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준다는 것 2
'춘추전국'은 각각 <춘추春秋>라는 책과 <전국책戰國策>이라는 책 제목에서 따 붙인 이름이다. 따라서 춘추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눌 수 있다. 보통 춘추전국의 시작을 주나라의 몰락으로 본다.
사마천의 기록에 따르면 주나라 유왕幽王이 여인의 미모에 마음을 빼앗겨 나라를 망쳐버렸단다. 이 여인의 이름은 포사褒姒. 이 여인의 정체에 대해서도 사마천은 흥미로운 전설을 기록하고 있는데 상세한 내용은 <주본기>를 참고하도록 하자.
포사는 잘 웃지 않는 여인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봉화가 잘못 올라가 제후들이 사방에서 군대를 이끌고 몰려들었다. 실수로 봉화가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고 제후들은 모두 허탈하게 돌아갈 수밖에. 이 모습을 보고 포사가 깔깔대며 웃었다 한다. 유왕은 포사의 미소를 보기 위해 거짓 봉화를 올렸고, 반복되는 거짓에 제후들은 지쳐버렸다. 결국 진짜로 오랑캐가 쳐들어왔을 때에는 봉화를 올려도 구하러 오는 제후국이 없었다는 이야기. 유왕은 목숨을 잃고 주나라는 수도를 동쪽으로 옮겨야 했다.
본디 주나라를 중심으로 여러 제후국이 주나라를 받드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주나라 유왕의 죽음으로 주나라 왕실의 권위도 땅에 떨어졌으며 주나라의 지배력도 약해졌다. 제후국들이 서로 세력을 다투는 시기가 춘추시대이며, 이 다툼이 국운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된 것이 전국시대이다.
<사기열전>은 <백이열전>으로 시작한다. 사마천은 <백이열전>을 통해 커다란 질문을 던진다. 공자는 주나라를 이상적으로 보았지만 과연 주나라가 그렇게 이상적인 나라였을까? 백이와 숙제의 채미가采薇歌는 기존 역사 이해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백이열전>은 사마천의 역사관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기>의 기술 방식을 일러주는 일종의 출사표와도 같은 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어지는 <관안열전>이야말로 <사기열전>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관안열전>은 관중으로 시작한다. 관중은 중국 고대로부터 명재상으로 손꼽힌 인물이었다. 이는 그가 제환공을 패자霸者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까닭이다. 패자란 주왕실이 힘을 잃은 이후 제후들을 한데 모아 권력의 정점에 섰던 인물을 가리킨다. 맹자는 이를 ‘以力假仁者’라고 폄하하긴 했으나 공자는 덕분에 오랑캐의 침입에 무너지지 않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춘추시대에는 다섯의 패자가 있었다고 한다. 제환공, 진문공, 초장왕, 오왕합려, 월왕구천이 꼽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제환공을 시작으로 패자라는 새로운 체제가 탄생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를 실제로 만든 것은 관중의 공이었다. 헌데 본디 관중은 제환공에 의해 목숨을 잃어야 하는 인물이었다. 어찌 된 일일까. <제태공세가>에 이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야기는 제양공讓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제양공은 매우 무도한 인물이었는데, 그는 배다른 동생인 문강 文姜과 정을 통하는 관계였다. 동생 문강이 이웃 노나라에 시집을 가서도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의 노나라 군주는 노환공이었는데 이 사실을 알아채고 부인에게 화를 냈다. 이에 문강과 제양공은 노환공을 죽이기로 모의한다. 둘의 관계가 이웃 나라의 군주를 죽이는 데까지 이르렀다. 나라는 어지러워졌으며 양공은 눈에 어긋나는 인물을 걸핏하면 죽이기 일수였다.
공자公子 규糾와 소백小白은 각각 제양공의 동생이었는데 양공의 전횡을 피해 이웃나라에 도망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차 제양공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이제 제나라의 다음 임금이 누가 되느냐가 문제였다. 당시 상황에서는 먼저 귀국하여 자리에 오르는 자가 군주가 되는 형국이었다. 이때 공자 규는 노나라에 있었고 관중과 소홀이 그를 따르고 있었다. 공자 소백은 거나라에 있었는데 포숙이 따르고 있었다.
관중은 몰래 병사를 이끌고 가서 제나라로 입국하려는 소백을 암살하려 한다. 관중이 쏜 활에 소백이 맞았는데 허리띠의 장식 부분에 맞았다. 관중은 소백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돌아가 공자 규와 느긋하게 귀국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소백은 자신의 생존을 비밀에 부치고 몰래 재빨리 귀국하여 군주의 자리를 차지해버린다.
그는 제나라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노나라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공자 규는 형제라 차마 주살하지 못하겠으니 노후魯侯께서 직접 그를 죽이기를 청한다. 소홀과 관중은 원수이니 청컨대 그들을 잡아 젓갈을 담는 형벌에 처하여 마음을 달래려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곧 노나라를 포위하겠다.’ 결국 공자 규는 독살당하고 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관중만 살아남았다. 이때 거나라에서부터 공자 소백을 보좌했던 포숙이 나서서 이렇게 말한다. "신은 다행히 주군을 좇았고, 주군께서는 임금이 되셨습니다. 더 이상 높은 지위 오르도록 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제나라를 다스리신다면 저 포숙아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하의 패자를 도모하신다면 관중이 아니면 안 됩니다. 관중을 차지한 나라는 강성해질 테니 그를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포숙의 천거로 관중은 일급 죄수에서 한 나라의 재상으로 하루아침에 그 자리를 바꾸게 된다.
바로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아의 사귐에 대한 이야기가 이것이다. '관포지교'라고 하면 친한 벗의 관계를 가리키는 말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기열전>의 기록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워낙 유명한 고사이므로 그 내용을 아래에 옮긴다. 관중이 말하는 두 사람의 관계이다.
"내가 가난하게 살 때 일찍이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했지만, 포숙이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일찍이 포숙을 대신하여 어떤 일을 도모하다가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포숙이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유리할 때와 불리할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내쫓겼지만 포숙이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은 내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일찍이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이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임금 자리를 놓고 벌인 싸움에서] 졌을 때, [나와 함께 곁에서 규를 도운] 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나는 붙잡혀 굴욕스러운 몸이 되었으나 포숙이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은 내가 자그마한 절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자(鮑子, 포숙아)이다.
* (김원중 역)
관중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관중과 포숙아의 관계는 대단히 일방적이다. 관중이 겪은 다양한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포숙아는 늘 관중의 편이었다. 이쯤 되면 제환공을 패자로 만들었다는 관중의 능력보다 이 관중을 끝까지 믿어준 포숙아의 인품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그래서 관중은 이렇게 말한다. ‘생아자부모生我者父母 지아자포자야知我者鮑子也’ 부모가 나를 낳았고, 포숙아가 나를 알아주었다. 대구로 이어지는 이 짧은 표현은 짜릿한 울림을 선물해준다. 부모가 생명을 주었듯 그에 버금가는 일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긴 그렇지 않나. 단순히 생물학적 삶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 않기에.
그런데 이어서 사마천은 이렇게 서술한다. ‘천하부다관중지현이다포숙능지인야天下不多管仲之賢而多鮑叔能知人也’ 그토록 뛰어나다는 관중의 재능보다 사람을 알아보는 포숙아의 능력이 훨씬 훌륭하다고. 결국 관중의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관중인가 포숙아인가? 아무리 빼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은들 포숙아 같은 벗이 없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