신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숨 쉬듯 내뱉는다.

답답한 소리에 화를 낼 수 없다. 되레 걱정이다.

하물며 오늘도 어제와 다른데 예전 같지 않은 건 당연하다는 위로를 건넨다.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얼마나 두려운지 모른다.

뜬금없이 울리는 전화가 무섭고 누군가의 소식이 두렵다.


타조처럼 모래에 고개를 처박고 싶다.


먹고사는 걱정이 전부인 줄 알았다. 눈앞에 급급한 일만 겨우 쳐내며 산다.

결국,

사는 게 처음이라 어영부영 세월을 맞이한다.




그날 할아버지가 어떻게 귀가하셨을지 궁금해진다.


모쪼록 평안하시길.

모두가 무탈하시길.




사진출처: Unsplash의 Jake Tha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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