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꼭지로 읽는 중국철학사 5-2
* 동대문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여섯 꼭지로 읽는 중국 철학사' 강의안 초안입니다. (링크)
이 책은 하나의 이치로 시작하여 중간에는 갖가지 일로 나뉘다가 끝에는 다시 하나의 이치로 수렴된다. “흩어 놓으면 온 세상에 가득 차고, 모아두면 은밀한 데 감춰진다.”한 것처럼, 이 책의 의미는 끝이 없으나 모두 구체적인 배움(實學)이다. 이 책을 잘 읽고 의미를 곱씹는다면, 평생토록 사용하더라도 다하지 못할 것이다.
其書始言一理,中散為萬事,末復合為一理,「放之則彌六合,卷之則退藏於密」,其味無窮,皆實學也。善讀者玩索而有得焉,則終身用之,有不能盡者矣。
<중용장구中庸章句>
한무제는 "파출백가罷黜百家 독존유술獨尊儒術"을 천명하였다. 제자백가라는 다양한 학파 가운데 유가만 남겨두고 여러 학파를 내쫓았다는 뜻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한무제가 구축한 제국, 천하제국이 선택한 철학이 바로 유가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다른 학파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무용하다는 것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황제의 말이며, 무엇을 관학官學으로 선택할 것인가, 제국의 통치철학 곧 국가철학으로 쓸모 있는 것인가를 논한 것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나라와 당나라는 유가경전을 통치이념으로 삼았으나 황제 개인 혹은 황실은 유가보다 다른 학파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무제가 유가의 시대를 연 인물이라 하지만, 그 개인은 신선술에 푹 빠져있었다. 당나라의 황실은 공공연히 도교를 숭상했으며, 불교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장안성 축조에서 볼 수 있듯 유가 경전의 이상은 통치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초적인 배경이 되었다.
송대 사대부, 그중에도 도학자道學者라 스스로 자칭했던 무리가 있었다. ‘도학道學’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은 ‘도道’라는 궁극적 원리를 탐구하는 데 몰두했으며, ‘도’를 체득하고 논할 수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들은 유가가 단순히 통치이념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무제 이후 유가가 관학官學이 되었다지만, 이는 본질을 잃고 형식화된 것에 불과했다. 당나라 황실의 이중적 태도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정신적 차원에서 유가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가는 천하 제국을 이끄는 통치 이념인 동시에 또한 내면을 탐구하는 자기 수양의 학문이기도 하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내성외왕內聖外王이라 할 수 있다. 내면으로는 성인의 경지를 추구하며 밖으로는 왕도王道 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 송대 도학자들에게 이것은 두 가지 일이 아니라 하나의 일이었다. ‘도’는 내면의 정신과 사회적 역할의 통일, 즉 내외합일을 가능케 하는 궁극적 원리를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즉, 도학자들은 관료로서는 유가의 이상을 실현하며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우리에게 친숙한 경전 문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대학大學>에 실린 말로 자기 수양(修身)에서 시작하여 천하만물에까지 덕을 펼치는(平天下) 과정을 간단히 압축하여 보여준다. 이를 달리 말하면 개인으로부터 국가로, 개별자로부터 보편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만 보면 국가 안에서 사대부 개인의 역할을 엉성하게나마 체계화한 것에 불과하다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대학> 본문에서는 이에 앞서 몇 가지 단계를 더 설정해 놓았다. 수신修身에 앞서 ‘격물 - 치지 - 성의 - 정심’이라는 단계가 설정되어 있다. 이는 사물을 탐구하고(格物), 우주적 이치를 체득하며(致知),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활동을 경계하고(誠意), 마음의 안정을 얻는(正心) 것을 의미한다. 송대에 이르면 수양修養이란 이처럼 복잡하고 치밀한 과정 전체를 포괄한다.
이렇게 된 데는 불교와 도가(도교)의 영향이 크다. 불교는 마음(心)과 본성(性)이라는 주제를 탐구하게끔 했다. 이때의 마음이란 감정과 지각 모두를 포괄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의 양상과 영향에 대해 풍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감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 감정은 어떤 식으로 생겨나는가. 그 감정은 개인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또한 타인과의 관계에는, 나아가 우주 전체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감정은 실재하는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감정 상태란 어떤 것인가. 지각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의가 이어졌다. 외부 사물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안다는 것은 무엇을 아는 것일까. 인식의 과정과 결과는 ‘나(我)’라는 개별적 존재와 어떤 관계를 갖는가. 내가 있기에 인식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식하기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일까.
마음(心)을 탐구하며 내면을 분석했다면 본성에 대한 논의는 인간을 한층 가치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모든 인간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 부처란 서방의 현자, 고타마 싯다르타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에 그치지 않는다. 소수의 빼어난 인물들을 포괄하는 말도 아니다.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존재 자체가 이미 부처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은 신선하고도 매력적인 소식이었다. 나아가 인간을 넘어 동물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주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간을 만물의 하나로 상대화시키는 동시에, 천하 만물을 포괄하고 관통하는 개념을 상상하도록 했다.
