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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03. 2020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장자를 만나는 네 가지 길 0

* 용산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장자를 만나는 네 가지 길' 강의안 초안입니다. (링크)


'본다'에 앞서 빛이 필요하다. 빛이 사물에 반사되어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 만약 빛을 반사하지 않고 흡수하기만 하는 물체가 있다면 어떨까? 아마 검게만 보일 것이다. 아니, 검은색이라는 것도 하나의 색이므로 전혀 낯선 무엇인가로 보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할까? 


우주에는 빛을 집어삼키는 존재가 있다 한다. 바로 블랙홀. 얼마 전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블랙홀이 관측되어 뉴스에 나온 적이 있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나왔던 모습과 비슷하여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이론 물리학으로 계산한 결과와 비슷하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환호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점이 있는데, 블랙홀을 볼 수도 촬영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빛을 빨아들이므로 그것을 보는 것도, 촬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대관절 '블랙홀 사진'이라는 것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주변의 정보를 취합하여 예측한 결과물이란다. 즉, 블랙홀 자체를 볼 수 없으므로, 주변을 관측하여 그 대략적인 모습을 간접적으로 확인한 결과물이다.


관측된 블랙홀의 이미지


여기 비슷한 인물이 있다. 바로 장자莊子. 이해와 오해가 엇갈리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독특한 사유는 그를 쉽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 진실과 허위를 오가며, 이론과 상상을 가로지르는 까닭에 그를 딱 무어라 설명하기 힘들다. 실상 그가 의도하는 것은 어떤 지식이 아닌,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닐까 질문이 들기도 한다.


유랑하는 사상가, 허풍선이 이야기꾼, 혼돈의 철학자, 냉소적 현실주의자. 그를 설명하는 말들을 지어 붙여보아도 뭔가 허전하다. 이는 장자 사유의 독특한 특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우리와 아득히 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문턱이 있다. 일단 그의 시대가 멀리 떨어져 있다. 기원전 3~4세기 인물로 추정되니, 장자는 2천 년도 넘은 옛날 사람인 셈이다. 그에 대한 기록도 별로 남아있지 않다. <장자>라는 책조차 인간 장자에 대해 그렇게 많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장자>라는 책도 문제다. 오늘날 남아있는 <장자> 전문 가운데 과연 얼마가 장자 본인의 글인지 논란이 많다. 당연히 진실을 가려낼 방법은 없다.


물론 이런 문제는 장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장자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여러 사상가들, 이른바 제자백가諸子百家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들이다. 오늘날 남아있는 책들은 후대의 추종자들이 쓰고 정리한 책이라 보아야 한다. 얼마간 해석되고 편집된 결과물을 본다는 사실이다. <논어>의 말을 모두 공자의 말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인물보다 텍스트에 집중하는 편이다. 공자가 말했다는 말보다는 <논어>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이 정확하다. 장자 역시 마찬가지. 역사적 인물 장자보다는 눈앞의 텍스트 <장자>가 더 확실하다. 그러나 문자는 말하지 못하는 법. 우리는 늘 누군가를 상상하기 마련이다. <장자>라는 서물書物, 텍스트를 통해 장자라는 하나의 인격을 상상해볼 수 있다. 


문제는 <장자>가 장자에 대해 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 나아가 <장자> 자체의 내용이 너무도 혼란스러워 해석하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다. <장자>는 어지러운 책이다. 장자는 미꾸라지와 같아서 잡았다 싶으면 미끄러져 도망가버리곤 한다. 


개인적으로도 <장자>를 읽을 때마다 다르다. 나의 장자론莊子論이라는 것을 세워보려 하지만 쉬이 무너져버리곤 한다. 이런 곤혹스러움을 해결해보고자 장자 곁에 몇 명의 인물을 세워보았다. 공자, 맹자, 노자, 사마천이 그 인물이다. 각각의 인물과 견주어보면 장자의 모습이 더 잘 보이지 않을까? 마치 간접적으로 블랙홀을 관측할 수 있었듯 모순덩어리 사상가 장자의 자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네 인물을 통해 장자를 만나는 것. 각각의 시대와 조건을 통해 장자를 다르게 조망해 보는 것. 이것이 본 강의의 목표이다. 이런 까닭에 '장자를 만나는 네 가지 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한편 다른 부수적인 효과도 있지 않을까 싶다. 장자를 만나기 위해 선택한 그 길이 공자, 맹자, 노자, 사마천을 이해하는 길이 될 수도 있을 테다. 그림자가 사물을 돋보이게 만들듯,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가는 이 글의 독자, 본 강의의 청자에게 맡겨진 것이 아닐까.



장자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문득 시안의 한 박물관에서 본 돌인형이 생각났다. 곁에는 병마용의 토용이 생생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또렷한 얼굴보다도 눈코입 아무것도 없이 넌지시 말을 거는 돌인형이 인상 깊었다. 무언가 말을 거는 듯한 기묘함, 그러나 생생한 어떤 질문.


장자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까. 섣부른 답보다는 한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질문으로 답하는 법, 날개 없이 나는 법. 길 없이 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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