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문화기행 3기 #2
<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 무척이나 긴 제목의 이 책은 어느 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답니다. 제목을 보면 대단한 책임에 분명합니다. 중국과 일본은 물론, 조선을 뒤흔들었으니까요. 대체 무슨 책이기에 이토록 큰 영향을 끼쳤을까요?
사실 우리가 제법 많이 알고 있는 책입니다. 바로 <삼국지>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제법 많은 내용을 알고 있기도 해요. <삼국지>를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등장인물을 꽤 많이 읊어댈 수 있습니다. 유비, 관우, 장비 세 형제의 이름을 한 번씩은 들어보았을 테지요.
우리는 중국으로 떠나기 전, <삼국지>에 대해 함께 공부했어요. 많은 책 가운데 <삼국지>를 꼽은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책이기도 하지만 중국을 잘 설명하는 책이기 때문이었답니다. <삼국지>를 펼치면 나오는 첫 문장이 이렇습니다. "천하의 모습이란, 합쳤더라도 반드시 나뉘며 나뉘었더라도 반드시 합쳐지기 마련이다." 하나의 나라가 셋으로 나뉘고 다시 합쳐지는 이야기. <삼국지>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거예요.
실제로 중국 역사를 보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어찌나 많은 나라가 생겼다가 사라졌는지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곤 하지요. 중국 학생들은 참 고생이겠다. 저렇게 많은 나라의 이름을 어떻게 외운다나?
몇 백 년 단위로 나라가 바뀌는 바람에 중국은 아주 다채로운 문화를 갖게 되었어요. 게다가 각 왕조마다 수도가 달랐기 때문에 어느 지역을 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중국을 만날 수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가는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가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답니다. 제대로 수도의 모습을 갖춘 건 청나라 때예요. 지금까지 중국의 수도 역할을 하지만 중국 전체를 보면 유서 깊은 도시는 아니랍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기도 합니다. 지금의 중국을 보려면 베이징을 보라, 그러나 3000년의 중국을 보려면 시안을 보라. 3000년의 중국이라니! 실제로 시안은 오래도록 수많은 왕조가 일어났다 사라진 곳이었어요. 그만큼 수많은 나라들이 이 도시를 두고 전쟁을 벌였지요. 그래서 <삼국지>의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촉의 제갈량은 이 도시를 손에 넣기 위해 여러 차례 전쟁을 벌이기도 했어요. 바로 한나라의 수도였기 때문입니다.
시안西安의 이름은 서쪽을 평안케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 지도를 접어보면 동서 중앙의 자리에 시안이 있어요. 실제로도 오랫동안 이 도시는 중국 역사의 중심에 있었답니다. 그래서 옛 이름이 더 유명하지요. 이 도시의 옛 이름은 장안長安! 어찌나 유명한지 지금 우리말에도 흔적이 남았을 정도예요. 예를 들어 '장안의 화제'라는 말이 있지요.
시안, 곧 장안은 주나라, 진나라,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까지 13개 왕조가 수도를 두었던 곳이예요. 약 1000년 동안 수도였으니 이름 그대로 오랜(長) 평안(安)을 꿈꾼 도시라고 할법합니다. 그래서 로마, 아테네, 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고도古都,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로 손꼽히고 있어요.
과거 장안이 가장 융성했던 시기는 당나라 때였습니다. 이때는 얼마나 이 도시의 인구가 많고 화려했던지 서쪽에 로마가 있다면, 동쪽에는 장안이 있다고 할 정도였어요. 실제로 이 두 도시는 많은 교류를 주고받기도 했어요. 바로 그 유명한 비단길, 실크로드를 통해서 수많은 상인들이 오갔지요.
이 실크로드는 단지 상인들만 오간 것은 아니었답니다. 그중에는 스님들도 있었어요.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 직접 가서 공부를 하고자 했던 스님들도 이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떠났답니다. 당나라 때의 현장 스님은 장안에서 출발해 인도까지 이릅니다. 약 20년간 인도에 머물다가 다시 장안으로 돌아오지요. 지금 보아도 엄청난 거리를 두발로 걸어 여행했어요.
그 긴 거리를 여행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요? 현장 스님은 그 긴 여행 이야기를 묶어 책으로 만듭니다. 바로 <대당서역기>라는 책이예요. 그러나 훗날 사람들은 이 책 보다 갖은 고생을 하며 서쪽으로 여행을 떠난 스님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훗날 한 사람이 이 스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나의 소설을 씁니다. 바로 서쪽으로 여행을 떠난 이야기, <서유기>이지요.
<서유기>도 <삼국지>만큼 유명한 책이예요.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은 물론 삼장법사의 이름을 누구나 들어봤을 겁니다. 그러나 이 삼장법사가 실제 역사 인물, 당나라의 현장 스님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인도까지 공부를 떠난 현장 스님은 세 종류의 경전을 다 익혔다는 뜻에서 '삼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답니다. 역사 속 삼장법사 현장 스님은 혼자 인도를 다녀왔지만 <서유기>에서는 세 제자와 함께 여행을 떠나지요.
<삼국지>가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면, <서유기>는 태반이 상상으로 쓰였어요. 수많은 신들이며 요괴들, 기묘한 도술까지. 요즘으로 치면 판타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주인공 가운데 하나를 역사 인물에서 빌려온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오늘도 이 <서유기>를 빌린 다양한 작품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답니다. 일본 만화 <드래곤볼>은 손오공의 이름과 모습을 빌려왔어요.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신서유기>도 여기서 아이디어를 따왔지요.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장안에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예요. 장안에는 서쪽에서 건너온 수많은 상인들이 있었답니다. 이들이 가져온 다양한 물건이며, 낯선 문화들은 장안을 아주 떠들썩한 도시로 만들었지요. 이런 풍요로운 환경이 <서유기> 같은 이야기를 낳는 배경이 되었어요.
당연히 우리는 <서유기>도 함께 공부했어요. <삼국지>가 누가 중앙을 차지하냐를 두고 다툰 이야기라면 <서유기>는 변두리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예요. 중앙과 변두리, 바로 오늘의 시안이 그런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변화무쌍한 역사와 각양각색의 문화, 이 둘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시안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시안으로 떠났답니다. <삼국지>와 <서유기>를 읽고, 역사와 문화의 도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