불교가 던진 다양한 질문, 이들이 남긴 풍부한 논의는 일반 백성은 물론 사대부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불교가 없었다면 송대 도학자들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은 불교의 개념과 논의를 흡수하는 동시에 이를 유가의 언어로 바꾸어버렸다. 그 결과 마음과 본성에 대해 언급한 <맹자>가 새롭게 주목받았다. 이전까지 <맹자>는 여러 제자백가의 문헌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예기>의 여러 편 가운데 하나였던 <대학>을 독립적인 텍스트로 읽기 시작한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대학>은 다른 어떤 유가 경전보다 감정과 지각과 같은 마음의 구조를 분석하고 논의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런 까닭에 일부 학자는 송대 도학자들을 일컬어 유학자의 옷을 입은 불교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속은 불교이나 껍데기만 유가라는 말이다. 공자와 맹자 등이 송대 도학자들의 논의를 접했다면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불교를 경유하지 않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 투성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송대 도학자들은 불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을 ‘불교화된 유가’라고 단순하게 평가할 수 없는 것은 도가(도교)의 영향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도道’는 분명 도가의 주요 개념이었다. ‘도’는 만물의 근원적 원리이자 포괄적 원리였다. 그러나 이를 구체화하는 개념과 언어는 그리 풍부하지 못했다. 도리어 이를 세세하게 분석하는 것을 삼가는 태도를 보였다. ‘도는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선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도교의 융성은 다양한 개념들을 발견하고 체계화한다. 음양陰陽, 오행五行, 태극太極, 그리고 기氣라는 개념까지. 도학자들이 천하국가를 넘어 우주만물을 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개념이 폭넓게 수용되었던 까닭이다. 도가(도교)는 확실히 이전보다 큰 세계관을 선물해주었다. 동시에 통일적인 원리에 주목하게끔 했다.
도학자들은 한, 당을 암흑기로 묘사하곤 했다. 과거 사람들은 거추장스런 형식, 공리공담에 사로잡혀 있었다. 유학자들은 관료가 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자기 수양이나 내면의 문제는 팽개쳐 두었다. 그렇다고 도학자들이 불교와 도가를 긍정한 것도 아니다. 천하국가를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현혹했다. 송대 도학자들에게는 과거의 모든 것이 허학虛學, 헛된 가르침에 불과했다. 이는 거꾸로 자신들의 논의가 바로 실학實學,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가르침이라는 주장이기도 했다. 수백 년 뒤, 후대 사람들은 그들의 학문을 허망하다 평가하고 또 다른 실학을 찾아야 한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송대 도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이야 말로 새 시대를 여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학문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실학이 무엇이냐 하는 논의는 무의미하다. 시대마다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까닭이다. 대신 실학이라는 말은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헛되다고 평가했던 과거의 유산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헛된 것이 있어야 참된 것이 있으며, 과거와의 단절을 강조해야만 새로움이 돋보이는 까닭이다.
송대 도학자들은 과거의 다양한 철학적 유산을 종합하여 체계화하였다. 그들은 한, 당을 부정했지만 한, 당의 유산을 제거하고 송대 도학자들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어느 정도는 불교도였으며, 어느 정도는 도가에 심취한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유학자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일차적으로는 유가경전을 숭상했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다. 이들은 불교의 경전이나 도가의 경전보다 공자나 맹자의 말을 숭상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은 이전까지의 유가 경전체계를 파괴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맹자>와 <대학> 등은, 낡은 유가의 눈으로 보기에는 경전의 범주에 들지 않는 텍스트들이었다.
범중엄의 <악양루기岳陽樓記>라는 글은 송대 사대부의 이상을 잘 보여주는 글로 유명하다.
조정의 높은 자리에 있을 때에는 백성을 근심하고, 물러나 강호에 있을 때엔 임금을 근심해야지. 관직을 얻어도 근심하고, 관직에서 물러나도 근심하도다. 그럼 언제 즐거워할 것인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천하 사람이 근심하는 것보다 먼저 근심하고, 천하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중에 즐거워하라.”
居廟堂之高 則憂其民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是進亦憂 退亦憂 然則何時而樂耶 其必曰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이를 간단히 줄이면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정신이라 한다. 조정의 관료로서 천하를 다스릴 때도 있지만 조정의 업무에서 물러나 있을 때에도 천하의 일에서 손을 떼는 것은 아니다. 관직에 있건 없건 천하국가를 다스리는 일에 어떻게든 참여하는 것이 사대부의 이상이었다. 통치(治)란 국가적 차원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개인의 일상에서도, 개인의 내면에서도 평천하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송대 사대부는 물론 이를 체계화하고 개념화하는데 골몰한 도학자들도 공자 이래 전승된 이 이상을 실현하는데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천하국가에 대한 책임의식, 이것이 그들 스스로 사대부라고 자칭한 이유이며 불교나 도가와 이들을 구분하는 중요한 차이점이었다.
선우후락先憂後樂, 먼저 근심하고 나중에 즐거워한다는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늘 근심하고 즐거움은 영원히 유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천하를 떠돌며 자신의 이상을 펼치고자 했던 공자의 꿈은 송대 사대부들에게 이렇게 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