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신애 Sep 04. 2019

뻔한 가을 감성 on!

작은 것이 크게 다가오는 기적

가을,

생각하면 들뜨고

입술로 소리를 내보내면 설레는 낱말.


더운 여름을 시시하게 보내버린 서운함, 가을의 시린 기운이 다가와 당혹스러운 아침. 태풍이 북상한다고 부슬비가 여전하다.

출근하려 운전석에 앉는데 낙엽 하나가 차창에서 붙어있다.

빗방울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조우. 날아가지 않고 견디고 있었다. 밤을 새운 것일까? 낙엽 하나에 무슨 걱정이 이리 많은지.


널리고 널린 이파리, 누렇게 진액을 다한 이파리의 생의 마감을 수십 년 마주했었다. 낙엽은 뻔한 가을 키워드일 뿐. 비질 본능을 일으키는 존재며 가을 스산함의 상징이기만 하던 낙엽. 갑자기 뭐에 훅이 걸려 시선을 고정했다. 한참 시간이 멈추듯 시동을 켜지 않았다. 그깟 낙엽 나부랭이가 나를 장악했다.



눈을 뗄 수 없었다. 와이퍼를 부러 작동하지 않았다. 물방울에 매달린 낙엽이 떨어질까 봐 저속으로 운전했다. 가려진 시야, 느린 속도로 가을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낙엽이 너무 일찍 찾아온 것 혼잣말하다 히죽 웃었다. 낙엽은 계속 침묵하더라.


웃음의 의미를 곱씹었다. 낙엽의 시기를 내가 정하다니. 저 스스로 결정하는데 늦고 빠름이 있을까? 자기의 생애를 달리고 쉼을 선택하는데 정해진 시간표는 없다. 누구도 타인의 시간을 판단할 수도 조정할 수도 없다. 낙엽의 결정은 고유하며 순리적이다. 낙엽의 결정은 낙엽의 것이므로 나는 물러서야 한다.


타인의 결정에 간섭하려는 헛된 마음이 고요해진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자기 목소리를 인정하는 것. 그 결정을 응원하는 것이 나의 오늘의 할 일이 아닐까.


낙엽,
나의 차창에 잘 도착하였다.
 가을아 잘 도착하였다.
오늘 종일 여기서 쉬어라.

한참을 응시하고 차에서 내렸다. 아침부터 숭고한 마음이 싹튼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가을이 부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