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 버전 예술 감성 에세이 #06
사무치게 추운 날을 마주하는 날이 있다.
엄동설한의 칼바람만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모멸,
더 할 수 없는 막막함,
이 모두 사무치는 추위처럼 뼈속까지 파고든다.
막을래야 막을 수 없이
스며드는 날카로운 추위처럼.
그런 날이 있다. 누구에게나.
그 해 겨울 눈이 많이 내렸다.
파리의 북서쪽 아르 장 퇴유에 머물던 모네에게 눈으로 뒤덮인 이 해의 겨울은 무한한 영감을 던져주었을 것이다.
예술가에게는 추위도, 추위의 결과도 모두 영감이 된다.
추위의 결과인 눈이 포근함을 보여주는 역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사무쳤던 겨울의 추위가 아늑함으로 대치한다.
우울한 푸른색과 회색을 겨울 오후의 한적함으로 대치한다.
그렇게 사무치는 추위의 겨울날도 한적함과 아늑함으로 대치된다.
쇼스타코비치다.
9번의 저주를 깨뜨린 그의 교향곡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의 왈츠가 필요하다.
엄동설한의 눈폭풍이 몰아치는 창 밖 풍경,
멋진 샹들리에로 비추고 있는 홀,
파티를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왈츠 2번은 완벽한 대치를 음악에 담아낸다.
애수 어렸으나, 일면 화려하고,
슬픔이 치밀어 있으나, 화려한 파티장이 스며있다.
사무치는 추위에 치인 날에는
이 음악이 제 맛이다.
시린 가슴을 부여잡고,
엄동설한의 세상을 버려두고,
손을 잡고 춤을 추는
화려한 파티장에 서 있는 듯
그렇게 들어야 제 맛이다.
따뜻한 방바닥이 필요하다.
따뜻한 방바닥에 이불을 둘러쓰고 들어야 한다.
음악과 감정이 청승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따뜻하고 정겹게 들어야 한다.
차갑게 얼어가는 보드카 한 잔이 어울린다.
무색, 무향, 무미의 깨끗한 보드카 한 잔이면 된다.
슬리치나야나 벨루가 같은 진짜 러시아 보드카라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과 딱 맞다.
없다면 앱솔루트도 괜찮다.
따뜻한 엉덩이를 안주삼아 그렇게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만끽한다.
세상의 추위에 치인 날,
울지 말고 도망쳐 이불속에서 들어보자.
까짓것 어떠랴...
이런 날도 있을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