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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Apr 25. 2022

98년생 밴드의 무대를 보고 청춘에 대해 생각했다.

(글쓴이 한정) 오늘부터 청춘에 대해 새롭게 정의합니다.


1월 1일,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혼자 들었던 노래가 있었다. 락, 블루스 기반의 밴드가 만든 음악으로 보컬의 독특한 음성과 랩 파트를 맡은 박재범의 목소리가 묘하게 어울리는 곡. 처음 이 밴드를 알게된 건 작년쯤이었나, 순이가 언제부턴가 운전만 하면 이 밴드의 노래만 계속 들었다. 순은 검정치마, 네버영비치처럼 한 번 꽂힌 노래를 질리도록 여러 번 듣는 취향이 있는데, 이 밴드도 그렇게 입문하게 됐다. 시적이면서 감성적인 가사에서 묻어나는 솔직한 내용이 좋았고 중성적이면서도 몽환적인 톤을 가진 보컬의 목소리가 좋았다. 소년미 가득한 아련한 곡부터 에너지 넘치는 청량한 곡까지 뚝딱 만들어 내는 이들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결성한 한 젊은 밴드다.


이 밴드를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한마디로 '운명'이었다. 평범한 목요일 밤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평소 유튜브나 멜론을 통해 음악을 듣던 나인데 우연히 네이버에 밴드 이름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이 밴드의 콘서트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공연을 하지 못했던 이들이 다시 시작하는 이 콘서트에서 새로운 신곡까지 들려준다는 것이 아닌가? 오마이갓.. 나는 당장 순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우리는 마지막 날 콘서트 티켓을 바로 예매했다. 다소 늦은 티켓팅에 가장 뒷 좌석이었지만 두 자리가 남은 게 어디냐며 며칠을 행복해했다.


공연 당일, 도착한 라이브 홀엔 모든 사람이 흥분에 싸여있었다. 다섯 시 정각에 시작된 공연은 두 시간을 꽉 채워 끝이 났고, 옆자리에 앉아있던 순은 (눈을 감고 있길래 졸리는가 했더니) 여러 번 울컥했었다고 한다. 스탠딩이 아니라 좌석제인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들썩이는 마음을 겨우 박수로 대신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역이었고, 환호도 마음껏 내지를 수 없어 마스크 속에 머무르곤 했다. 얌전하게 앉아 듣는 관객들도 힘들었겠지만 그간 공연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던 젊은 밴드는 오죽할까 싶었다. 베이스를 맡은 멤버는 '앨범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고 했는데, 이렇게 사흘 동안 무대를 하니 그간의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고 했다. 연신 관객들을 향해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질 않는 그들을 보니 얼마나 좋을까 싶은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공연에 대해  없이 떠들었다. '너무 좋았다' 말이 8할이었지만 '너무 부럽다' 말도 드문드문 어있었다. 어떤 점이 가장 좋았냐는 나의 질문에, '중간중간 말을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좋았다' 순은 말했다.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던 그들이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은 조금씩 서툴고 어색해했는데, 순은 그런 정제되지 않은 모습이 진짜 청춘의 모습 같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청춘의 성수기는  살이냐고 순에게 물었다. 이런 질문을 하면서도 '청춘은 20살부터 29살까지 아닌가?' 하는, 인터넷에 뒹구는 2030 통계조사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순은 청춘엔 나이가 없다고 단호히 대답했다. 40대도, 60대도 자기가 하는 일을 꾸준히 재밌게 하면 그게 청춘이라고 말했다. 좀처럼 자기 생각을 신속하게 답하지 않는 사람인데,  영역만큼은 ( 그대로) 답이 정해져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청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파란만장했던 20대에도 청춘이라는 말에 크게 와닿지 않았다. 어쩌면 청춘이라는 말은 어떤 찬란한 시기가 지나가면서 빛을 발휘하는 거 아닐까 싶지만, 애초부터 내게는 맞지 않는 말이라 생각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것을 조금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어떤 것에 깊게 몰두해서 지내본 경험이 없어서 일단 피하고 보자 싶었던 거다. 그렇게 슬금슬금 피해서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나는 청춘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그리고 청춘의 멋을 가장 잘 소화하고 있는 밴드의 무대를 보며 인제야 부러움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도 (순의 생각에 따르면) 살아있는 한 청춘 시즌은 무궁무진하며, 흥미로운 것들은 지천으로 널려있다.

청춘을 해석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며 답안이 같지 않다고 해서 대단한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날 밤 98년생 밴드의 무대를 다시 떠올리며 청춘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했다. 부끄러움이나 후회로 가득 찬 자기 위안이 아닌, 오로지 '앞'을 향한 고민이었다.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기쁜 것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수많은 일상에서 내게 들려올 박수 소리를 기대하고, 누군가 건네줄 멋지다는 말을 상상해본다. 나는 타인을 피곤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사는 동안 즐겁게 지내는 것. 그리고 이왕이면 무언가라도 남기며 사는 것을 오늘부터 청춘으로 정의해본다.


"사실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뭐든 목표는 높게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지금도 늘 마음속으로는 비행기 타고 그래미 시상식 다니고 해요(웃음) 원래부터 '잘 될 거야'라는 마인드가 강하고 '근자감'도 강한 편이었는데, 팀의 사기를 북돋으려면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우리 음악이 나중에, 우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시대가 왔어도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계속 좋다고 회자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어떤 의미에선 저도 '레전드'를 꿈꾸는 건데, 누가 들어도 좋고, 누가 들어도 감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또 감탄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추억 속에 잘 머물러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참, 이 밴드는 'SURL(설)'이라는 밴드고 입문하면 출구가 없습니다. 주의요망!


https://youtu.be/ecgp5SZgKHU

https://youtu.be/gnm7VTl96MM

https://youtu.be/PBfBQIlatM8

https://youtu.be/zRc5o3NXH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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