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 #3
중국에게 19세기는 거대한 충격의 시기였다. 서구와의 만남은 중국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과거 천하天下의 지배자였지만 이제는 동방의 변방에 속한 여러 나라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20세기 초, 중국인에게는 몇 가지 책임이 따라붙었다. 우선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새롭게 변신하는 게 중요했다. 과학과 민주, 이를 당시 사람들은 새塞선생과 덕德선생이라 불렀다. 오늘 우리에게는 어색한 말이지만 이는 각각 Science와 Democracy의 앞 글자를 따 붙인 것이었다. (塞sai / 德de) 더불어 낡은 전통 사회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국가를 수립해야 한다는 요청도 따라붙었다. 특히 청淸은 만주족의 나라로, 중원의 한족漢族 입장에서는 언젠가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다. 낡은 이민족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수립하자. 이것이 당시 지식인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이었다.
1911년 10월 10일 신해혁명은 새로운 근대 국가의 수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중화민국은 이 해를 원년으로 삼는다. 그렇게 따지면 중국은 벌써 100년도 넘은 국가일테지만, 정작 우리가 중국이라 부르는 저 나라는 100년이 채 안 되었다. 이유는 중화민국과는 다른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륙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 중국은 1949년 10월 1일을 수립일로 삼는다.
과거 이 두 개의 중국을 두고 각각 ‘자유중국’과 ‘중공’으로 나누어 부르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중화인민공화국’을 그저 중국으로, ‘중화민국’은 대만으로 각각 칭하고 있다. 이제 중국은 두 개의 중국이 아니라 하나의 중국이 되어버린 것 같다. 세계 최강대국의 자리를 넘보는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은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낡은 부스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나의 중국’에서 보자면 여전히 껄끄러운 존재지만 이 문제가 오래 중국을 괴롭힐 것 같지는 않다.
신해혁명은 무엇을 낳았는가? 적어도 중국을 낳지는 못했다. 설령 낳았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실패한 것이라해도 무방하다. 이 '현실'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루쉰에게 신해혁명은 무엇이었을까? 루쉰 역시 새시대를 꿈꾸던 사람이었는데 그에게 신해혁명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까? 여기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다만 그 시대에도 신해혁명이 완결되거나 완성된 혁명은 아니었다는 점을 참고하자. <두발이야기>에서 보았듯, 루쉰은 혁명의 결과를 쉽게 긍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같이 사회의 냉소와 매도, 박해와 함정 속에서 일생을 보냈네, 이젠 그들의 무덤도 벌써 망각 속에서 점점 무너져 가고 있어.
그러니 당최 기념할 수가 있어야지.
<두발이야기>
이 글은 1920년 10월, 그러니까 신해혁명을 추억하며 쓴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신해혁명에 몸 바친 혁명투사들에 대한 ‘사회의 냉소와 매도’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손가락질에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 담긴 냉소를 감출 수 없다. 대체 왜 그럴까? 그것은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지만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는 중국의 현실에 대한 답답함, 혹은 근본적인 의심 때문일테다.
개혁을 하겠다고? 무기는 어디 있지? 일하며 배운다고? 공장은 어디 있나고?
조용히 지내다 시집가서 며느리 노릇이나 하는 거야. 모든 걸 잊는 게 행복일세. 평등이니 자유니 하는 말들을 그들이 기억하고 있다고 해봐, 평생 고통스럽지 않을까!
아르치바셰프의 말을 빌려 자네들에게 물어보고 싶네, 자네들은 황금시대의 출현을 그들 자손에게 약속하지만 정작 그들 자신에겐 뭘 줄 수 있는가?
아, 조물주의 채찍이 중국의 등짝을 후려치지 않는 한, 중국은 영원히 이 모양 이 꼴일 거야, 스스로 머리털 한 올도 바꾸려 하지 않을 테니 말야!
<두발이야기>
‘조물주의 채찍이 중국의 등짝을 후려치지 않는 한’, 무언가 커다란 충격이 있지 않는한 결코 변하는 건 없을 거라는 말. 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 역시 서양와의 만남 때문이 아닌가. 낡은 왕조를 무너뜨렸다면, 사람들의 마음도 바뀌어야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사회의 변화도 더디다. 그날은 대체 언제 올 수 있을까? 한 참 뒤에. 그러니 정작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은 혁명의 열매를 먹을 수 없다. ‘황금시대의 출현’을 약속하지만 정작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
여기까지 생각이 멈추면 당시 어지러운 사회에 대한 푸념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더 좋게 말하면 신해혁명의 그늘을 읽어냈다는 정도? 그러나 루쉰은 불확실한 미래보다 선명한 현실에 눈을 두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관념적으로가 아니라 실재로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미래란 늘 불확실하다. 혁명이란 확실한 미래를 향해 있는 것이라 하나, 정말 그렇게 확실한 미래라는 게 있을까?
