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대로

일상의 깨달음

by 밝을 여름

"나는 인복, 먹을 복은 타고났다니까~ 하루도 점심 약속이 없는 날이 없고~ 항상 이렇게 누가 뭘 갖다 주니~ 허허허."
울 엄마의 단골 멘트다.


정말 그렇다. 근 40여 년간 엄마를 옆에서 지켜본 결과, 정말로 엄마는 점심 약속 없는 날이 없고, 항상 어디선가 누군가가 가져다주거나, 가져가라고 전화가 온다. 거의 매일이 그렇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언제나 엄마 지인들께서 챙겨주신 음식, 과일, 채소, 반찬으로 먹을 것들이 넘쳐났다. 직접 집으로 와서 이것 가져가라, 저것 가져가라는 엄마 지인분들의 전화가 올 때면 언니랑 나는 '항시 대기조'처럼 집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수시로 집 밖을 왔다 갔다 했다.


그 당시 어린 마음엔 참 싫었다. 심부름도 지긋지긋하고 무거운 거 드는 것도 너무 싫었다. 특히 하루에도 몇 번이고 전화하는 옥선이 아줌마는 내가 마음속으로 미워하는 대상 1호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한 일이지만 그때 당시는 엄마 지인분들이 뭘 줘도 그것들이 감사하지가 않았다.


그 정도로 우리 집은 비록 금전적으로는 궁핍할지언정, 먹는 것만큼은 엄마의 '인복, 먹을 복'덕분에 늘 풍족하고 풍요로웠다.




나의 10대, 20대를 돌아보면 늘 의심하고 두려움이 많고 나 자신을 믿지 못하며 남을 부러워하고 뭐든지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30대 중반까지도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좋은 대학에 못 갈 거야.'

'쟤는 나보다 잘하는 것도 없는데 왜 항상 성적도 좋 잘 되는 거지?'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취직도 안되고 돈도 못 버는 거지?'

'왜 부처님, 하느님, 예수님은 내 소원은 안 들어주시는 거지?'


이렇듯 항상 걱정, 불안, 불만의 연속이었다.

이런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나보다 5분 먼저 태어난 쌍둥이 언니는 언제나 좋은 말과 칭찬과 긍정적인 말들로 나를 위로해줬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언니 말은 위로가 아니라 진심이었는데 말이다.


그때 당시는 일찌감치 취업에 성공해 대기업에 다니는 언니가 취업 못한 동생을 걱정해서 해주는 그저 그런 위로라고만 생각했. 그래서 언니 말은 나에게 크게 와 닿지가 않았고 공감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어느 날, 삶의 낙이 없는 사람처럼 시무룩해져 있는 동생을 안쓰럽게 생각한 듯, 언니가 나에게 자신의 '소원 노트(비밀노트)'를 보여주며 그 노트에 대해 얘기해줬다.


"이거 봐봐~ 나는 진정으로 진심으로 바라는 게 있으면 여기다가(소원 노트) 아주 구체적으로 딱 한 가지만 적거든. 자주 적어도 안되고, 진짜로 간절해야 되거든. 봐봐~ 지금까지 내가 적었던 소원들이 다 이루어졌다니까."


그러면서 나보고 자신이 아끼는 그 소원 노트에 딱 한 가지 소원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으라고 했다. 나는 언니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조금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 당시 취직하고 싶었던 회사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과연 이루어질까?'


결과는 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니의 소원 노트(비밀노트)도 나에게는 먹히질 않았던 것이다.


'나는 저주받았나?'

'똑같은 쌍둥이인데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일까?'

'역시 내가 되긴 뭘 돼! 그럼 그렇지.'


세월이 흘러도 내 머리 깊숙이 박힌 부정적인 생각과 의심들은 아무리 좋은 자기 계발서를 봐도 머리로는 이해할지라도 마음으로는 와 닿지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30대 후반을 넘긴 어느 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쌍둥이 언니와 통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나는 무심결에 이런 말을 했다.


"참 부럽네. 언니 네가 말하는 대로 다 이루었으니...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딸 둘도 낳고, 게다가 둘 다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곱고."


언니는 내 말 듣자마자 조금은 커진 목소리로 담담하면서도 단호하게 얘기다.


"나는 네가 부럽구만~ 생각해봐 봐. 나는 네 시댁 쪽에 딸이 귀해서 네 둘째도 당연히 아들일 줄 알았는데, 떡 하니 딸 낳았지. 또 생각해보면, 네가 하고 싶다고 해서 프랜차이즈도 해봤지. 네가 들어가고 싶다는 회사며, 학교며, 다 이루어졌잖아. 잘 생각해보면 야말로 말한 대로 다 이루어졌네."


언니 말을 듣고 나니, 그동안 나에게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마치 누군가 내 머리를 세게 내려친 것처럼 머리가 띵해졌다.


그렇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걸 다 이루면서 살았던 것이다.

다만, 스스로 깨우치지 못했을 뿐.


내 삶을 돌이켜 잘 생각해보니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다하면서 살아왔고, 지금 현재 삶도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딱 그대인 것이다.


취업문제로 한창 고민이 많았던 시기에 언니가 내보여준 언니의 소원 노트는 진짜였다.

다만, 언니와 나의 차이는 언니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신을 믿고 소원이 이루어진다라고 확신을 했다는 것이고, 나는 여전히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는 믿지 않고 의심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알겠다.

타고난 운명이라기보다는 엄마가 자신은 인복, 먹을 복이 타고났다고 늘 말했기 때문에 말한 대로 이루어진 것이고, 언니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신 바라는 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것들이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원하고 바라는 무언가를 진심으로 계속 생각하고 말하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사실을 나도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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