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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03. 2020

상식 혹은 오해

1강 장자와 공자 #1

* 용산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장자를 만나는 네 가지 길' 강의안 초안입니다. (링크)


흔히 중국 사상사의 특징으로 삼교일치三敎一致를 든다. 세 가지 교파가 한데 묶여 ‘중국의 사상’이라 부를만한 것이 탄생했다는 말이다. 이때 셋으로는 유불도儒佛道를 든다. 이 말처럼 유가儒家, 불가佛家, 도가道家는 중국 사상을 대표하는 학파로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전해왔다. 이 가운데 불가는 서역에서 수입되어 중국에 정착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대漢代에 전해졌으나 크게 융성한 것은 위진시대魏晉時代를 거쳐 당대唐代에 이르러서였다. 반면 유가와 도가는 춘추전국시대부터 발전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유가는 자기 변신을 많이 했던 까닭에 여러 이름으로 불리었다. 한대의 훈고학訓詁學, 송대宋代의 주자학朱子學, 명대의 양명학陽明學, 청대의 고증학考證學 따위가 그것이다. 이런 호칭이 편의에 의해 붙여진 것이기는 하나,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다는 것은 그만큼 시대별로 제기한 문제가 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 이렇게 다양하게 갈라진 유가의 뿌리, 즉 춘추전국시대의 유가를 일컬어 공맹학孔孟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공자孔子는 유가를 개창했고, 맹자孟子는 공자를 이어 이를 발전시켰다. 공자와 맹자가 끼친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에, 공맹학이라는 말은 유가 전체를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헛된 공리공담을 일삼는 유가의 말을 ‘공자왈 맹자왈’이라 비꼬지 않았나.


이와 비슷하게 춘추전국시대의 도가를 일컬어 노장학老莊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노장老莊은 도가 전체를 아우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공자와 맹자가 그랬던 것처럼, 노자老子와 장자莊子가 도가의 기틀을 닦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뜻이다. 공맹학과 노장학이라는 말을 보면, 공자와 노자가 짝을 이루고 맹자와 장자가 짝을 이룬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단 공자와 장자를 제일 먼저 짝 지웠다. 이어서 맹자와 견주어보고 마지막으로 노자와 견주어볼 예정이다. 이는 노자의 허구적 특성 때문인데, 구체적인 내용은 '장자와 노자'를 다루며 이야기하도록 하자. 


장자와 공자를 견주어 본다면 쉬이 몇 가지 차이가 떠오를 것이다. 이를 도가와 유가의 차이라 해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장자가 자유를 추구했다면 공자는 세속을 추구했다. 장자가 형이상학적 사유, 이상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공자는 형이하학적 사유, 현실적인 측면을 말했다. 장자가 정치로부터 떠나려 했다면 공자는 정치로 뛰어들려 했다. 장자가 자연을 추구한 반면 공자는 문명을 추구했다. 이 이외에도 더 많은 대립항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장자와 공자를 나누는 이러한 상식적인 관점에 의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도리어 위와 같은 일반적인 이해가 장자와 공자를 이해하는데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도리어 이 둘을 이해하는 거추장스러운 틀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장자가 현실적인 반면 공자는 이상적이라고. 


과연 이것이 무슨 말일까. 여기서는 배움(學)과 앎(知)이라는 두 키워드로  이 둘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즉, 공자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장자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배움과 앎, 언뜻 보면 비슷한 이 둘은 공자와 장자의 서로 다른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개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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