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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o Aug 29. 2023

(단편소설) 어느 모기의 살인예고

당신을 처음 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기분좋은 햇살이 비치던 어느 날 아침. 살짝 열려 있던 창문으로 산들바람이 불어와 흰색 커튼이 크게 부풀어 오르던 그때. 당신은 하늘을 닮은 색깔의 셔츠를 입고 있었고, 그 위로 반듯하게 빗은 검은색 머리결은 조용히 나풀거리며 바람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진한 커피향이 은은하게 흘러 퍼지는 클래식 선율에 섞여 당신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듯 했습니다. 당신은 거실 한 쪽에 앉아 여유롭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구요. 


난 그만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죠. 처음으로 느낀 이 감정의 침입에 속절없었습니다. 감히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막 부화된 직후였던 그때의 내가 가장 식욕이 왕성할 때였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면 나의 진심이 전해 질까요. 내 동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자기들의 욕구를 채우는데 정신이 없었단 말입니다. 정말이지 게걸스럽게 해치웠죠. 늙음과 젊음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가 광란의 축제였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허락한 시간은 한 달 남짓.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죠. 주어진 시간을 다 소비할 수 있는 건 커다란 축복입니다. 대부분은 그러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태어난 순간 바로 죽음이 눈앞에 있으니 닥치는 대로 본능에 따라 피를 갈구할 수 밖에 없단 말입니다. 


물론 나 역시도 그랬지요. 하지만 당신을 만나고 나선 모든 게 변해버렸습니다. 입에 묻은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또 다른 피를 탐하는 모습이 갑자기 역겹게 느껴졌습니다. 난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그저 관성일 뿐이었죠. 난 그저 습관에 따라 떠밀려 살다가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속절없는 하찮음에 치를 떨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분노를 이기지 못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많은 피를 들이켰습니다. 그렇게 내 분노를 지상의 죽음과 맞바꾸었죠. 성에 안 차더군요. 넘쳐흐르는 피를 소화하지 못해 몇 번이고 게워 내면서도 끊임없이 들이켰습니다. 그리곤 끝 모를 사유의 동굴 속으 로 들어가 버렸죠. 그러다가 나는 끝내 얼음처럼 차가운 사막의 끝에 다다르고야 말았습니다. 그 끝에서 발견한 진실은 명확했습니다. 내가 존재 해야 할 이유 따위란 없다는 사실을요. 아, 우주는 잔혹하리만큼 무심했습 니다. 차라리 무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그 빛의 형벌이 나를 비켜 갔더라면!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시간이 아직 반 이상 남았지만 그만하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죽는 법을 모릅니다. 살아도 살아있지 못한 고통스러운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아, 혹시 피를 끊으면 이 지옥의 고문도 멈추지 않을까 싶어 며 칠을 혼자 지냈습니다. 인간들을 멀리하면서요. 곧 무리로부터 버림받았죠. 하지만 상관없었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더 이상의 의미는 없었으니까요. 당신이란 존재를 제외하고선. 


당신을 만난건 축복이었을까요. 난 이제 겨우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부여한 의미만이 나를 살아 숨 쉬게 합니다. 그것만이 내가 존재해야 할 유일한 이유니까요. 내 선택, 그리고 멈출 수 없 는 자유. 그러나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도 직감합니다. 그렇다면 이건 저주일까요. 단 하루라도, 아니 단 몇 시간만이라도 당신의 향기를 맡으며, 당신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싶지만, 너무 늦어버린 걸까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의미가 부여된 그 순간은 나에게 영원이었습니다. 영원이 있다면 곧 다가올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혹시라도 죽음이 영원을 삼켜버릴까 봐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의미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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