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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Oct 12. 2023

운동회가 알리는 가을


<피리 부는 사나이>와 관련된 가설 중 중세 유럽 흑사병이 거론되곤 한다. 코로나도 옛날 옛적 역사 기록이나 동화 속 이야기처럼 여겨질 날이 오겠거니 막연한 상상을 했었다. 끔찍하고 지긋지긋해도 지나고 나면 파스텔 톤의 동화가 될 수 있는 게 세상일이지 않던가.


며칠 전 운동회가 한참인 초등학교 앞을 지나며 보니 지금도 충분히 기록 속으로 사라진 것 같다.

일상, 참 어렵던 보통의 날이 돌아왔다.

안 올 것 같더니 흘러가는 시간에 오지 못할 미래가 없음을 일깨운다.


북적이고 활기 넘치는 모습이 반가워 교문에 매달려 잠시 구경을 했다.

학부모가 운동장 천막에 둘러섰다. 운동회라면 응당 넓은 운동장을 뛰고 굴러도 모자랄 판인데 반을 막아서서 뭘 하는 건지 보이지도 않는다. 전문 사회자의 마이크 소리만 가득하다. - 운동회에 행사 전문 사회자라니. 참으로 생경하다.-

학교 앞 장사하는 리어카도 없다. 대신 학습지 홍보 전단과 풍선을 나눠준다. 민원조차 무서운 시대니 여러 가지 규제 속에 일부 허가를 받았으리라.


그러고 보니 성인이 되고 운동회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이다지도 삭막할 수가.

지금 아이들이 훨씬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며 보호받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럴 때 보면 좀 안쓰럽다. 노는 재미를 모르는 것 같아 짠하기까지 하다.


살기 팍팍하고 척박했어도 땅바닥에서 주운 돌 하나만으로도 참 재밌던 시절이었다.

운동회 날 교문 밖 파란색 포대 재질 돗자리가 레드카펫 같았다. 돗자리가 깔린 지점부터 벌써 운동회가 시작된다. 돗자리 위로 불량식품과 장난감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문구사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장난감이 많다. 솜사탕 리어카는 당연하고 잉어와 총 뽑기도 빠지지 않았다. 사 먹으면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날만큼은 엄마가 용돈을 따로 챙겨주시는 특별한 날이다.


집마다 운동장 주변에 돗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김밥을 먹었다. 그야말로 한강 나들이 가듯 친척까지 총출동해 한가롭게 가을을 즐겼다. 어느 나무 아래 우리 엄마가 있는지 기억해 두고 중간중간 나를 보고 있나 몇 번을 확인하곤 했었다. 부모님이 자주 학교를 오는 게 아니니 어린 마음에 엄마가 가버리면 어쩌나 아주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공짜 공책과 스케치북을 많이 받아 자랑하고 싶어 얼굴이 빨갛게 익도록 뛰었던 기억이 난다.




추억이 다를 뿐 요즘 어린이가 즐기는 문화가 있을 텐데 괜한 측은지심이다.

잉어 뽑기나 달고나가 요즘으로 따지면 탕후루쯤 될까. 운동회에도 김밥 대신 영양소가 고루 갖춰진 급식을 먹는다고 한다.

어쩌면 부모 입장에서는 더 수월한 세상일지 모르지만 똑떨어지고 각진 정갈함에 삭막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사진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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