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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10. 2021

어디쯤 왔을까 얼마나 걸었을까

툭 생각나는 문장이 있다. 페이지 사이에 넣어둔 낙엽이 툭 떨어지듯, 낡은 옷의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발견하듯. 언제 어디서 넣어두었는지 모르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어디쯤 왔을까. 얼마나 걸었을까."


아침 세면대 앞에서 툭 떨어진 문장이다. 삶이라는 거대한 여정에서 나는 어디쯤일까? 누군가는 한창이라 하고, 누군가는 벌써라고 하며, 누군가는 아직이라고 할 테다. 삶의 어려움은 내가 어디쯤인지를 모른다는 데 있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경우도 있을 테고, 수많은 계획이 다 부질없는 경우도 있을 테다. 도대체 어디쯤 왔을까.


답답할 때면 걷는다. 좀 외딴곳에 가서 걷는 것이 좋다. 목적지를 두지 않고 걷다 보면 제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된다. 함께한 사람들이며, 쉬이 지나칠 수 없었던 사건들, 귓가에 웅웅 울리는 수많은 말들,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감정들. 발이 아프게 걷다 보면 내 것인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이 나뉘고, 감당할 수 있는 것과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 분명해진다. 


얼마 전 옛 추억이 담긴 곳에 갔다.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낡은 건물과 익숙한 거리가 나를 반겨주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것과 새롭게 바뀐 것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문득 어린 시절 호기롭게 걷던 길이 생각나 그 길을 다시 걸어보기로 했다. 반 시간쯤 걸으면 바다가 나왔지. 웬걸, 걸어도걸어도 끝이 없더라. 이 긴 길을 혼자 잘도 걸어갔구나. 지겨워하지도 않고 힘들어하지도 않고.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르게 걷기에 질릴 무렵에야 바다에 닿았다. 황량한 겨울 바다는 별 매력이 없었다. 


어디쯤 왔을까. 얼마나 걸었을까. 툭 떨어진 이 문장은 어디서 온 것일까. 찾아보니 <다시 처음이라오>라는 노래의 노랫말이었다. 낯익은 이름. 맞아, 김현식의 노래로 들었지. 


얄궂게도 김현식과 나는 사연이 있다. 동명이인인 까닭이다. 그와 같은 이름이라는 이유로 어렸을 때에 노래를 불러보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이름이 같다고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겠지만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 내 이름을 듣는 사람은 툭하면 저런 말을 했다. 젊은 나이에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노래가 주목을 받았다. 한때 국민가요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 그러나 나는 그의 노래들이 싫었다. 사람들에게 시달려서 그렇지.


대학시절이었을까. 문득 그의 노래가 듣고 싶었다. TV와 거리에서 매일 듣던, 그래서 부르지 않아도 노랫말을 술술 외는 그런 노래 말고 다른 노래를 찾아보고 싶었다. 그때 찾은 게 그의 7집 Self Portrait, <다시 처음이라오>가 실린 유고집이다. 


전반부는 통기타 하나에 거친 그의 목소리가 담겼다. 잡음도 들리고 녹음 상태가 좋지 않다. 병상에서 남긴 것이라던가. 후반부는 가수 김장훈이 이어 불렀다. 그 시절 얼마나 들었을까. 별로 듣지도 않았을 텐데, 앨범에 수록된 다른 노래 대신 이 노랫말이 기억에 남은 까닭은 무엇일까. 툭 튀어나온 것이니 이유를 찾아도 별다른 답이 없겠지.


그가 세상을 떠난 나이를 훌쩍 넘어 다시 노랫말을 만나니 생각할 게 많구나. "서러움 애써 달래 보려고 이만큼 걸었건만, 이제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이라오." 그래, 서러움 달래보고 싶었지. 걷고 또 걷고. 그러나 떠나긴 한 것일까.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거 같아.


낡은 다이어리들을 정리하며 10년 전에 쓴 글을 읽었다. 그때도 지금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원망하고, 똑같이 슬퍼하고. 오늘 내 서러움은 그토록 묵은 서러움이었구나. 달래지 못한 서러움. 다시 10년이 지나면 달라질까. 어쩌면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


절망이란 익숙함에서 온다. 똑같은 실수의 반복, 똑같은 상처의 반복. 무엇하나 달라진 게 없으니 희망을 품는 게 다 부질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버티는 수밖에 없나. 소멸을 기다리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수밖에 없을까.


밤마다 다르게 살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똑같이 우울한 밤이 쌓이니 지겨워졌다. 고통도 슬픔도 서러움도 지겨웠다. 문득 한 밤, 지난 시간이 나의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르게 살 수 없는 건 애써 힘을 다해 살았기 때문이야. 시간을 돌린다면 달랐을까? 아니.


결국 내가 나를 연민해야지. 할 만큼 했잖아. 공간을 정리하면서 아쉬움이 없는 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부끄러움이 연민으로 바뀌고 자괴감이 뻔뻔함으로 바뀌더라. 그래서 다시 똑같은 일을 하기로 했다.


자기 연민의 밤, 서러움을 묻어둔 밤을 지난 아침 저 문장이 툭 떨어졌다. "어디쯤 왔을까 얼마나 걸었을까." 모르겠다. 코 앞에 끝이 있어도 어쩔 수 없지.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걸어야지.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그냥 '다시 처음'.


시작하려니 겁이 나고, 끝내려니 슬프다. 그렇지만 처음이라니 나도 모르게 불끈 힘이 솟는다. 그러니 가야지. 희망 때문에 절망하지 않고, 절망에 절망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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