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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24. 2020

아! 근본 없는 것들

[차이나리터러시 세미나] <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 차이나리터러시 세미나 발제문
<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中 '물의 도'


* 중국의 동성금혼 사상에서 유래하여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법제화되고 확립된 동성동본금혼제는 ... 

* 동성동본금혼제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단군건국초부터 전래되면서 관습화된 우리 민족의 미풍량속으로서 ...

<헌재 1997. 7. 16. 95헌가6>

    

민법상 8촌 이내 금혼을 두고 여러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편 동성동본금혼 문제도 함께 소환된다. 본디 동성동본금혼 및 부계 8촌 이내 금혼이었던 법 조항이, 동성동본금혼이 폐지되면서 8촌 이내의 혈족간 금혼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동성동본금혼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것인지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꽤 격렬한 논쟁을 낳았다.


위 인용문은 각각 동성동본금혼 폐지와 유지의 의견에서 따온 것이다. 한쪽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다른 쪽에서는 '단군건국초부터 전래'된 것이라 이야기한다. 대관절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실상을 따져보면 어디서 유래했다고 명확히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성姓이니 본本이니 하는 것의 역사가 그렇게 깊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성씨를 가지고 있고 게 중에는 제 성씨의 역사를 줄줄 꿰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족보 있는 번듯한 가문의 자손인 셈이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양반은 소수에 불과했다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그 많던 양민과 천민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죽창을 들고 분연히 일어났다가 다 죽어버린 것일까? 


'성姓'은 글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본디 모계 사회의 계보를 나타내는 것이었단다. 그러나 그 유래는 대관절 어디에 갔는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족보를 다 뒤져보아도 제 시조가 여성이었다고 쓰는 족보는 하나도 없을 테다. 본本이라는 글자는 하나의 환상을 심어준다. 유구한 하나의 뿌리에서 나라는 개체가 태어났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나는 수많은 유전자의 총합이다. 부모의 부모의 부모... 나는 '충주 김 씨'로 등록되어 있는데, 조금만 생각해봐도 충주 김 씨의 핏줄이란 수십 분의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뿌리'란 하나의 환상이다. 


사라 알란은 중국 고대 철학 사상의 '뿌리 은유(Root Metaphos)'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그는 물(水)을 중국 고대의 철학가들의 공유하고 있었던 중요한 은유라고 이야기한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순자 등등. '물'로 중국 철학을 정리하는 그의 시도는 일견 꽤 매력적이다. 철학자 각각의 주장을 하나로 꿰뚫어 해석하는 눈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을수록 그의 해석에 의문이 달리고 있다. 과연 정말로 공자, 노자, 맹자, 장자 등이 서로 '물'이라는 공통의 은유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했는가? 물론 저마다 조금씩, 정도는 다르지만 물을 이야기하긴 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야기한 물이 다 똑같은 물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통일과 종합의 시도는 도리어 후대에 종합되고 정리된 특정한 관점을 답습하는 건 아닐까.


'근본적'으로 과연 공통된 뿌리 은유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저자는 자연이라는 공통의 대상에 물을 중요한 은유로 사용했으리라 주장한다. 그러나 은유라는 것은 본디 누적된 경험과 쓰임 가운데 의미를 얻게 되는 것 아닌가. 물론 인간 보편의 정신이라는 것이 있어서 무엇 하나를 붙잡아 이야기하면 시공간을 꿰뚫고 전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구체적인 표상으로 감각되려면 기록된 문헌과, 역사적 경험이 누적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후적으로 해석되고 도출된 표상에 유구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닐지.


한편, 설사 그러한 것이 공통으로 감각되고 경험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중국이라는 커다란 세계에서 동일하게 감각되고 경험될 수 있는 걸까. 물을 경험하고 감각한다 하여도 북쪽과 남쪽, 서쪽과 동쪽에서 만나는 물의 모습은 전혀 다를 것이다. 저자는 부지불식간에 중국을 공통 경험이 가능한 하나의 단일체로 상상하는 건 아닐까. 물론 오늘날 독립된 국가 공동체로서 중국은 하나의 통일체로 설명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세계 인구의 1/6이나 되는 커다란 집단을 하나로 묶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 아닐까. 


분명 유가는 근본을 중시 여기고, 시시콜콜 시원始源을 따지는 부류였다. 그런 습관을 본받아 중국 철학의 근원이니 뿌리니 하는 것을 좇아 따져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주의할 것이 있다. 숨겨진 것을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장. "유가에서도 양보는 덕목의 하나이며 예의 중요한 개념이다. 아들은 자기 아버지나 연장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양보한다. 그래서 효는 인仁의 근본이 된다. (129)"


고개를 끄덕이며 이 문장의 이야기에 수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실제의 경험에서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하지 않나. 왜 늘 연장자에게 양보를 해야 할까. 양보와 배려의 대상은 왜 노인들이어야 하나. 물론 사회에서는 '노약자'에게 양보하라 이야기하나,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노약자'란 사실은 '노'약자이자 '노=약자'임을. 이 아름다운 윤리는 끝까지 묻지 않는다.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지.


한편 '양보'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고래로 왕위를 양보했던 아름다운 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선양禪讓'이라며 아주 아름다운 양보로 기록하나 실상 여기에는 속으로 피눈물 흘린 이야기가 숨겨 있다. 망국의 임금은 기꺼운 마음으로 왕위를 물려주었을까? 거듭 사양辭讓하며 왕위를 거부했다는 이들은 정말로 어쩔 수 없이 왕위에 올랐을까? 선양禪讓과 사양辭讓, 이 두 아름다운 양보讓步에서 누구는 천명天命을 읽고, 누구는 탐욕과 절망을 읽어낼 것이다. '노약자에게 양보하세요'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는 이른바 '동양' 철학에 너무 너그럽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서양 철학의 난관을 해결해보겠다는 대안 철학으로 동양철학을 접근하기 때문도 있지만, 동양 철학을 신비화하며 대상화는 오리엔탈리즘의 영향도 있다. 그래서 동양철학이니 중국철학이니 공부하는 사람들의 태반이 너무 순진하고 너그럽게 텍스트를 읽고 해석한다. 그 순진과 너그러움이 그저 하나의 낭만으로 그치면 좋겠지만, 우리네 일상을 그렇게 낭만으로 장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다. 상하의 위계를 나누고, 누가 먼저니 나중이니를 세세하게 따지는 등등. 


고대 중국 철학자들의 텍스트를 읽어보면 실상 저들에게는 오늘날 우리가 유구한 전통처럼 숭상하는 것들이 별로 없었다는 점을 깨닫는다. 예를 들어 <논어>의 공자는 혼인에 대해 무어라 이야기하는가. 가족에 대해서는. 이를 위해서는 해석과 상상이 필요하나, 태반의 사람들은 전통을 빌어 빈 곳을 대충 메워버릴 뿐이다. 


그러나 공자야 말로 근본 없는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많이 망각된다. 과연 그는 어느 전통에 근거하여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쓰러지는 주나라의 봉건제를 붙잡고 이야기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다른 이들은? 맹자니 노자니 장자니 하는 이들은. 실상 그들은 다 근본 없는 이들 아니었나? 그렇기 때문에 후세의 사람들이 그들의 글을 각자 자기 철학의 뿌리로 삼을 수 있었다. 뿌리의 뿌리는 없다는 역설. 뿌리가 없어야 뿌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따라서 실상 따져보면 그 유구한 뿌리들이란 현재에서 유추하여 만들어낸 하나의 상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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