대체 ‘희망’이란 무엇일까? 미래에 대한 꿈은 어디에 자리를 두어야 할까?
그는 여러 글에서 ‘희망’을 논한다. 기억하는지, <고향> 끄트머리에도 희망을 이야기했다. 희망이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마치 길과 같아서, 다만 다니는 사람이 많으면 길이 생기는 것과 같다고. 여기에 <들풀>에 실린 <희망> 역시 루쉰이 이야기하는 희망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글이다.
나의 마음은 아주 적막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평안하다. 애증이 없고 애락이 없고 색깔도 소리도 없다.
내가 늙은 게다. 희끗한 머리칼이 증거 아닌가? 내 떨리는 손이 증거 아닌가? 그렇다면, 내 영혼의 손도 떨리고 있을 것이며, 영혼의 머리칼도 희끗희끗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여러 해 된 일이다.
<희망>
그는 ‘적막’으로 글을 시작한다. ‘적막’, 고요함. 루쉰에게 ‘적막’이란 매우 중요한 표현이다. <외침: 서문>에서 이 적막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기억나는지. 그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 했으나, 호응도 반대도 이끌어내지 못했던 상황을 적막이라 표현하였다.
무릇 누군가의 주장이 지지를 얻게 되면 전진을 촉구하게 되고 반대에 부딪히면 분발심을 촉구하게 된다. 그런데 낯선 이들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질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다시 말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면, 아득한 황야에 놓인 것처럼 어떻게 손을 써 볼 수가 없다. 이는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리하여 내가 느낀 바를 적막이라 이름했다.
<외침: 서문>
적막이란 그 마음에 자리 잡은 어떤 답답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이 글에서 그 상태를 ‘철의 방’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이 철방을 부수는 이야기로 <외침>의 몇몇 소설이 쓰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적막은 사라졌을까? 그러나 루쉰은 여전히 적막하다 말한다. 여전히 적막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호응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까? 다르게 말하면, 사람들 속에 냉소가 가득하기 때문일까? 철의 방이 여전히 두텁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는 그에게 달라붙은 적막이 불안정한 시대에서 연유하는 동시에, 루쉰 자체에게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대는 어지러웠다. 혁명이 일어났다지만, 이 혁명에 연이어 또 다른 혁명이, 혹은 그와 정반대의 반동이 번갈아 나타났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불같이 뜨겁지 않았다. 아니, 루쉰은 이를 그저 차갑게 지켜보고만 있다. 그 마음이 적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쉰은 이 적막을 그저 받아들인다. 평안함으로. ‘애증’도 ‘애락’도 없다고. ‘색깔도 소리도 없다’고. 그의 마음을 컴컴한 마음이라 불러야 할테다. 어째서 일까? 루쉰은 자신이 늙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희망>, 이 글은 1925년 그의 나이 46살 때에 쓰였다. 참고로 1918년, <외침>에 실린 <광인일기>를 쓸 때 그는 38살 이었다. 한 10년 정도 지났으니 ‘늙었다’는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닐 법 하다. 그런데 <외침: 서문>은 1922년 이 글보다 고작 3년 앞서 있다. 정말 그는 늙었기 때문에 마음의 적막을 느끼는 걸까? 색깔도 소리도 없는.
루쉰 역시 이를 의심한다. ‘그것도 여러 해 된 일이다’라며. 마음과 몸이 늙었다는 것도 오래되었다고 말한다. 요새들어 기력을 잃고 마음의 생기를 잃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단지 몸이 늙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청춘을 소진하였기 때문에 적막이 찾아온 것은, 평안한 적막을 느끼는 건 아니다.
전에는 내 마음도 피비린내 나는 노랫소리로 가득하였다. 피와 쇠붙이, 화염과 독기, 회복과 복수, 헌데 문득 이런 모든 것이 공허해졌다. 때로는, 하릴없이, 자기 기만적 희망으로 그것을 메우려 하였다. 희망, 희망, 이 희망의 방패로 공허 속 어둔 밤의 내습에 항거하였다. 방패 뒤 쪽도 공허 속의 어둔 밤이기는 마찬가지이건만, 그러나, 그런 식으로, 나는 내 청춘을 줄곧, 소진하고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노랫소리’란 무엇일까? 잘 알 수는 없으나 그가 앞서 이야기한 ‘적막’과는 정반대의 것이 분명하다. 그 역시 싸움터에서 앞장서 무엇인가를 해보았던 인물이다. 다만 그 싸움이, ‘피와 쇠붙이, 화염과 독기, 회복과 복수’가 공허해졌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그 싸움을 회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사실.
