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바꾼 태도 #6
7년 전인 2017년 초. 한국에 살고 있을 때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 정도 쉴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긴 휴식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큰 맘을 먹고 동네 헬스장에 개인 PT 수업을 등록했다. 회당 5만 원에 30회를 했으니 150만 원을 선불로 내어야 했고, 당시에 일을 쉬며 벌이가 없는 상태인지라 나로서는 큰 결심이었다. 굳이 돈을 내고 운동을 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시간여유는 다시 언제 올지 모르니 나를 위해 최초로 큰 지출을 해보기로 했다.
그때 만난 트레이너 진규쌤은 이제 막 헬스장을 새로 열어 그런지는 몰라도, 늘 넘치는 열정으로 성심성의껏 수업을 진행해 주었다. 내가 의지를 어느 정도 보이니 막판에는 수업료도 받지 않고 몇 회고 무료로 추가 수업도 제공해 주는 고마운 선생님이었다.
어느 날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일하시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들었다.
"아침 7시에 와서 헬스장을 열고 8시부터 1시간 단위 수업을 시작.
중간에 점심을 간단히 먹고 오후와 저녁에 이어 계속 수업.
그렇게 밤 10시까지 수업을 한 후에 본인 운동을 한 시간 하고,
헬스장 청소를 마무리한 후 자정이 되어야 문을 닫고 집에 가요"
그때에는 '어우 무진장 힘들겠네'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갔던 것이 문득 이제야 다시 떠오르는 이유는 이거다: 진규쌤은 고된 스케줄에도 한 번도 축 쳐져 보이는 일이 없었다. 고객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업을 마무리하고 간간히 앉아 쉬는 모습에서도 우울하거나 피로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과연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가장 찾지 않는 직업군이 헬스 트레이너라더니 너무나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어느 직업보다도 힘들어 보이는데, 어느 직장인 보다도 활기가 넘쳐 보였던 트레이너 쌤들.
진규쌤은 고된 스케줄에도 한 번도 축 쳐져 보이는 일이 없었다.
글에서는 매번 실행을 강조하고 내 인생은 마치 도전과 활기가 넘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난 에너지가 별로 없는 사람이다. 하루에 회의라도 두세 개만 하면 으레 피곤함과 무기력함이 찾아온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낸다. 새로운 동네에 산지 이제 고작 2년 째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고, 열심히 회사는 다녔는데 돈이 모이는 속도는 더디고, 3년째 승진을 한 번도 못하고 있다. 영어를 매일 쓰는 환경에 있는데도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못 알아듣는 말이 이렇게나 많다. (나는 나의 인생만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내 문제는 항상 선명히 보인다)
그런데 7년 전 시작한 운동이 기운 없는 나를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끌어 줄은 전혀 몰랐다. 뭐든 일단 시작을 하면 강도와 빈도는 증가한다고 하더니만, PT 수업이 종료된 이후 혼자서 처음에는 30분 일주일에 세 번도 겨우겨우 하던 운동이, 하다 보니 야금야금 늘어 지금은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1시간이 되었다. 2년 전부터는 러닝머신에서 조금씩 달리고 있는데 처음엔 5분도 숨차더니 이제는 올라가면 15분씩은 쉬지 않고 뛴다. 그때 내가 PT에 쓴 150만 원은 이미 1000% 이상의 리턴을 나에게 돌려주었다. 그 덕분에 병원 문 앞은 거의 가 본 적이 없고, 이제는 다들 한두 번쯤은 걸려본 코로나도 나를 괴롭히질 않았다.
그런데 건강도 건강이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평소에도 기운이 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고 싶은 무기력한 날에도 결국은 손가락을 움직이고 다리를 쓰게 하는 에너지를 운동에서 얻었다. 진짜 하기 싫은 걸 할 때, 해야 하지만 도저히 할 기분이 아닐 때, 기분에 상관없이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힘 말이다.
그래서 돌아보면 결국은 다 운동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겠을 때 한 발짝을 가게 해주는 그 파워. 그걸 얻으려고 오늘도 헬스장에 간다. 운동을 하고 나면 경기를 뛴 것도 아닌데 올림픽 챔피언인 듯 뭔가를 이긴 것 같은 그 기분이 좋다.
*몇 년을 해도 가기 전엔 너무너무 하기 싫은 건 안 비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