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전체紀傳體, 역사의 씨줄과 날줄

알아준다는 것 1

by 기픈옹달

<십팔사략>이라는 책이 있다. 불경스런(?) 이 제목의 책은 본디 원대元代에 편집된 책으로 당대까지의 중국 역사를 축약한 책이다. 총 18개의 역사서를 줄였다고 제목을 <십팔사략>이라 붙였다. 이 가운데 가장 처음에 오는 책이 바로 사마천의 <사기>이다. 물론 이후에도 중국의 역사는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통상적으로는 청의 건륭제 때 확정된 24사史를 중국의 정사로 본다. 그런데 24사 가운데서도 첫머리가 사마천의 <사기>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고대로부터 사마천 당대까지 역사까지 정리한다. '오제五帝(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와 같은 신화적 인물로부터 시작하여 하夏-은殷-주周를 이어 춘추전국과 진秦-한漢에 이르는 역사를 다룬다. 중국 고대사를 정리한 책이라는 점에서 <사기>는 매우 중요한 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단순히 중국의 가장 이른 역사를 다루었기에 <사기>가 그 첫머리에 오는 것은 아니다. 시간 순으로 따지면 사마천의 <사기>보다 앞서는 기록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공자의 저작으로 이야기되는 <춘추>가 있다. 흔히 <춘추>와 <사기>는 그 서술 방식으로 비교된다.


<춘추>는 편년체編年體로 기록되었다. 편년체란 연대기 순으로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역사가 연대기 순으로 기록하지 않았느냐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편년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역사 기록과는 상당히 다르다. 편년체는 군주의 재위를 기준으로 사건을 나열해 놓았다. <조선왕조실록>을 떠올리면 쉽다. 왕의 이름 별로 나뉘어 매해, 매월 사건들을 기록하였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책과는 많이 다르다. 연표의 확장판이라고 할까? 어떤 임금이 재위한 후 몇 해, 몇 월 이러이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부니 사실 읽는 재미가 별로 없다. 따라서 편년체 서술은 ‘역사책’이라기보다는 ‘역사 사건 기록의 묶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사마천의 <사기>는 기전체紀傳體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서술되었다. 여기서 ‘기전紀傳’이란 사기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부분에서 뽑아 이름을 붙인 것이다. 바로 <본기本紀>와 <열전列傳>!


<본기>는 역대 왕조의 흐름을 기록한 것이다. 총 12본기로 구성되었는데 중국 고대사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순서는 이렇다. 각 편마다 ‘본기’가 붙는데 반복되므로 편의상 빼버렸다. ‘오제-하-은-주-진-진시황-항우-고조-여태후-효문-효경-효무’


<오제본기>는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중국 고대의 신화적 제왕들의 이야기를 서술한 부분이다. <하-은-주본기>는 흔히 삼대三代라 불리는 중국 고대의 왕조 이야기를 다루었다. 주나라의 몰락 이후를 흔히 춘추전국이라 부르는데 천하는 여러 제후국의 각축장으로 변한다. 여러 제후국 가운데 훗날 천하를 통일하는 진의 역사를 <진본기>에 서술했다. 그리고 이는 천하통일의 과업을 완수한 <진시황본기>로 이어진다.


진의 몰락 이후 항우와 유방은 천하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데 이는 <항우본기>와 <고조본기>에 기록되어있다. <고조본기> 한고조 유방의 이야기를 역은 글이다. 한편 유방 사후 실질적인 권력은 유방의 부인 여태후의 손에 넘어간다. 사마천은 이를 <여태후본기>에서 다루었다. 여태후의 죽음 이후 문제, 경제, 무제로 이어지는데 이는 각각 <효문-효경-효무본기>로 이어진다. 앞에 효孝를 붙인 것은, 한나라의 황제의 시호 앞에 '효'를 붙였기 때문이다.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사기>의 편제를 이야기하면 <사기>는 총 13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12 <본기> 다음엔 10 <표表>가 이어진다. 이 <표>는 말 그대로 '표'인데 당대의 여러 나라들의 연표를 하나로 묶은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본기>에 언급되지 않는 여러 제후국의 역사는 각기 저마다 임금의 재위 기간을 기준으로 기록되어 따로 볼 경우 헷갈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각 나라의 사건을 동시대적 시각 위에서 보기 위해 <표>를 만들었다.


