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바꾼 태도 #5
실행력을 높이는 삶의 태도에 대한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목차에 대한 딱히 정해진 계획 없이 생각나는 대로 썼지만 어느새 여섯 번째 글. 앞의 글에서 이야기했던 네 가지가 '작게 실천하기', '핑계 대지 않기', '바로 실행에 옮기기' 등 어찌 되었든 정직하게 나의 실천을 늘려나가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다면, 이번 글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노력으로 가장 큰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지름길을 소개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그냥 물어보기.
다음은 내가 단순히 물어보기만 해서 얻었던 것 중 기억에 남는 세 가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1. 옷 가게 디스카운트
학생으로 유학 온 지 2년 차 즈음인가 친구와 밥을 먹다가 친구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
"근데 근처 웬만한 가게는 다 학생 할인이 있다고 하더라"
아니 그런 게 있었다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인 데다 난 어차피 쇼핑도 잘 안 하기도 하고,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파가 찾아왔다. 둘러야 할 목도리라도 하나 사려고 집 근처 옷 가게에 들렀다. Brooks Brothers라는, 남성복으로 더 많이 알려진 브랜드인데 깔끔하고 세련된 스타일의 옷이 많아 참 좋아하는 가게였다.
그러나 언제나 가격이 사악한 것이 항상 문제. 세일을 하고도 거의 100달러나 하는, 마음에 드는 목도리를 집어서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아, 날도 춥고 연말이니 그냥 지르기로 하고 계산대로 갔다. 문득 생각이 난 김에 물어보기로 했다.
”나 학생인데 할인해 줄 수 있을까?”
물어보기가 무섭게 학생증을 한번 보더니만 아주 흔쾌히 10% 디스카운트를 받았다. 가게를 나오면서 처음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 게 있으면 왜 먼저 이야기를 안 해주는 거야?? 치사하게'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먼저 알려주지 않는 가게 측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이미 고객수가 충분하니 굳이 디스카운트를 먼저 제시해야 할 필요가 없고, 무엇보다 가게에 오는 사람이 학생보다는 일반 직장인이 많기에 누가 학생이고 아닌지를 지레 짐작하고 먼저 할인을 제시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싶었다. 그동안 물어보지 않았기에 받지 못한 디스카운트가 아쉽긴 했지만, 질문 한 번으로 점심 값 한 번을 번 나는 행복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2. 구직 활동에 필요한 레퍼런스
미국에 와서 한참 취업에 열을 올릴 때였다. 처음엔 어떻게 할 줄 잘 모르겠으니, 일단 양으로 승부해보고 싶었다. 온라인 지원을 폭발적으로 많이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링크드인에 나와있는, 내가 지원해 볼 만하겠다 싶은 모든 포지션에 하루에 대여섯 개씩 지원서를 넣어보았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지원서 작성에서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중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현재 재직 중인 직원의 레퍼런스가 있으면 입력하라'는 항목이 계속 눈에 띄었다.
이제 막 비행기 타고 가서 살기 시작한 나에게 미국 회사에 재직하는 직장 동료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한들 아니 내가 뭐 각 회사에 친구가 한 명씩 꽂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떡한담. 하는 수 없이 빈칸으로 남기고 원서를 작성해서 보냈다. 하지만 그럼 그렇지, 한 자리에 몇 백 명씩 지원을 하는데 내 이력서를 읽어줄 리가 만무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레퍼런스는 마련해야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 아무것도 없는 내가 시도한 방법은 그냥 철판을 깔고 링크드인에서 그 회사/해당 부서에 근무하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회사에 나온 어느 어느 자리에 관심이 있는데 전화 통화 한번 가능하냐"하고 물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연락에 답을 주었고, 통화 중에 간단한 소개 후 레퍼런스를 요청을 했더니 그것도 들어주었다. 세상에 나를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이렇게 기꺼이 부탁을 들어주다니! 나는 그 덕분에 정말 많은 곳에서 인터뷰를 받았다.
보통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도움을 줄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알고 보니 웬만한 회사는 레퍼런스를 제공한 직원에게 소정의 보너스를 지급해 주기 때문에 직원 입장에서도 오는 부탁에 굳이 No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보상이 없다 하더라도 아무 대가 없이 친절을 베푸는 사람도 참 많았다. 그냥 다가가 부탁하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것들이다.
3. 추천서
미국 영주권 신청을 위해 서류를 준비하던 때였다. 제출해야 할 자료 중에 추천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한국에 직장 상사께서 고맙게도 추천서를 작성해 주셨지만, 아무래도 미국 사람에게서 받은 추천서가 간절히 필요했다.
순간 MBA때 만난 마우로(Mauro) 교수님이 생각이 났다. 사실 나는 학교 다닐 때 나 살길 찾기 바빠 인간관계를 쌓는 데에 큰 신경을 쓰지 못했다. 당연히 연락을 하고 지내는 교수님도, 나를 아는 교수님도 없었다. 그래도 그중에 마우로 교수님의 수업은 재미있게 들어서 그분의 이름은 떠올랐다. (물론 나는 기억하지만 그분은 날 기억도 못하심).
심지어 졸업한 지 몇 년이 이미 지난 시점이라 추천서를 부탁하기엔 너무 뻔뻔한 게 아닌가 싶었다. 연락했는데 누구냐고 물어보면 어떡하지??
그렇지만 그분은 그 당시 부총장으로 승진까지 하셨고 매체에도 종종 등장하는 아주 유명한 분이었다. 마우로의 추천서 정도면 정말 결과를 바꿀 수 있을 것만 같아 일단 그냥 들이대기로 했다. 그렇게 이메일로 부탁을 하기 며칠 전부터 내가 노심초사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마우로는 너무 쉽게 대답을 해주었다.
"추천서 써서 가져와 싸인해줄게!"
(영주권을 받은 것이 이 추천서 덕분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비슷하게 얼굴에 철판 깔고 받은 많은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그래서 같은 노력을 하더라도 더 좋은 결과를 내는 법 - 도움을 구하자. 달라고 일단 물어나 보자. 그러다 아님 말고. 다른 사람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려주는 차원이라고 생각하면 부탁이 쉽다.
덧- 아래 링크는 내가 좋아하는 Ted Talk 중의 하나인데, 의도적으로 거절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부탁을 100일간 무수히 많이 했던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중 하나로, 주인공은 크리스피 크림 도넛 가게에 가서 올림픽 모양처럼 5개가 다 연결된 도넛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심지어 직원이 만들어주심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