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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Sep 01. 2020

아이 둘 입덧을 되새기며

두 번의 임신은 모두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였다. 임신을 하면 귀여운 리본이 달린 루즈한 원피스를 입고, 볼록한 배를 매만지면서 수줍게 미소 짓는 임산부의 모습으로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항상 현실과 이상은 괴리가 있다. 그중 하나가 입덧이었다.


입덧은 사람마다 양상이 다양하다. 정도의 차이도 다양하다. 입덧이 뭐야? 하고 무사무탈히 지나가는 이도 있고, 입덧 때문에 생사고비를 넘나들며 입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은 임신 초기에 많이 하고 16~20주가 되는 중기부터 서서히 잦아든다고 한다.


나는 첫째는 막달까지, 둘째는 7~8개월까지 입덧을 했다. 아예 못 먹는 입덧은 아니었다. 먹고 토하는 입덧이었을 뿐. 입덧 기간 동안 나는 항상 통통배를 타고 있었다. 파도가 넘실대면 출렁이는 작은 배처럼, 내 속은 항상 울렁거렸다.


누군가 입덧이 어떤 느낌이냐고 물을 때면 "끝이 안 나는 숙취"라고 말해주었다. 이렇게 말하면 남자분들도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숙취는 하루, 길어도 이틀이면 괜찮아지는데 이건 끝이 안 보였다. 임신 초기엔 안 좋은 속을 꾹꾹 참으며 바닥을 구르곤 했다. 토하지 않으려고 굳게 참았다. 정말 입덧이란 존재가 사람이었다면 멱살이라도 잡았을 거다.


그러다 너무나도 속이 괴로웠던 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화장실에 달려가 토를 했다. 토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토하고 나니 속이 좀 개운했다. 그렇게 토하는 입덧이 시작되었다.


집에서야 괜찮았지만 회사에서 토하는 입덧은 곤욕이었다. 밥을 먹지 말까도 고민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안 먹으면 안 먹는 대로 위액까지 토했다. 그리고 임신 중기가 넘어갈 무렵의 식욕은 일반인의 식욕과 달랐다. '아, 배고프다' 정도가 아니라 '배고파 죽을 것 같아! 지금 안 먹으면 난 이대로 죽고 말 거야!' 수준으로 음식밖에 생각이 안 났다.(임산부한테 살쪘다고 먹지 말라고 하면 안 된다 진짜... 의지로 조절되는 게 아니다.)


화장실엔 사람이 많아서 항상 기다렸다가 사람이 없는 때를 노렸다. 나에겐 입덧이지만 듣는 사람에겐 얼마나 거북할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속은 죽을 맛이었다. 그러던 중 별관 건물의 화장실을 발견했다. 과거의 우리 회사는 남자 직원이 월등히 많았어서 남자 화장실이 더 많았나 보다. 별관의 여자 화장실은 남자화장실에 안내판만 바꿔단 화장실이라 남자 소변기가 놓여있는 이상한 공간이었다. 위치도 애매해서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았다.


그 뒤로 너무 힘든 날엔 별관 화장실을 이용했다. 토하고 나면 휴지와 물티슈로 벅벅 닦고 변기를 한 세 번은 내렸다. 속은 죽을 맛인데, 그래도 내 흔적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변기를 끌어안고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간혹 청소를 하시던 직원분이 왜 별관 화장실을 이용하냐고 뭐라고 하시기도 했다.


그렇게 토하면서도 식탐도 엄청났다. 정말 미칠듯한 허기짐이었다. 저녁을 먹었는데도 치킨을 시켰다.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온 남편이  내 치킨 한 조각을 집어 먹는 데.... 눈물이 났다. 나의 눈물에 남편은 엄청 당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너무나도 진지했다. "그거 왜 먹어... 내 껀데... 나 너무 배고픈데... 흐어엉..."


임신 후기엔 저녁에 누울라치면 위액이 올라왔다. 한 2~3개월간은 침대에 기대앉아서 잤다. 그마저도 힘든 날엔 임산부 소화제나 얼음을 입에 물고 있었다. 옆에서 드렁드렁 잠자고 있는 남편이 너무 부럽고, 너무 미웠다.


첫째 출산이 다가올 무렵, 첫째 때 나보다 나보다 먼저 출산한 친한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아기를 낳고 나자마자 예전의 음식 맛이 느껴진다고 했다. 위액도 안 올라온다고 했다. 나보다 입덧이 훨씬 심했던 언니였다. 그래서 그런지 출산의 고통보다 입덧의 해방이 더 행복한 모양이었다.


정말 아이를 낳고 입덧이 없어졌다. 음식이 맛있게 느껴진다는 게, 정상적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첫째를 낳고 입덧의 괴로움을 떠올리며 '내게 둘째란 없다!'를 외쳤건만, 둘째를 임신하고 입덧을 하면서 스스로가 얼마나 망각의 동물인지를 다시 한번 상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 누군가의 임신 소식을 들으면 '축하해요' 뒤에 바로 '입덧은 없어요?'라고 물어보게 된다. 남자 직원이 아내가 입덧이 있다고 하면 뭐든 다 해달라는 대로 해주라고 오지랖도 부려본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다 추억이다. But, 절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아무쪼록 입덧으로 고생하는 임산부들이 잘 견뎌낼 수 있기를, 어서 괜찮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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