대체 무엇이 그를 그토록 회의적으로 만들었을까?
그는 당시 그 싸움터에서 방패를 들었다 말한다. 그 방패의 이름은 ‘희망’이다. 문제는 그가 희망을 들었던 것은 무엇과 싸우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공허 속 어둔 밤의 내습에 항거’하기 위함이었다라는 점이다. ‘공허 속 어둔 밤’이란 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그가 싸우는 적, 루쉰의 말을 빌리면 원수들에게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해야할까? 아니, 이는 루쉰 그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공허’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루쉰도 스스로 이 희망을 방패삼아 항거하는 자신에게 ‘공허 속의 어둔 밤’이 있었다 말한다. ‘방패 뒤쪽도 공허 속의 어둔 밤이기는 마찬가지’였으므로.
그런데, 지금, 왜 이리 적막한가? 몸 밖의 청춘도 죄다 스러지고 세상 청년들이 죄 늙어지고 말았단 말인가?
나는 몸소 이 공허 속의 어둔 밤에 육박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희망이라는 방패를 내려놓고 페퇴피 샨도르의 ‘희망’의 노래에 귀 기울였다.
희망이란 무엇인가? 창녀.
그는 누구에게나 웃음 짓고, 모든 것을 준다.
그대가 가장 큰 보물 --
그대의 청춘을 바쳤을 때, 그는 그대를 버린다.
루쉰이 인용하는 페퇴피 샨도르의 시를 찾기는 어렵다. 주석에 따르면 헝가리의 시인이자 혁명가라고 한다. 페퇴피 샨도르의 시 전문을 찾아볼 수 있다면 그가 이야기하는 희망이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도 있으련만 그것이 쉽지 않다.
다만 루쉰이 그의 시를 인용하며 ‘몸소 이 공허 속의 어둔 밤에 육박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는 더 이상 방패를 두르고 공허를 막지 않는다. 그는 희망이라는 방패가 없이도, 이 공허와 적막을, 어둠을, 밤을 살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 공허는 몰아내어야 할 것이 아니라 육박하여 온 몸으로 상대 해야 할 대상이 된다.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과 마찬가지이다.
만약 내가 아직도 이 밝지도 어둡지도 않는 ‘허망’ 속에서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면 나는, 여전히, 저 스러져 버린, 애닯고 아득한 청춘을 찾아야 하니라. 그것이 내 몸 밖의 것이어도 좋다. 몸 밖의 청춘이 소멸하면 내 몸 안 늘그막한 기도 시들고 말 것이기에.
루쉰의 유명한 말, 빼어난 발견은 두 차례 반복된다.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과 마찬가지이다.’ 절망絶望도 희망希望도 모두 허망虛妄하다. 어쩌면 말장난 같은 이 말 속에 — 실제로 중국어로도 ‘망(望/妄)’은 똑같이 발음된다. — 루쉰은 이전, 희망을 방패삼아 살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이야기한다. 바로 ‘절망’, 아니, 허망虛妄을 끌어안는 삶이다.
허망이란 무엇인가? 이는 앞서 이야기한 루쉰의 말을 빌리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허망은 실재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무엇이다. 마치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 해도 좋다. 허망이란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허망함이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문득문득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무엇이다.
때로 헛헛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끊임없는 질주와 성장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루쉰이 말한 ‘황금시대’가 바로 우리 눈 앞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정작 삶의 희망이란, 시대의 희망이란 허망한 게 아닌가? 과연 그것은 정말 있는 것일까? 어쩌면 루쉰의 자각처럼 그 희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방패 역할에 불과한 건 아닐까? 물론 방패는 매우 소중하다. ‘피와 쇠붙이, 화염과 독기, 회복과 복수’가 오가는 전장에서 맨몸으로 나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마저 거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방패로 막아선 것인 방패 뒤에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 뒤라면 어떨까? 이 방패로도 막을 수 없는 게 있다면? 차라리 루쉰처럼 ‘몸소 어둔 밤에 육박하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희망은 가깝고 절망은 멀다. 허망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허망할 뿐이다. 그러나 이 가까운 희망이 사라진 날, 어떤 사건 때문에 혹은 어떤 계기로 희망이 꺾여 버린 날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절망이 마음을 적셔올 때, 이 말을 기억해 보는 건 어떨까?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과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