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Jo Jun 27. 2023

끝내 빛나지 못한 스펜서의 기적

파블로 라라인(2022)

스크린을 통해서 실존인물을 되살려내는 것은 많은 영화감독들에게 매혹적인 작업이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가장 실체에 가까운, 혹은 그 이상의 복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파블로 라라인은 이미 <네루다>(2017)와 <재키>(2017)에서 실존 인물의 전기(傳記)가 아니라 삶의 파편적 심리상태를 복원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 바 있는데, <스펜서>(2021)에서도 단 사흘의 시간을 통해서 다이애나가 평생을 짊어지었을 고통을 빈틈없이 압축하고 풀어내는데 성공한다.      


영화 <스펜서>는 현대판 <안티고네>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의 모티프는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것의 충동과 비극인데, 안티고네(오이디푸스의 딸이자 여동생)의 비극은 자신의 오라버니 폴뤼네이케스를 욕망하며 시작된다. 그녀가 맞섰던 크레온(삼촌)은 법과 질서였으며, 자신의 저항이 끝내 죽음으로 끝나고 말것을알고 있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영국 왕실은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겼다는 것을 육체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몸무게를 늘려야 한다거나, 한겨울에도 난방을 틀지 않는 등 온갖 부조리한 전통으로 가득 차 있다. 그뿐인가. 가장 중요하게는 남편 찰스가 공공연하게 바람을 피우는 것을 왕실 가족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른척하는 암묵적인 질서마저 있다. 다이애나는 이러한 질서를 견뎌내기가 어렵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크리스마스를 갈망하지만 이것이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아는 다이애나는, 질서를 넘어서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안다.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다이애나와 그레고리 소령의 관계 구도다. 다이애나가 겪고 있는 비극의 시작은 남편 찰스인데, 정작 영화는 다이애나와 찰스의 갈등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다이애나는 별장의 총지배인 격인 그레고리 소령과 계속 파열음을 일으킨다. 그레고리가 실존 인물이 아니었음을 고려해보면 이러한 설정은 우리의 관심을 더욱 사로잡는다. 


그렇다면 <스펜서>를 질서를 강제하는 그레고리와 이를 위반하려는 다이애나의 욕망에 대한 갈등 이야기로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갈등의 대부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그레고리다. 그는 몸무게 측정을 거부하는 다이애나에게 조금 전 여왕도 했는데라며 다이애나의 저항을 손쉽게 제압한다. 또한 다이애나가 한밤중 간식 창고에 있을 때도 이를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불현듯 등장하며, 한밤 중 어릴 적 살던 집으로 가려던다이애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다. 더욱 섬뜩한 것은 다이애나가 도착하기 전 침실에는 앤 불린에 관한 책이 놓여 있었는데, 이것은 앤 불린의 먼 후손인 다이애나 또한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비극을 맞이할 것이란 그레고리의 서늘한 경고로 해석된다(실제로 앤 불린은 헨리8세로부터 버림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결국 질서를 넘어서고야 만다. 첫째,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철심을 박아놓은 커튼을 뜯어버리면서(영화 초반부 그레고리는 다이애나에게 항상 커튼을 치고 있으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내린 바 있다). 둘째, 어릴 적 살았던 집으로 다시 돌아가 자신을 족쇄처럼 옥죄였던 진주 목걸이를 뜯어버리면서(집으로 향하던 길목은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허수아비가 입고 있던 낡은 재킷을 걸치고 꿩 사냥을 하던 왕실 행사 한복판으로 걸어들어가 모두를 당황케 하고, 결국 두 아들을 데리고 별장을 떠나버리면서. 이때 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에선 영화 처음으로 ‘내게 필요한 것은 기적’이란 반복되는 가사와 함께 경쾌한 팝송이 들린다. 그리고 차 안에서 음식을 주문하며 다이애나는 ‘다이애나’ 대신 ‘스펜서’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다이애나는 질서를 넘어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는 기적을 이루어낸 것인가?      


잠시 뒤, 템스 강변에서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먹던 다이애나는 조용히 일어나 펜스에 비스듬히 기대는데, 영화 초반부에 등장했던 바로크적 선율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이때 잠시 눈을 감았다 뜬 다이애나의 얼굴은 기적의 환희를 누리는 자의 감격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처음 차를 몰고 별장으로 가던 것처럼 다시 이전의 질서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아는 이의 체념으로 보인다. 그리고 결국에는 안티고네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운명 또한 비극(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으로 끝날 것임을 예감한 비장함이었을 것이다. 질서를 넘어서고자 했던, 즉 ‘스펜서’가 되고자 했던 ‘다이애나’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작가의 이전글 페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