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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머핀 Mar 02. 2024

사람을 움직이는 건 사람

나의 삶을 바꾼 태도 #7

나에게는 두 살 많은 언니가 있다. 울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고 학급 회장도 매 학기 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리고 많은 동생들이 그렇듯, 난 언니가 하는 건 다 따라 해야 하는 욕심쟁이 중 욕심쟁이 었다. 언니가 피아노를 체르니 30번을 배우고 있으면 나도 바이엘을 빨리 졸업하고 체르니로 넘어가고 싶었고, 컴퓨터 학원에서 하는 경진대회에서 언니가 우수상을 받으면 나도 받아보겠다고 아주 악착같이 옆에서 같이 배웠다.


그 시절 피아노 학원에서의 레벨업을 상징했던 체르니!


돌아보면 뭔가를 잘하고 싶다는 자극은 항상 언니가 해내는 것들을 보면서 시작되었다. 두 학년이나 높으니 자라면서 더 어려운 것도 잘 해내는 게 아주 당연한데도 어린이였던 나에게는 그런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나 보다. 영어도 수학도, 언니만큼 하려고 더 열심히 했을 뿐인데, 그렇게 늘 비교치가 높은 곳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많은 과목에서 내 또래의 친구들 보다는 조금은 더 잘하는 수준을 만들 수 있었다. 친구들은 언니가 있어서 좋겠다며 부러워했다 (특히 집안에서 맞이인 친구들ㅋ). 내가 처음부터 욕심내어한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바로 옆의 누군가가 잘하면 비교하는 마음이 좋은 방향으로 작동하며 나도 힘을 더 내어 실력을 업그레이드했다.


요즘 일상을 돌아보며 옛날의 그 복작복작하던 시간이 떠오른다. 옆 사람이 동기부여가 되어주는 세상에서 자꾸 멀어져 가는, 단절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서다. 지금은 하루종일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 업무는 재택근무, 은행도 비대면 서비스, 장 보는 것도 귀찮으면 집으로 배달,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것보다는 넷플릭스로 힐링하며 주말을 보내는 그런 세상. 핸드폰 하나만 쥐고 있으면 나의 생활은 이미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아도 실제로 만난 사람은 가족인 남편뿐, 화상미팅으로 만난 직장동료 딱 두 명.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그러면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사람과의 교류가 점차 심리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누군가 조금만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기분이 나쁘면, 더 이상 만남을 이어나가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핸드폰 안의 세상에서는 언제든지 사람을 쉽게 차단할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주변에 사람이 없는 인생을 생각해 보면 과연 그것이 내가 원하는 건가? 하고 되묻게 된다. 사람으로 인해 짜증이 나고 괴로운 순간이 많지만, 다시 또 사람들을 만나며 즐거움을 만들고 살아가는 의미를 얻는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던 시절을 돌아보면 나쁘기만 하진 않은 이유도, 간간히 회사 사람들과 치맥도 하고 이런저런 재밌는 이야기로 웃고 떠들었던 시간이 떠올라서 그렇다.


무엇보다 혼자가 가장 힘든 점은 바로 움직이기가 힘들어진다는 거다. 주변 사람에게서 오는 자극과 동기부여는 실로 강력하다. 어렸을 때의 나는 언니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더 나아지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홀로 보내는 시간이 계속되면 사람은 딱히 변화를 해야 할 이유도, 따뜻하고 안정된 이불 바깥으로 더 나아가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한다.


인간은 함께 살아가게끔 설계되어있다. 흔히 결혼을 두고 하는 이야기처럼, 혼자서는 빨리 갈 수 있지만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결혼뿐 아니라 사람의 삶에서 이 말이 정말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누구나 가지고 있는,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각자의 약점이 있다. 개인은 전부를 완벽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내가 오늘 혼자 앉아서 직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를 끙끙 앓는다고 해서 베스트 솔루션이 나오지 않는다. 날고 기는 회사들이 왜 팀워크를 강조하겠는가. 어느 한 사람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목적을 함께 하는 여러 사람이 있을 때 가장 최고의 결과를 내놓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될 디지털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은 바로 이것 -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특히 나보다 잘난 사람,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을 보러 나가야 한다. 타인을 영입하는 것은 내가 보지 못하는 세계로 나를 확장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책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통해 나의 삶을 바라보는 좋은 도구다. 그 과정을 통해 나의 행동이 변하고, 더 나은 결정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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