이어 8 <서書>가 있다. 이는 당대의 문화, 사회에 대한 보고서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예서禮書>와 <악서樂書>는 각기 예/악에 대해, <천관서天官書>는 당대의 천문天文에 대해, <봉선서封禪書>는 천자가 하늘에 지낸 봉선제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8 <서>를 통해 우리는 고대 사회의 문화, 사회, 경제 상황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편 30 <세가>는 제후국의 기록을 담았다.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중국의 천하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본디 '천하'라 불리는 문명세계의 중앙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천하의 지배자를 천자天子라 불렀다. 주周의 통치자는 스스로 하늘의 명(天命)을 받들어 천하를 지배한다고 공표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천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땅을 천자 1인이 다스리기 힘들다는 데 있었다.


이에 새로운 체제가 개발되었다. 은殷을 무너뜨리고 천자의 자리에 오른 주무왕周武王은 공신과 자신의 친족들에게 땅을 떼어 제후로 삼았는데 이를 '봉토건국封土建國', 줄여 '봉건'이라 한다. 중앙에는 천자의 나라가 그 주변에는 여러 제후의 나라가 있는 형태가 주나라 체제의 특징이었다. 이 제후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바로 <세가>이다.


이것을 보면 기존의 편년체가 가지고 있던 딱딱한 역사를 보다 풍성하게 기록한 것이 <사기>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마천의 능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열전>이라는 또 다를 틀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글에 담았다. 열전은 총 70편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종합해보면 <사기> 130편은 총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다. 12 <서>, 10 <표>, 8 <서>, 30 <세가>, 70 <열전>으로. 그 가운데 분량도 많지만 후대 사람들이 크게 사랑한 부분이 바로 <열전>이다. 천자와 제후들의 이야기가 역사의 전부가 아님을 사마천은 알았던 것이다.


흔히 역사를 비판적으로 이야기할 때 '승자의 기록'이라 하지 않는가? 역사란 승리하여 권력의 얻은 자들의 입맛에 따라 서술되기 쉽다. 그러다 보니 역사에서 다루는 것이란 국가의 흥망, 통치자의 변고 따위에 그치곤 한다. 이처럼 큰 흐름에만 주목하는 것이 역사가 아니라고,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역사로 보아야 한다. 사마천은 이 문제의식 아래 <열전>을 지어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따로 남겼다.


왕조의 교체, 제후국의 흥망성쇠가 중요하기는 하나 그것이 역사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역사가 수많은 삶들이 엮여 만들어내는 하나의 무늬라면 시대의 흐름을 가로지르는 여러 인물의 삶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인문학이라고 할 때, ‘인문人文’이란 사람들이(人) 짜 놓은 무늬(文)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손의 거친 이 무늬의 모습이란 분명 찬란하게 빛난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양한 힘들이 이 빛을 가린다는 데 있다. 시대의 망각이, 권력자의 어두운 욕망이, 때로는 소박한 무관심이 이를 무디게 만든다. 인문학이란 어떻게 보면 그러한 힘에 저항하려는 노력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 아름답고도 풍성한, 생생한 무늬를 가능한 민감하게 느끼고자 하는.


사마천은 '기전체'라는 독특한 방법을 고안하여 그 무늬를 자신의 글에 담아내고자 했다. 역사의 씨줄과 날줄이 엮이는 가운데 사마천의 <사기>는 다른 어떤 역사 기록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일찍이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다. ‘사가지절창史家之絶唱, 무운지이소無韻之離騷’ 역사의 최고봉이자 운율 없는 최고의 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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