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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해 Apr 22. 2021

누구나의 속사정


어려움이 있으면 혼자 해결하는 편이었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 누군가에게 쓴 소리를 하는 건 관계를 망치는 일, 누군가에게 위로를 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애써 강한 척, 괜찮은 척…. 그것이 어른이라 생각했다.     

잔잔하게 다독이며 덮어두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다, 가라앉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차곡차곡 쌓여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박힌다. 큰 덩어리가 마음속에 가득 찬 사람은 다른 이를 위로할 줄도, 감싸 안아줄 줄도 모른다. 내 것을 다독이기도 바쁘다. 내가 그러했다.

     

나에게 상처가 될까. 발톱을 세우고 때론 문을 닫은채 꾹꾹 눌러담았던 마음을 어디로, 누구에게로 흘러갈지도 모른채 그냥 꺼내고 쓰고 울며 털어냈다. 용기라는 것이 필요했다. 그것은 글이 되고 책이 되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위로를 전해주었고, 누군가는 나로 인해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가볍고 시원한 마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가시같이 꽂히던 누군가의 말에, ‘당신도 나와 같은 아픔이 있군요.’ 덩어리가 가득했던 곳에 안아줄 수 있는 품이 생겼다. 도저히 안 될 것 같던 일들에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몇 해전 그림책 *<돌 씹어 먹는 아이>를 처음 만나고 집에 와 한 장 한 장 넘기며 '털어놓고 나니 가벼워진다'는 말이 마음에 훅 들어왔다. 가족 모두가 마음을 털어놓고 꺼이꺼이 우는 장면에서는 나도 함께 울었다. 아이 볼에 볼록해진 채로 입안에서 돌을 굴리는 미소가 그 때보다 편안해 보인다. 내 마음 속 무게도

깃털처럼 가벼워진 것일까.


누구나 말 못 할 사정이 있고, 아픔이 있다. 그것을 빨리 떨쳐낼 수 있는 방법은, 밖으로 꺼내 털어놓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틀 안에 나를 가두고 무엇이든 괜찮다, 이겨낼 수 있다, 말하지 말자. 때로는 누군가의 위로를 받기도 하고, 위로를 건네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물음표 or 마침표


모든 성장이 아픔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닐 거예요.

너무 아파 힘든 일이 있다면,
이겨내는 대신 
떠나보내는 것도
방법 중 하나입니다.
나를 위해서 말이죠.
 
너무 아프면 
다시 일어날 힘조차 없습니다.     







*<돌 씹어 먹는 아이> | 글 송미경 | 그림 세르주블로크 | 문학동네 | 20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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