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신청은 엄마 책임*

엄마주도로 신청하면 일어나는 일

by 최신애

아이들이 몰려왔다. 2주 정도 탐색기를 거친 아이들은 날뛰기 시작한다.

조용한 여자아이들은 나의 말과 동시에 옆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으로 날뛴다. 조용한 반항이다.

남자아이들은 벌떡 일어나 돌아다니는 것은 양반이고 옆에 아이와 시비가 붙는다.


가장 심한 아이를 불러 세운다. 가까이 다가간다.

"왜 집중을 안 하고 다른 아이들을 방해하니?"

"왜요, 내 맘인데"

"네 맘이면 다니? 같이 사는 세상이니까 내 맘대로 다 할 수 없는 거 너도 알잖아. 20분 전부터 발표하라 해도 안 하고 짧은 문장으로 쓰라고 해도 안 쓰고 도대체 뭘 하러 온 거야?"

"안 하고 싶은데요"

"그런데 왜 신청했어?"

"엄마가 신청했지 난 하기 싫어요"


난감하네~~ 아이들의 입에서 엄마가 가라고 했다는 말이 나오면 말문이 막힌다.

하기 싫어하는 존재들이 최소한 시도는 해보는 아이로 만들지 머리 싸매고 고민해야 한다.


<엄마의 선택의 문제점>

-아이의 자율적 선택권을 앗아간다.


아이들은 자아가 강해지고 선명해지는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면 공부하라는 강압에 피할 방법을 찾아낸다. 어떻게 엄마의 눈을 피해 딴생각을 하며 놀지 구상할 줄 알게 된다. 책상 앞에 앉아있고 방문학습지를 펼쳐두지만 세월아 내월아 죽치며 시간만 보내기 일쑤다.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게 의논과 설득의 과정이 없는 강압적이고 지시적 부모의 선택은 아이 속에 '내 것이 아니다'는 의식을 강하게 심어준다. 그러니 자기가 하고싶지 않은 일에 열정을 보일 리가 없다.


-엄마 주도 선택은 아이를 움직이지 못한다.


방과 후 교실에서 아이들은 담임선생님 앞에서의 모습과 확연히 다르다. 자기 속내를 다 보인다. 말할 기회도 많이 주기 때문에 하말 안 할 말을 다 뱉어낸다. 10의 3 정도는 엄마 때문에 자리에 앉아만 있지 좀이 쑤셔 간신히 버틴다. 안쓰럽다. 글쓰기를 시키는 수업에 누구라도 좋아서 신청할 리 만무하지만 설득과 의견을 반영하는 대화가 없는 결정은 아이와 선생을 모두 지치게 만든다. 1년을 보냈는데 변화가 없다는 말은 아이가 1년을 그저 버티기만 했다는 말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엄마가 무서워서 그냥 앉아있는 아이의 머릿속에 무엇이 담길까? 내 수업을 통해 억지로 왔다가 조금이라도 담아갈 방법을 구해본다.


-무기력하기만 할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을 방해한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 최소한의 목표를 제시하고 달성하면 온갖 칭찬과 간식의 결과물을 제공한다. 그래야 다른 아이들을 방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아이에게 최소한의 수업내용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하고 싶어 신청하거나 반신반의하며 왔다가 매료되어 신나게 수업하는 아이들과 진행한다면 날개를 달겠지만 이 땅에 책을 무척 싫어하고 독서는 옛말이며 글쓰기는 죽어라 저주하는 아이들도 재미를 붙여야 하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몇몇을 어르고 달래고 뒤에 세우고 앞에 나와 칭찬하며 80분 수업을 진행한다. 1년 가르치면 5년이 늙는다는 방과 후의 현실을 다들 상상이나 할까?


-엄마를 원망하지 못하니 선생님을 원망한다.


별소리를 다한다. 엄마는 무섭고 결석했다는 문자가 날아가니 별수 없다. 유체이탈 상태로 버틴다. 교재를 펼치라고 하면 던지는 아이도 있다. 책장을 거칠게 넘기다 찢어져도 아무렇지 않게 웃는다. 반항을 몸으로 표현한다. 엄한 목소리를 말한다. 나를 흘려본다. 눈 내리세요, 멋진 눈 어딨어요~라고 하면 아무 말이나 막 한다. 어떨 땐 반말을 툭 던진다. 강경하게 세워 이야기하고 부모님께 문자를 보내기 직전 잘못했다고 말한다. 뒤에 5분 서있는 것은 벌이 되지 못한다.


교사인 나는 화가 난다. 성자가 아니니까 상처를 받는다. 아니, 내가 아픈 게 아니고 이런 현실이 아프다. 열렬한 수업, 재미난 수업, 자발적으로 발표를 많이 시키고 다양한 매체를 접하게 하는 나만의 독창적 수업에도 저러는데 판서를 따라 쓰고 정답을 찾아 쓰는 평면적 수업을 한다면 얼마나 주리를 틀까 하는 의문이 무지막지하게 올라온다. 나에게 마구잡이로 던지는 부모가 상상하지 못할 말은 큰 상처가 되지는 않는다. 화가 난다. 권위의 손상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영향이 미칠까 걱정이 더 크다. 그런데 부모님께 알려야 될지 말지 고민이다. 자기 자식이 그렇다는 말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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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힘이 약해 위협적인 상황 앞에서는 자기를 죽이고 유하거나 힘이 없어 보이는 대상 앞에서는 위력을 행사하려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보인다. 인간의 기회주의적인 성향은 아주 어릴 때부터 존재하고 드러난다. 인성을 다루는 상담교사가 아닌 나는 수업을 진행해야 하고 나머지 열심히 하는 예쁜 아이들에게 즐거운 수업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제발!!! 부탁하고 싶다. 하기 싫은 아이를 보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수업 중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가르치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내가 거뜬히 헤쳐갈 수 있다. 다만, 엄마 주도로 신청할 때 아이를 설득하고 의논하고 상벌에 대한 약속을 해서 보내주면 좋겠다. 자신이 설득되고 해야겠다는 공감대만이라도 가지고 참석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난 하기 싫은데요. 엄마가 신청했어요. 안 할래요"라는 말 앞에서는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집에서 하지 않는 말을 하는 교실
담임선생님께 하지 못하던 행동을 하는 교실
방과 후 교실의 적나라함을 직면하는 순간
아이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것이 드러난다.
그렇다. 중요한 것을 가르치려 애쓰는
나는, 방과 후 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