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인문학서당 '돌쇠'의 글쓰기
인간 본성을 이야기하는 세 가지 주장이 있다. 성선설, 성악설, 그리고 성무선악설이다. 맹자는 그중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성악설’과 ‘성무선악설’은 각각 순자와 고자가 제시했다.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는 인간이 본래 악하다고 주장했고, ‘성무선악설’을 주장한 고자는 본성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성선설, 성악설, 심지어는 성무(無)선악설도 있는데, 왜 ‘성유(有)선악설’은 없는 것일까?
공도자와 맹자의 대화에서 공도자는 또 다른 본성설을 이야기한다. 그중 이런 것이 있다. ‘선한 본성을 지닌 이도 있고, 선하지 않은 본성을 지닌 이도 있다.’ 이렇듯 사람은 다양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성선이라기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이 악한 사람이 있고, 성악이라기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이 착한 사람도 있다. 아무리 자라온 환경과 받은 교육에 따라 타고난 본성과 다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만 설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순임금은 자신을 죽이려는 등 인륜을 저버린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그러나 맹자가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군주가 되었다. 반면, 순임금의 동생인 상은 4대 악인 못지않은 악한 사람이 되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도저히 같은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할 수 없다. 같은 가정 내에서도 받은 교육과 처한 환경이 다르기에 순임금과 상의 차이가 생겼다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만약 아이를 선한 사람으로 기르고 싶다고 순임금이 겪은 생명의 위협 등을 겪도록 하면 될까? 분명 주변 환경은 사람의 성품을 결정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절대적이지는 않다. 그렇기에 필자는 환경이 성품에 영향을 미치기 전, 사람들의 본성이 ‘랜덤’으로 선하거나 악하게 태어났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성유선악설’이라고 부르겠다.
한나라 시대의 대학자인 동중서는 이와 비슷한 ‘성삼품설’을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성인의 성품을 갖기도 하고, 군자의 성품을, 혹은 소인의 성품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맹자, 순자 등의 견해와는 다르게, 어떤 교육을 받더라도 본래의 성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성삼품설’의 특징이다.
동중서의 주장은 인권을 유린할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고용주는 자신이 피고용인보다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에 자연스레 사람을 나누고, 본성의 차이를 들이밀며 부당한 노동을 요구할 수 있다. 이렇듯 인권 침해를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 어쩌면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조차도 부당함이 당연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실제로 성삼품설이 사회 계급을 나누는 논의로 활용된 것을 고려하면, 위 경우가 예시로 그치지 않고 충분히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가 말하는 ‘성유선악설’은 교육과 제도 등을 통해 자신이 지닌 본성을 바꾸거나 확충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맹자는 자신의 성선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보리 씨’의 비유를 든다. 씨를 뿌린 땅이 같고 시기가 같으면 모두 비슷하게 자라나는데, 왜 유독 사람에 대해서만 그 이치를 의심하냐고 하였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맹자의 말처럼 땅, 시기, 비옥도 등을 포함하는 독립변인을 모두 같게 통제하더라도 보리 씨는 다르게 자랄 수 있다. 문제는 보리 씨 그 자체에 있다. 애초부터 싹이 잘 자라는 씨, 잘 자라지 않는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모두 존재한다. 무엇이 어떤 씨인지, 누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맹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왜 유독 사람에 대해서만 그걸 의심하는가?”
맹자의 ‘보리 씨’를 빌려 더 이야기해보자. 씨를 심은 직후에는 어떤 씨가 잘 자라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싹을 키우면서 잘 자라지 않는 씨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선 잘 자라지 않는 씨에게는 영양제를 더 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어떤 본성으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선인인지 악인인지를 구분할 수 있기 전까지는 고자의 말처럼 윤리적 태도를 교육시켜야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교육을 통해 사회 속에 어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중에 본래 악하게 태어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부족한 선을 채우기 위해 별도의 교육을 해주면 된다.
우리는 모두 ‘랜덤’하게 태어났고, 우리의 본성은 ‘랜덤’하게 정해졌다. 모든 것이 우연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에서 자신이 어떤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어떤 인간으로 살고 있는 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서울사대부고 선농인문학당에서 쓴 글입니다.
* <오늘을 읽는 맹자>를 읽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