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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Nov 11. 2022

가을이면 '시'감상 입디다

문정희 '살아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은


                                      문정희


살아 있다는 것은

파도처럼 끝없이 몸을 뒤집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몸을 뒤집을 때마다

악기처럼 리듬이 태어나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암각화를 새기는 것이다

그것이 대단한 창조인 양 눈이 머는 것이다

바람에 온몸을 부딪치며

쉬지 않고 바위에게 흰 손을 내미는 것이다

할랑이는 지느러미가 되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순간마다 착각의 비늘이 돋는 것이다



파도가 몸을 뒤집는다는 표현,

나를 사랑하기 위한 몸부림을 '몸을 뒤집다'라고 한 표현

몸을 뒤집을 때마다 리듬이 태어난다는 것.


몸부림을 쳐도 정도껏이지, '더 이상은 애쓰지 못하겠다'라는 기분에 휩싸인 적이 있다. 이 시를 읽으면 그런 몸부림은 예삿일임을 알았다. '살아 있다는 것은'으로 시작하는 화자의 말은 선언적이며 위풍당당하다. 산다는 게 응당 멈추지 않는 파도의 뒤집기와 같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런 몸을 뒤집는 인고의 행위가 슬프거나 안쓰러운 게 아니라 '리듬'을 만들어 낸다니 경쾌한 희망까지 전해주는 1 연이다.


그런데 2연에서 살아 있다는 것이 '암각화'를 새기는 것이라는 문장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위에 새긴 그림, 고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바위에 그림을 새겼다지. 풍요를 기원하고,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새겼을 마음처럼, 살아 있다는 것은 한 땀 한 땀 풍요를 기원하고 그것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을 매일 새기는 과정일 것이다.


이런 교훈적인 감상을 하려니 뭔가 심심함을 지울 수 없는데, 암각화를 새기는 거창한 일을 ' 그것이 대단한 창조인 양 눈이 머는 것이다'라는 다음 행으로 허를 찌른다. '세상에 던져져 암각화를 새기듯 힘겨운 현실을 깎고 인내하며 살아야겠구나'라는 해석에 그치지 말라고 조미료를 추가한다. 자조적 문장 같지만 위트로 무장했다. 암각화를 새기는 듯, 일상의 행위를 "대단한 창조인 양 눈이 먼"채 착각하며 사는 사람이 바로 '나'인 것 같아 속으로 뜨끔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무릎을 한 번 치고 마지막 구절에서 그녀의 일관성 있는 시선을 확인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 순간마다 착각의 비늘이 돋는 것이다." 결국 내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삶을 해석하며 착각하는 게 나쁘지 않다는 발설이 신선하다. 삶을 유지하는 힘은 누추한 매일을 대단한 일을 하는 듯 착각하는 데 있다고 해석하니 속이 후련하다. 기다렸던 말이다.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무하지 말고, 차라리 위대한 일을 한다고 착각하면 좀 어떤가.


착각하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겨야 살 수 있는 요즘이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걸음 같을 때, 창조적으로 세상을 달리보고, 때론 예술을 하는 장인인 양 착각해야 견딜 수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끝없는 설거지에 원망이 솟구치면, 설거지 달인이 된 양 착각할 때 기운을 낼 수 있지 않는가. 밥벌이로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내일 앞에 불쾌하다가도,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스스로 매기며 작가인 척, 예술가인 척, 세상에 나 같은 사람 없다는 착각을 하면 하루 더 지탱할 수 있지 않는가. 사실 처음 시를 쓸 때, 멋진 사람이 된 양 착각해서 매일 새 힘을 냈던 기억이 선명히다. 다시 생각하면 못볼꼴이었겠지만.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비상식적이며 예상을 빗나가는 일이 많다. 스스로 위대한 일을 한다는 상상, 천지에 없던 놀라운 일을 이루고 있다는 착각을 하면 사소한 일은 사라지고 일상이 유의미하게 보일 것이다. 너무 경직된 눈으로 "빌어먹을 세상"이라고만 하지 말고, 할랑이는 지느러미를 꺼내 쉬지 않는 태도로 바위에 흰 손을 내밀어 새기고 새겨야겠다. 그러면 바람의 온몸을 부딪칠 때도 착각의 비늘이 자꾸 돋아나 석연찮은 현실을 지탱할 수 있지 않을까. 착각하며 사는 것, 눈이 먼 사람인 양 "내가 꽤 괜찮은 존재로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어찌 보면 예측 불가능한 삶에 필요한 엉뚱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진즉에 착각으로 점철한 삶을 살고 있던 나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몸을 뒤집으며 열렬히 암각화를 새겨야겠다. 내가 하는 일이 위대하다는 착각을 겸비하면서 말이다.


착각하며 사는 것, 눈이 먼 사람인 양

"내가 꽤 괜찮은 존재로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어찌 보면 예측 불가능한 삶에 필요한

엉뚱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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