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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an 28. 2019

그리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한 연구자가 그러더군요. <논어>와 <삼국지>는 늘 팔리는 상품이라고. 그래서 글 좀 쓰고, 공부한다는 사람들은 말년에 <논어>와 <삼국지>에 대한 책을 쓰곤 한다고.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매년 수 없이 많은 <논어> 책이 쏟아져 나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어찌나 책이 많은지 그 많은 책을 소화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곤 해요.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저의 첫 저작은 <논어>를 소재로 한 책이었습니다. 매년 학교나 도서관 등에서 여러 차례 강의를 요청받는데 태반이 <논어>를 주제로 한 강의입니다. 이렇게 <논어>와 인연을 맺은 까닭에 터무니없는 욕심을 품어보기도 했습니다. <논어>에 관련된 책은 모두 읽어보자는. 그러나 이내 포기하고 말았어요. 앞에서 이야기했듯 너무 많은 책이 쏟아지는 까닭도 있지만, 흥미를 돋우는 책을 발견하지 못한 까닭도 있습니다. 비슷한 책을 읽노라면 쉬이 지치기 마련이지요. 


<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다른 책들, 예를 들어 <노자>, <장자>, <맹자>, <순자> 등과 비교해보면 수많은 <논어> 번역서들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는 편이예요. 여기에는 <논어>를 특정한 방향으로 읽어온 해석의 역사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시간 이야기한 주희의 주석을 손꼽을 수 있어요. 주희의 <논어집주>는 천 년 가까이 정통으로 인정받았답니다. 그것은 우선 주희의 해석이 과거시험의 평가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었어요. 시험에는 정답이 있어야 하는 법. 주희의 해석이 정답이니 어찌 여기에 도전할 수 있을까요?


물론 주희의 해석을 비판한 사람이 영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중국 명나라의 왕양명이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주희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내놓았어요. 그로부터 출발한 학문을 양명학陽明學이라 부릅니다. 주자학과 비교할 때 양명학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요. 그러나 왕양명은 옛 경전을 연구하는데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논어>를 다르게 읽을 수 있는 큰 방향을 제시하는 데는 좀 부족한 면이 있어요.


중국 청나라 시기의 학자들도 주희를 비판하곤 했습니다. 이들은 주희의 <논어> 해석이 치밀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글자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문장을 억지로 해석한 부분이 있다고 보았답니다. 이들의 학문을 고증학考證學이라 해요. 대표적으로 유보남의 <논어정의論語正義>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편 최술이라는 사람은 <수사고신록洙泗考信錄>에서 공자에 대한 기록을 믿을 수 있는지를 따져보았어요. 


동시대 조선 후기에도 좀 다른 관점을 가진 인물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산 정약용을 들 수 있어요. 그는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라는 책에서 <논어>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수집하여 비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새로 나오는 <논어> 번역서는 정약용의 주장을 많이 참고하곤 합니다. 한편 정약용의 <논어고금주>는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새로운 해석을 참고하기도 했어요. 당시 일본에서도 새로운 해석이 시도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일본의 오규 소라이는 <논어징>이라는 책을, 이토 진사이는 <논어고의>라는 책을 남겼어요. 유학의 중심지인 중국과 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까요? 아주 색다르고 독특한 해석이 많아 지금도 연구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한중일 모두 기존의 해석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어요. 그러나 이런 노력이 정통이 된 해석을 부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희의 해석이 지닌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도가 채 여물기도 전에 새로운 문제를 생겼기 때문이예요. 서구열강의 침입과 함께 사회 전체가 변화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과거제 폐지를 들 수 있어요. 천년이 넘게 과거 시험으로 관리를 선발했는데, 갑자기 이 방법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논어>와 같은 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이제 과거시험도 없어졌고, 이제 아무런 쓸모가 없다며 읽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어요. 한편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의 전통이니 소중히 여겨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어요. 


중국의 경우에는 전자의 입장이 크게 힘을 얻었습니다. 한동안 공자는 단절해야 할 낡은 전통을 대표하는 말처럼 여겨졌어요. 공자의 무덤을 파해치고, 과거의 유물을 불태우는 일까지 일어났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도리어 공자를 크게 높이고 있어요.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전통을 새롭게 읽어야 한다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후자의 입장이 크게 힘을 얻은 편입니다. <논어>를 지키고 보살펴야 하는 전통 가운데 하나로 여겼지요. 그래서일까요? <논어>에 나오는 팔일무八佾舞라는 춤이 아직도 전해지고 있답니다. 중요무형문화제 가운데 하나인 데다, 중국에서도 배우러 찾아온다 해요. 지금도 매년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와 함께, 팔일무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네 <논어> 번역이 비슷한 것은 이런 역사적 이유와 배경 때문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어요. 바로 오늘날 <논어> 같은 책에 거는 습관적인 기대 때문이기도 합니다. <논어>에는 뭔가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곤 하지요. 여전히 <논어>를 경전經典으로 대하는 태도가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경전은 새로운 것을 전하는 책이 아니지요. 기존의 규범과 가치를 확인해주는 책입니다. 당연히 새롭고 신선한 것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별 인기가 없어요.


다양한 경로로 <논어>를 강의하면서 안타까웠던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청소년이나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강의를 기획했는데 정작 자리에는 반백의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아요. <논어>를 만나기도 전에, <논어>를 읽기도 전에 낡고 고리타분한 책이라는 인상이 박혀 버린 까닭입니다. 


저는 <논어>를 경전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대신 고전古典의 자리에 올려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이란 늘 새로운 해석을 기다리는 책을 말하지요. 비록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는 책입니다. <논어> 역시 새로운 독해를 기다리는 책입니다.


새로운 독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소개한 새로운 시도들, 유보남이나 최술, 정약용, 오규 소라이와 이토 진사이의 해석을 참고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전문 연구자들이 해야 할 몫이지요. <논어>도 읽기 벅찬데 이들의 책까지 참고라니 부담일 것입니다. 


저는 도리어 <논어>를 읽되 좀 다른 방법으로 읽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논어>란 '말의 묶음'이지요. '이야기하고 토론하다'는 뜻이 있기도 합니다. <논어>를 읽으며 각자에게 의미 있는 말들을 뽑아 새로 엮어보면 어떨까요? 약 500여 개의 문장이 모두 똑같이 의미 있는 말로 읽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문장을 뽑아 엮으면 또 다른 <논어>, 'OOO의 <논어>'가 탄생하겠지요. 혹은 함께 읽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에 말을 보태는 것도 방법입니다. 각자의 의견을 추려 묶으면 또 색다른 <논어>가 되겠지요. 


해체와 재구성.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은 이 작업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논어>를 인물의 이야기로 흩고 새롭게 묶어 보려 했어요. 지면의 한계로 상세히 다루지 못한 부분도 많습니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더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어요. 그래도 <논어>가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면 작은 목적을 이룬 셈입니다.


이렇게 12주, 석 달의 연재를 매듭짓습니다. 본디 예전에 써놓은 글을 정리하려 시작한 일인데, 쓰다 보니 이전의 글과는 적잖이 달리진 부분이 많습니다. 이것대로 유익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글에서, 다른 기회에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2019. 01. 27.

남산 해방촌 온지곤지에서 기픈옹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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