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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머핀 Feb 03. 2024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나의 삶을 바꾼 태도 #3

지난 1월의 한 아침, 내가 사는 지역 일부에 정전사태가 벌어졌다. 처음엔 업무용 노트북을 켰는데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아, 신호가 약한가 보네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몇 분 시도해 보고 의아해하던 중, 화장실 불을 켜려고 하니 켜지지 않았다. 곧 전기가 나갔다는 걸 알아챘다. 지난여름에 한번 폭우가 왔을 때 한 시간 정도 정전이 있었기에 그때처럼 곧 돌아오리라 생각하고 크게 마음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 전날 내린 폭설이 원인인지 몰라도 결국 정전은 9시간째 이어졌다. 바깥 온도는 영하 10도였고, 집안 기온도 슬슬 내려가더니만 담요를 꽁꽁 싸매고 있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이 추워졌다. 전자레인지도, 전기 주전자도 작동하지 않으니 따뜻한 물 한잔 마시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비상식량으로 평소에 구비해 놓았던 컵라면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뜨거운 물이 없으니 먹을 수 없었다. 아쉽게나마 찬장의 과자로 점심을 때웠다.


고작 실내온도가 떨어졌을 뿐인데 몇 시간 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의지란 의지는 전부 사라졌다. 하던 일은 다 집어치우고 이불속에 웅크리고 앉아 난방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나라는 사람을 그래도 꽤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온도 몇 도에 그 열심히는커녕 따뜻한 물 한잔만 마실 수 있기를 누워서 기다리는 기운 빠진 인간이 되었다.


한인마트에서 사다놓은 칙촉이 비상식량이 되었다


또는 작년 여름 5년 만에 서울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갈아탈 버스를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30년 가까이 살았던 익숙한 동네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대체 무슨 용기로 그 먼 미국까지 가서 사회생활을 하고 살 결심을 했지?'


갑자기 내가 여기에서 일궈왔던 모든 것들이, 마치 남의 인생에 있었던 일처럼 멀리 느껴졌다. 익숙한 환경으로 돌아갔더니 심지어 실제로 있었던 내 과거조차도 대체 어떻게 해냈던 것인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예전에 살던 장소에 서 있으며 그때 가지고 있던 두려움이 그대로 몰려왔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니 아무렇지 않게 나의 일상을 이어갔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한 것은 결국 나를 비행기에 태워 이곳에 옮겨 놓은 것이 거의 전부였다. 학교를 다니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배우다가, 기회가 와 어느새 7년째 살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자신을 어떤 환경에 내놓아야지만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이 지금 나에게 없다면, 환경을 먼저 바꾸어보는 것이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은 언제든지 새로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일상의 작은 환경도 그렇다. 나는 이틀에 한 번씩 나를 헬스장으로 보낸다. 일단 데려다 놓으면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러닝머신 위에라도 올라가서 걷다가 온다. 갔다가 도저히 하기 싫은 날은 그냥 걷기만 하다가 왔는데도,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시간씩 운동을 하고 내려온다.


글을 쓰기로 시작한 지난봄부터는 주말에는 동네에 있는 Peets 커피에 간다. 가서 30분이라도 앉아있으면 빈둥거리다가도 한 문단은 쓰고 온다. 적어도 집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으니 반은 이룬 것이다. (글을 쓰고 집에 가서는 신나게 게임을 했다ㅎㅎ)


게을러 지고 싶을 땐 재빨리 장소변경


내가 변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을 때 환경을 바꾸면 그 변화가 의외로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주로 새로운 업무나 직책을 맡았을 때 쓰는 표현이지만, 여기에도 찰떡인 표현인 것 같다. 새로운 자리는 사람도 새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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