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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un 29. 2021

초원의 명적소리

북방의 북소리 중원을 울리다 3

역사는 자격을 두고 벌어지는 인정투쟁의 현장이 되곤 한다. 역사는 기록이고, 기록에는 선택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누구를 선택하느냐, 어떻게 기술하느냐 문제는 필연적으로 가치의 문제와 얽혀있다. 


사마천은 제법 관대한 역사가라 할 수 있다. 그는 통상적인 관점에서 자격이 의심되는 자들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이다. 패배자(항우)를 역사의 주인공을 세웠으며, 여성을 황제의 반열에 놓기도 했다. 한편 오랑캐에게도 그는 자리를 내어준다. 훗날 도학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쉬이 용납하기 힘든 태도다.


사마천은 <흉노열전>에서 북방의 유목민족의 생활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흉노의 모습을 폄훼하며 묘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흉노의 경우 장정들을 우대하고 노인들을 박대하는 문화가 있었다. 노인 공경 따위는 없는 셈. 한편 형사취수,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취하는 풍습도 있었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마천은 미개한 오랑캐의 풍습이라 일컫지 않는다. 다른 문화에는 다른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중항렬의 항변을 들어보자.


"흉노는 싸움으로 공적을 따지는 종족이오. 늙고 약한 사람이 싸울 수는 없는 법. 그러니 맛있고 기름진 음식을 건장한 사람들에게 준다오.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보살피는 거요. 어찌 흉노가 노인을 경시한다 하겠소."
<흉노열전>


'효孝'는 자식이 노인을 봉양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효는 늙어 나이 든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농경사회에서 노인은 지혜를 주고 장정은 사회적 노동을 담당했다. 그러나 목축과 사냥을 하는 흉노는 똑같은 문화를 가질 수 없었다. 사냥과 전쟁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이상 강한 인물을 숭상할 수밖에. 중항렬은 다른 사회경제적 조건이 다른 문화를 낳았다고 말한다.


"가축의 고기를 먹고, 그 젖을 마시며,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는 것이 흉노의 ㅍ풍속이요. 풀을 뜯고 물을 마시는 가축들은 때에 따라 옮겨 다닌다오. 그러므로 흉노는 급박할 때에는 말 위에서 활을 쏘는 일을 익히나, 느긋할 때에는 즐거워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소. 이들의 약속은 가벼워 행동으로 옮기기 쉽다오. 군신 간의 관계도 간단하여 한 나라가 마치 한 사람의 몸처럼 돌아가오. 아버지나 형제가 죽으면 그 아내를 처로 삼는 것은 대가 끊길까 걱정하기 때문이오. 그래서 흉노는 비록 난잡해 보여도 대를 잇고 있소. 지금 중국에는 비록 대놓고 아버지와 형의 처를 취하는 일은 없어도, 친척이 더욱 멀어져 서로 죽이는데 까지 이르고 나아가 황제의 성을 바꾸는 일도 있지 않소. 예의를 지키다 보면 위아래가 서로 원망하는 폐단이 있소. 게다가 궁궐과 집을 짓느라 온 힘을 다 써버리지 않소." 


사실 형사취수제는 흉노만의 문화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유대인의 문화이기도 했다. <성서>를 펼쳐보면 이와 같은 관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전쟁으로 장정이 죽는 일이 많았고, 그의 가족을 형제가 책임지는 일이라 생각하자. 나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흉노에게는 흉노의 문화가 있고 중원에는 중원의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제 사회의 문화만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오만한 일이 어디 있을까. 사마천은 <흉노열전>을 통해 북방 유목민족의 문화를 소개하고, 또한 이들의 문화를 통해 중원의 문화를 상대화시키고 있다. 


흉노의 우두머리를 선우라 하였는데, 묵돌 선우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는 두만 선우의 아들이었는데 일찍이 명적, 쏘면 날아가며 소리가 나는 화살을 만들어 자신을 따르는 기병들에게 나누어주고 이렇게 명한다.


"내가 명적으로 쏘아 맞히는 곳에 모두 활을 쏘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


그는 처음에는 사냥을 나아가 별안간 명적을 쏘아 자신을 따라 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었다.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베니 자연스레 자신의 명을 충직히 따르는 이들만 남았다. 이후 그는 갑자기 자신이 아끼는 말을 쏘았다. 머뭇거리며 활을 쏘지 않는 이들을 베었다. 얼마 뒤에는 애처愛妻를 쏘았다. 두려워하며 감히 쏘지 못하는 자들이 있자 또 그들을 베었다.


그는 철저히 그리고 기민하게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만들고 싶었다. 과연 무엇 때문에 이런 이렇게 병사를 솎아낸 것일까. 그의 다음 행보에 그는 야심을 슬쩍 내보인다. 어느 날 사냥을 나가 묵돌은 명적으로 아버지 두만 선우가 아끼는 말을 쏘았다. 이제는 모두가 일제히 그 말을 쏘았다. 거사를 치를 준비가 된 것이다. 그는 이후 다른 사냥에서 아버지 두만 선우를 향해 명적을 쏘았다. 뒤 따르는 병사들이 모두 두만 선우를 쏘았다. 그는 아버지를 몰아내고 스스로 선우의 자리에 올랐다.


정조는 <사기영선>을 엮으면서 묵돌이 아버지를 죽이고 선우의 자리에 오르는 내용을 삭제했다. <흉노열전>의 내용이 흥미롭다 해도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유가적 통념에 따르면 이는 자연스러운 조치일 테다. 그러나 중항렬이 던진 질문을 기억하자. 어찌 이것이 비단 오랑캐만의 것일까. 중국의 역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쪽에서는 대놓고 하고 한쪽에서는 암암리에 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따지고 보면 정조는 아비가 자식을 죽이는 현장을 목격한 인물이었다. 아비가 자식을 죽이는 것은 정당하나 자식이 아비를 죽일 수는 없다는 것. 이것이 유가의 비정한 논리의 단면이었다. 


진시황 때부터 성벽을 쌓아 흉노족의 침입에 대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시작한 성벽이 만리장성이 되었단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있는 거대한 성벽의 태반은 명청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과연 이 성벽은 북방의 침입을 막기에 효과적이었을까.  


훗날 루쉰은 만리장성을 두고 위대하고도 저주스러운 유물이라 했다. 거대하기는 하나 제대로 방벽의 역할을 하지도 못했고, 그렇기에 더욱 끊임없이 길이를 늘려가며 더욱 높고 길게 쌓았지만 무고한 백성의 희생을 늘릴 뿐이었다. 루쉰에게 만리장성은  저주스러운 전통의 상징이었다. 삶을 얽매는 낡은 관습!


성벽은 외부의 침입을 막기도 하지만 도리어 안을 단속하는 울타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루쉰은 만리장성을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책으로 본 것이 아니라, 안에만 갇혀있으려 한, 자기 것을 지키고 고수하려는 폐쇄적 행동이 만든 쓸데없는 건축물이라 말한다.


이후에도 흉노는 성벽을 넘어 중원을 공략했으며, 더 훗날에는 유목민족이 중원 전체를 집어삼키는 일도 있었다. 또한 유목민족의 문화가 중원의 문화에 흡수 변형되기도 한다. 성벽을 쌓는다고 적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영영 발길을 끊고 왕래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넓은 역사의 안목에서 보면 초원과 광야를 누빈 이민족의 문화는 중국 역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기도 했다. 오늘날 중국 역사에서 원元, 청清을 지울 수 없는 것을 보라. 따라서 중국이란 하나의 단일체가 성장 발전한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이 뒤섞여 들어오며 복잡하게 얽히면서 발전한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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