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침묵을 수용으로 착각한다. 아무 말이 없다는 이유로 동의했다고 여기고, 반응이 없다는 이유로 괜찮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침묵은 말의 부재일 뿐, 의사의 표현은 아니다.
침묵은 동의도, 긍정도 아닐 수 있다. 그저 말할 힘이 없거나, 말해도 소용없다는 체념일 수 있다. 혹은 지금은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침묵의 진짜 의미는 상황과 맥락, 그리고 그 사람의 내면을 살펴보지 않으면 쉽게 오해된다.
수용은 다르다. 수용은 의사 표현이다. “알겠어.” “그래, 그렇게 하자.”라는 식의 분명한 반응이 수반된다. 수용은 나의 입장을 정리한 뒤, 그것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행위다. 침묵은 그 과정을 생략한다.
침묵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을 편의적으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특히 권력 관계나 감정적으로 얽힌 관계에서는 침묵이 강요된 것일 수도 있다. 그 침묵 안에 있는 감정과 생각을 들으려는 노력이 없다면, 결국 우리는 스스로에게 유리한 결론만 내려버리게 된다.
또한, 침묵하는 사람도 자신의 침묵이 오해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말하지 않음이 동의로 읽히지 않도록, 때로는 “지금은 말할 수 없다”는 의사 표현이라도 해야 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결국 자기 입장을 빼앗기게 된다.
침묵은 여백이지 결론이 아니다. 그 여백을 채우는 건 추측이 아니라 대화이고, 오해를 막는 건 침묵 위에 덧씌운 긍정이 아니라 솔직한 의사 표현이다. 침묵은 수용이 아니다. 그걸 구분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