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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Sep 02. 2021

인명구조요원 자격증 취득기

저에게는 특별한 자격증이 있습니다. 대한적십자사 인명구조요원, 일명 라이프가드 자격증입니다. 여름에 워터파크를 가면 빨간 구조 튜브를 들고 있는 직원들을 볼 수 있는데요. 그 일을 하기 위해 요구되는 자격증이지요. 저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그래서 제가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취득할 때, 주변 사람 대부분은 어리둥절한 반응이었습니다. ‘그거, 도대체 왜 한 거야?’


제가 인명구조요원에 도전하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당시 저는 직장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었어요. 그날 밤엔 몸이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 무렵이었을까요, 휴대폰이 울려댔습니다. 발신자는 '엄마'. 이 새벽에?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OO아. 이를 어쩌면 좋으니. 네 동생 큰일 날 뻔했다."     


덜덜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습니다. 그 와중에 '뻔했다'라는 단어가 저를 안심되게 했어요. ‘큰일 났다가 아니라 큰일 날 뻔했다니까 별일 아니겠지.’     


그때 제 여동생은 새내기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날은 동아리에서 MT를 간 날이었고요. 좀 궂은 날씨였지만 바닷가 근처에 간만큼 자연스레 바다에 들어가서 놀았답니다. 그런데 바닷가의 물살이 센 게 문제였습니다. 갑자기 학생들이 물살에 휩쓸렸습니다. 특히 제 동생은 멀리 휩쓸려 가서 스스로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 동생은 수영을 못했어요. 정신없이 몰아치는 파도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바닷물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답니다. 그러다 점점 힘이 빠지며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던 그때,     


"학생! 정신 차려!"      


갑자기 어떤 남자분이 옆에 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제 동생을 구했습니다. 구급대원도 아닌, 그냥 일반 시민이셨어요. 대신 예전에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취득한 적이 있으셨대요. 그래도 사람을 구하러 바닷속에 뛰어들다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죠.      


인명구조요원. 제가 다니던 수영장 벽면에 걸려 있던 현수막에서 본 적이 있는 단어였습니다. 현수막에는 ‘인명구조요원을 과정 모집’이라고 쓰여있었거든요. 문득 저도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 누군가를 구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분 덕분에 제 동생이 살았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인명구조요원 주말반 과정을 신청했습니다.     




인명구조요원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습니다. 실내에서는 기초이론, 심폐소생술과 같은 응급처치를 배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업은 수영장에서 이루어집니다. 수심 5m 다이빙풀에서 물안경을 끼지 않은 채 훈련을 받았습니다. 고개를 들고 수영을 해야 하고, 잠수할 때도 눈을 뜨고 있어야 합니다. 구조 요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익수자를 시야에서 놓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과정은 ‘중량물’이었습니다. 5~7.5kg 이상의 바벨 원판을 가라앉지 않게 들고 헤엄을 칩니다. 물속 부력을 고려했을 때, 사람 무게가 그 정도로 느껴질 거라고 하더군요. ‘중량물은 익수자다’ 생각하고 고이 모셔와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물을 토할 정도로 먹게 됩니다. 하고 나면 수영장 물을 절반 정도는 마신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명구조요원은 구할 사람에게도 집중하는 동시에 본인의 몸도 지켜야 합니다. 익수자는 무섭고 힘든 상황이니 구조자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 경우 자칫하면 둘 다 위험할 수 있습니다. 구조자 본인이 위험하지 않은 포지션으로 접근하고, 익수자가 매달리면 빠져나오는 방법도 함께 배웁니다. 강사들은 응급상황을 재현하고자 일부러 강습자들을 누르고, 붙잡고, 매섭게 쫓아옵니다.     


인명구조요원 과정을 거치면서 저는 물이 너무나도 무서워졌습니다. 수영 경력이 나름 긴 편이어서 수영이 힘들어도 무섭진 않았는데, 당시 저에게 물은 극한의 공포였습니다. 금요일 밤만 되면 주말이 오는 게 두려워서 울기도 했어요. 열이 펄펄 끓어서 링거를 맞기도 하고요. 그래도 주말이면 수영장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어찌어찌 인명구조요원 자격을 땄습니다. 나중에 강사님들과 동기들이 그러기를, 제가 포기할 것 같았는데 포기하지 않는 게 신기했다고 하더군요. 동기 중 가장 체구도 작았고, 체력이 좋은 편도 아니어서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당시 저는 동생을 구한다는 마음으로 강습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뭔가 이 과정만 끝나면 세상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 자격증의 유효기간은 3년입니다. 저는 한 번의 갱신을 거쳤고, 더는 갱신하지 않았습니다. 자격은 소멸하였지만, 그때의 경험과 감정은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누군가를 구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실제 제 마음을 구한 과정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때를 떠올리면 삶에 대한 감사와 책임의 무게가 동시에 느껴집니다. 오늘도 생명의 갈림길에서 도움을 줄 수 있고, 도움을 주고 계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지니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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