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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Mar 31. 2022

염구, 핑계는 자유지만...

공자Talk논어Talk 6강

염구가 말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힘이 달립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달리면 중간에 고꾸라지겠지. 헌데 너는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구나."

공자에게는 정말 많은 제자가 있었어요.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공자를 거쳐간 제자는 삼천 여명이나 되었다고 해요. 공자 문하門下, 그러니까 공자에게서 배웠던 이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삼천 명이 모두 빼어난 인물이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중에는 공자에게 배웠으나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은 이도 있었을 거예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제자는 그 가운데 약 70여 명 됩니다. 그래도 꽤 많은 숫자이지요? 대관절 어떤 이들이 이름을 남긴 것일까. 헌데 대부분은 행적 없이 그저 이름만 남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짐작 가능한 제자는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정도 사이예요.


공자는 훗날 과거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어요. "나와 함께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고생하던 이들은 곁에 없구나. 덕을 쌓는 데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 있었지. 말재주로는 재아와 자공이 있었고, 나랏일에는 염구와 자로가, 옛 문헌을 읽는 데는 자유와 자하가 있었지." 공자가 직접 언급한 이 열명을 제자를 손꼽아 공문십철孔門十哲, 그러니까 공자 문하의 열 명의 빼어난 인물이라 일컫습니다. 여기서도 안연이 가장 먼저 언급되네요. 


공자는 자신의 능력을 실현할 기회를 찾기 위해 고향 노나라를 떠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습니다.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느릿느릿 이동하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을 거예요. 게다가 방랑 당시 공자의 나이는 50대 중반이 넘었습니다. 공자가 긴 시간 방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예요. 공자 곁에는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열 명의 제자는 아마도 공자의 방랑을 함께한 꽤 가까운 제자였을 겁니다.


그러나 가깝다고 아무런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예요. <논어>에는 공자와 제자들의 갈등이, 제자와 제자 사이의 갈등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염구와의 갈등은 꽤 인상적입니다. 염구는 공자의 여러 제자 가운데서도 꽤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어요. 꼼꼼하고 일처리가 빨라 나랏일에 빼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실제로 염구는 공자의 여느 제자보다 일찍 좋은 자리를 얻어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헌데 이 때문에 공자와 갈등을 빚습니다.


문제는 당시 공자의 고향 노나라의 정치가 어지러운 상황이었다는 점입니다. 노나라 임금의 힘은 약했고, 귀족들의 세력이 강했어요. 그 가운데서도 계씨 집안의 세력이 강했습니다. 임금도 계씨의 눈치를 보아야 했어요. 사실 임금은 별 힘이 없었습니다. 염구는 계씨 아래에서 일했어요. 그러다 보니 계씨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일까? 공자는 계시를 위해 일하는 염유가 못마땅했습니다. 생각 없이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건 아닌지.


지금도 그렇지만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은 수시로 바뀝니다. 과거에는 임금이 세상을 떠나야 새로운 임금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투표로 대통령을 뽑습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나랏일이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적지 않은 혼란이 있을 거예요. 나랏일을 하는 사람은 무엇이 옳은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 전체에 이익이 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옛 신하들은 때로 옳은 일이 아니라면 임금에게 맞서기도 했어요. 사극에서 보지 않았나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임금이 되었다고 제 멋대로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물며 왕도 그랬는데 오늘날은 어떨까요.


염구에게는 그런 생각이 없었나 봅니다. 그저 계씨가 원하는 일을 실행하기 바빴어요. 나라를 위한 일인지, 옳은 일인지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자에게 꾸중을 들었지요. 한편 염구 입장에서는 공자의 이런 말이 잔소리처럼 들렸을 수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상황은 알지 못하면서 케케묵은 원칙만 이야기하고 있다고. 


위에서 소개한 염구와 공자의 대화도 비슷한 상황에서 벌어지지 않았을지요. 염구는 에둘러 말합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고 싶지만 힘이 부족하다고. 헌데 공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과연 힘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핑계를 대는 것일까. 공자는 염구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염구는 꽤 빼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공자는 염유가 핑계를 대고 있다고 보았어요. 염구는 힘이 부족하다 말합니다. 누구나 제 한계에 도달하면 고꾸라지곤 해요. 그때 포기하는 것을 무어라 탓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힘이 넉넉한데 그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그것은 스스로 미리 한계를 짓는 것일 뿐이지요. 여러분에게는 그런 일 없나요? 내가 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는데도 핑계를 대는 순간이. 




* 와파서당 공자Talk 논어Talk 6강 교안입니다. https://zziraci.com/kongzitalk


* 와파서당 PDF 교안은 다음 링크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zziraci.com/wifi-seodang/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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