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침 #1
그의 글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늘 아쉬움이 남는다. 평범한 말로 담아낼 수 없는 비범함이 있다. 그렇다고 그가 미려한 문장을 쓰는 건 아니다. 도리어 그의 글은 매끄럽지 않다. 이런 부분 때문에 그의 글은 늘 낯설다.
<외침>은 루쉰의 소설집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른바 소설이라 할 글을 몇 편 썼는데, 이 책에는 1918년에서 1922년까지 쓴 15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비교적 이른 시기의 글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이렇게 말했다.
민국(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성립했던 1911년을 민국 원년으로 함) 7년(1918), 서른여덟 살에 <광인일기>를 발표하고 난 뒤부터 민국 25년(1936)에 <죽은 넋(死靈魂)>의 번역을 끝내지 못한 채 쉰여섯 살의 일기로 상하이에서 죽을 때까지, 대략 18년 간 루쉰은 중국 문단의 중심적 위치에서 한 번도 물러난 적이 없었다.
<루쉰>, 다케우치 요시미, 문학과 지성사. 7쪽
1918년 <광인일기>가 그의 첫 글은 아니지만, 그전에 쓴 글이 여럿 남아 있지만 1918년은 루쉰이라는 인물에게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해라고 할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외침>의 서문은 루쉰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줄곧 인용되는 글이다. 이 글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서양학문을 접하고, 일본 유학의 경험, 문단의 한가운데 뛰어들기까지 그의 삶을 압축적으로 그려낸다. 내용을 간단히 줄이면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 정도가 되겠지만, 어째서 루쉰이 붓을 들었는가를 설명하는 글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그를 관통하는 문제는 계몽이라 할 수 있겠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병환에 전당포와 약방을 오가며 느꼈던 모멸감,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의학을 배우기 위해 선택한 유학길까지 그의 삶은 무리 없이 설명된다. 이른바 격동의 시절을 살았다고 하나 이런 이야기는 크게 낯설지 않다. 그 시절 전통 사회의 끝자락에 놓인 여느 사람들과 루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저 유명한 환등기 사건에서 루쉰의 삶에는 어떤 굴곡이 새겨진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는 정신을 뜯어고치는 일을 하겠다며 문예 운동에 뛰어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원고를 담당한 사람은 사라졌고, 후원자도 도망갔다. 결국 몇몇 동료들과 기획했던 문예지 출간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여기서 그는 ‘적막’을 느꼈다 말한다.
무릇 누군가의 주장이 지지를 얻게 되면 전진을 촉구하게 되고 반대에 부딪히면 분발심을 촉구하게 된다. 그런데 낯선 이들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질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다시 말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면, 아득한 황야에 놓인 것처럼 어떻게 손을 써 볼 수가 없다. 이는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리하여 내가 느낀바를 적막이라 이름했다.
<외침: 서문>
문제는 그가 이야기하는 이 ‘적막’이 휘감아 당최 그가 말하는 ‘외침’을 이해하기 버겁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는 이 서문에서 ‘앞서 말한 연유로 인해 <외침>이라 이름한다.’ 했으나 그 외침이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환등기 사건을 경험하기 전이라면, 아니 적막에 빠지기 전이라면 그가 말하는 외침을 떠올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철방’에 대한 문답은 이 외침이 누구를 향한 어떠한 외침인지를 되묻게 만든다. 창문도 없는 절대로 나갈 수 없는 철방에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다. 곧 숨이 막혀 죽을 텐데 그 가운데 문득 깨어 있는 자가 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죽음의 비애’를 느끼지 않아도 될 텐데, 굳이 깨워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어야 할까? 그러나 몇이라도 깨어난다면 철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희망을 말살할 수 없다는 이 당혹스러운 결말. 여기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비록 내 나름의 확신은 있었지만, 희망을 말하는데야 차마 그걸 말살할 수는 없었다. 희망은 미래 소관이고 절대 없다는 내 증명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나도 글이란 걸 한번 써 보겠노라 대답했다. 이 글이 최초의 소설 <광인일기>다. 그 후로 내디딘 발을 물리기가 어려워져 소설 비슷한 걸 써서 그럭저럭 친구들의 부탁에 응했다. 그러던 것이 쌓여 십여 편이 되었다.
