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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Aug 29. 2023

스님인가, 러너인가

러너의 번뇌


트랙에서 러닝을 하다 보면 수학 문제가 생각난다.

채용시험에도 자주 나왔던 문젠데 한 번도 제대로 푼 적이 없다.

- 내가 A 속력으로 운동장을 뛰고 상대가 B 속력으로 걷는다면 몇 분 후에 둘이 만나게 될까?-


일상에서 전혀 쓸 일 없는 수학이 필요할 때가 오다니.

 

- 역시 러닝은 상념을 잊게 한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앱에서 안내하는 남은 시간에 집중한다.


문제의 답이 미친 듯이 궁금한 이유는 매너 없이 걷고 있는 사람의 뒤통수를 냅다 때려주고 싶어서다.

 

'지금은 이렇게 지나가지만, 다시 마주치게 되면 정말 가만두지 않겠다.'


모든 운동에는 암묵의 매너가 있다.

트랙 위 하얀색 페인트로 적은 '뛰는 길'과 '걷는 길'이 자비롭다. 나만 아는 한글인가.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은 아니지만 안전 때문이라도 필요하다. 배려하지 않을 거면 방해도 하지 말아야 한다


못 견디게 화가 나는 경우는 강아지를 데리고 가로로 나란히 걷고 있는 무리를 마주할 때다. 4명 이상이면 트랙이 꽉 찬다. 줄을 길게 잡은 강아지가 어느 방향으로 뛸지 몰라 추월하기도 애매하다. 잘못하다간 강아지를 발로 찰 수 있다. 밤공기를 만끽하며 천천히 산책한다.

환장할 노릇이다. 페이스에 영향을 준다.  

개중 "한쪽으로 붙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고마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어깨로 치고 갈까.' 내면의 자아가 부추긴다.

- 아, 고속도로에서만 화가 나는 게 아니구나.-


"지나갈게요." 굳이 한마디를 하고서야 비켜선다.

'야 이 매너 없는 것들아!' 그들이 안 보일 때까지 눈으로 육두문자를 내뱉는다.

  

동네 어린이 축구단 수업이 있는 날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엄마들이 트랙에 멈춰 서 자식들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사진을 찍으려 뒷걸음질 치는 사람의 등을 팔꿈치로 퉁- 하고 쳐버리고 싶다.


- 용도에 맞게 공간 좀 쓰자. 트랙 밖에서 줌으로 찍어. 요즘 휴대전화 카메라 성능 좋잖아?-


하지도 못할 욕을 속으로 하느라 사리가 나올 판이다.

 

자질구레한 번뇌와 함께한 3주간의 러닝을 기록한다.

94.38km, 13시간 45분 26초, 평균 페이스 8분 44초, 5,647kcal.



사진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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