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 버전 예술 감성 에세이 #07
반복되는 삶과 죽음을 매일이라 부르며 살아간다.
나 자신이 꼴도 보기 싫을 때,
너무나도 부끄러워 사라지고 싶을 때,
가슴 먹먹한 감정이 온 마음을 가득 채울 때,
엄습한 피곤함에 숨쉬기도 버거울 때,
잠이 필요한 때이다. 자러 가자.
잠과 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
새로운 삶을 잉태하는 잠은 축복이다.
잠은 작은 죽음이고,
잠에서 깨어남은 새로이 태어남이다.
매일 새로이 태어나고,
매일 새로운 죽음을 겪는다.
반복되는 삶과 죽음을 매일이라 부르며 살아간다.
영웅 페르세우스를 잉태한 다나에,
그녀는 아크로스의 왕, 아크리시우의 딸
외손자를 바랐던 그는,
그토록 바라던 외손자의 손에 죽게 된다는 신탁을 받는다.
외손자를 얻지 않으려 딸 다나에를 탑에 가두지만,
황금빛 소나기로 변한 제우스와 잠에 빠진 그녀는 페르세우스를 잉태한다.
결국 신탁은 현실이 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비극의 신탁일지라도 골치우스가 그린 다나에는 아름답기만 하다.
그 끝에 비극이 있을지라도,
그녀의 잠은 평온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카이저링크 백작을 위해 써주었다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악의 아버지인 바흐에게 잠들 수 있는 음악을 요구했다는 일화가 사실이 아니라 해도,
바흐의 골드베르크의 아름다운 선율은 잠과 함께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아리아와 그에 따르는 30개의 변주곡이다.
반복되는 다채로운 변주에 빠져드는 황홀경을 느껴봐야 한다.
다채롭지만 정돈된 변주들의 축적을 느껴봐야 한다.
아리아에서 변주되어가며,
1시간에 조금 못 미치는 대장정이 시작된다.
영롱함을 느끼기엔 아리아만으로 충분하다.
피아노로 연주해도 좋고,
챔발로, 하프시코드 어떤 악기라도 좋다.
모두 영롱하다.
숨찬 듯 달리는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부터
음미하듯 쉬엄쉬엄 진행되는 로잘린 투렉까지
모두 저마다의 맛이 스며있다.
하지만 영롱함이라면 안드라스 쉬프를 지나칠 수 없다.
그야말로 구슬이 흘러내리는 듯한,
그의 영롱한 바흐야말로 잠들기 전 들을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라 할 만하다.
골드베르크를 듣기 전, 준비가 필요하다.
거창한 준비가 아니다. 비워야 할 뿐이다.
단지 그대로 잠들 수 있어야 한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이 필요하다.
불 꺼진 방에 홀로 남아,
더할 수 없이 편하게 앉아야 한다.
드러누워도 좋다.
아무렴 어떠랴,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영롱함을 들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좋다.
아리아의 영롱함을 몸으로 느껴야 한다.
그대로 음악 속으로 침전해 들어가야 한다.
눈을 감아도 좋다.
음악이 쏟아져 나오는 느낌으로
음표를 덮고 그대로 잠이 들어도 좋다.
그렇게 이제 잠드는 것이다.
이제 자러 갈 시간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