<외침: 서문>
이렇게 <외침>이 세상에 나왔다. 그의 말을 곱씹어보자. <광인일기>를 비롯한 소설은 과연 희망의 산물일까? 철방을 부술 수 있다는 ‘희망’이 그로 하여금 붓을 들게 만들었을까? 나에게는 그의 글이 희망의 문학으로는 전혀 읽히지 않는다. 철방을 부서뜨리기는커녕, 루쉰의 말을 빌리면 ‘팔을 들어 외치면 호응하는 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그런 영웅’의 글 또한 아니다. 어쩌면 그의 소설이란 그가 비문을 베끼는 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일이 아닐까 질문해 보는 거다. 아무 소용도 없이, 아무 의미도 없이 옛 비문을 베껴 쓴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소설도 근본적으로는 아무 소용도 아무 의미도 없이 쓰인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그의 비유를 빌리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이들을 ‘깨우기 위한’ 글이라기보다는, 몇몇 깨어난 이들 ‘때문에’ 쓴 글이라 해야 할 테다. 그의 외침이란 시대의 두터운 적막을 깨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적막 속에 새어 나오는 어쩔 수 없는 소리라 불러야 한다.
생각건에 나는 이제 절박해도 입도 벙긋 못하는 그런 인간은 아니지만, 아직도 지난 날 그 적막 어린 슬픔은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때는 어쩔 수 없이 몇 마디 고함을 내지르게 된다. 적막 속을 질주하는 용사들에게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도록 얼마간 위안이라도 주고 싶은 것이다.
<외침: 서문>
그는 적막 어린 슬픔을 잊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것이 마치 옛 일인 양 거리를 두고 있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그 적막이야 말로 그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소설의 일부 끄트머리에 이런저런 내용을 덧붙여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 청년들에게 내 안의 고통스러운 적막이라 여긴 것을 더 이상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ㅁ하나 그것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내가 하는 말은 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왜 그러한지는 <외침> 서문에 쓴 것처럼 자신의 사상을 남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전달하고 싶지 않은가 하면, 나의 사상은 너무 어둡고 스스로도 정확한지 어떤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쉬광핑에게 보낸 편지, <양지서> 제1집 편지24)
<루쉰>, 앞의 책. 17쪽.
루쉰의 글은 어둡다. 이는 그 스스로 말하듯 그의 사상 자체가 어둡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어둠을 애써 몰아내려 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는 그 어둠, 허망한 대지로 나아간다. 적막 속에 내던져진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고 한다면 바로 이런 거침없는 내딛음에서 나오는 위안일 것이다. 그러니 그의 외침을 적막이 지워지지 않는 외침이라 부르자. 아니, 커다란 적막이라 부르는 게 더 적당할 듯싶다.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18년 <신청년>에서 ‘문학 혁명’이 제창된 무렵이다. ...
(...) 하지만 당시 나는 솔직히 ‘문학 혁명’에 대하여 어떠한 열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신해 혁명을 보고, 제2혁명을 보고, 위안스카이의 제제帝制 음모와 장쉰의 복벽을 보고, 그밖에 여러 가지를 보아오다가 아주 회의적으로 되어 실망한 나머지 무기력해진 상태였다. 올해 민족주의 문학가가 어느 작은 신문에서 “루쉰은 의심이 많다”고 썼다. 정말 그대로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무리들이 진짜 민족주의 문학가일지, 어떻게 변절할지 모른다고까지 의심하고 있는 판이다. 다만 나는 이렇게 실망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본 인간이나 사건은 지극히 한정된 것이므로. 그 생각이 내게 붓을 들 힘을 주었다.
“절망이 허망한 것은 바로 희망이 그러함과 같다.”
<루쉰>, 앞의 책. 92-93쪽. (*<자선집> 서문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