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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y 30. 2017

침묵으로 교감하는... 피렌체 미술 기행

예술사-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The Annunciation)'


르네상스 미술사가 ‘바사리(Vasari)’는 ‘천사같은 성품의 수도사’라는 별칭을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본명 Guido di Pietro; c. 1395–1455)에게 붙였다. 왜냐하면 프라 안젤리코는 그림을 통해서 신의 영광을 드러낸 수도사 화가였기 때문이다. 수도원의 높디 높은 담장안에서 평생을 절제와 경건으로 산 도미니코회 수도사였던 그는 죽은 뒤 5백년도 훨씬 뒤인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의 화가로서의 업적과 경건한 삶을 기리며 ‘시복(beatification)’하여 지금은 복자(Blessed. 시성 전단계)로 불린다. 가톨릭 수도사였던 만큼 주로 성서를 주제로한 많은 그림은 지금 세계 곳곳의 중요 미술관에 걸려있는데 런던의 내셔날 갤러리나 파리의 루브르 또 마드리드의 프라도같은 잘 알려진 미술관에서도 쉽게 만날수 있다.


위의 그림은 “수태고지(The Annunciation)”를 주제로한 벽화이다. 그의 생애 대부분을 보낸 도미니코 수도원인 피렌체(Florence)의 산 마르코(San Marco) 수도원에 있으며 지금 이 수도원은 박물관이 되었다. 이 수도원 1층에서 계단을 올라 2층에 이르면 바로 보이는 벽에 그린 벽화이다. 이 수도원엔 그가 그린 다른 주제의 그림들도 많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알려진 그림은 뭐니해도 이 수태고지 그림이다.


수태고지란 대천사 가브리엘이 어린 나자렛의 시골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고지) 신약성서의 이야기다(루카서 1:26-38). 믿음이 강한 마리아에서 인류 구세주의 어머니로, 또 인류의 성모님으로의 삶을 살게되는 바로 그 사건의 발단이다. 가톨릭 교회에선 이 수태고지 축일은 예수탄생, 즉 크리스마스로부터 딱 9개월 전인 3월 25일이다. 이 수태고지를 주제로 수많은 화가들이, 특히 중세와 르네상스시기의, 그림을 그렸는데 사실 이 한 주제만으로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개관할 수 있을 만큼 전통적으로 화가들은 이 주제를 즐겨 화폭에 담았다. 프라 안젤리코도 여러번 이 주제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프라도 미술관의 수태고지와 이 산 마르코 수도원의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이 수도원의 그림은 성당안이 아닌 도미니코회 수도사들의 수도생활에서 일상으로 많이 접하는 공간에 그려졌으며 묵상과 영적인 삶으로 이끌기 위한 특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미술사적으론 이 그림이 고딕 미술에서 르네상스 미술로 옮겨가는 것을 잘 보여주는데 공간 구성, 원근법, 또 그림의 주제와 배경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있다. 첫째로 고딕 미술에서의 보이는  수태고지와 달리 이 그림에선 가브리엘 대천사가 정원으로 넓게 오픈된 마루에서 성모님을 만나는 구성이다. 그래서 거의 배경이 없는 고딕 미술과 구별된다. 고딕 미술에서의 수태고지는 거의 다 이 두 중심인물이 폐쇄된 집안의 방에 있거나 아예 배경없이 두 인물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유럽의 고딕 대성당들에 조각된 수태고지는 단지 두 인물만 보여줄 뿐 아무런 다른 배경장치도 없다. 이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에서 대천사의 성모님 방문이 정원과 집안으로 묘사된 특별한 예는 이 후에 수태고지 그림에서 하나의 전통이 되었고 더 나아가 천사가 아예 정원(집 밖)에 위치한 경우로 발전되었다.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그림도 그 중의 하나이다(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성서상으로 이 수태고지의 정확한 위치는 안 나와 있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에 속해있는 ‘나자렛(Nazareth)’이 수태고지의 마을임이 분명하나, 성모님의 집이 있던(지금은 수태고지 성당이 위치) 곳이거나, 아니면 내려오는 전설에 의거해 가까운 우물가로 예상한다. 이 우물은 아직도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데 지금은 그 위에 그리스 정교회가 세워져있고 이 성당 제대 뒤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 샘물에서 성모님이 물을 긷는 동안에 천사가 나타났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이 그림의 백그라운드는 실제 나자렛이 아니라 그림이 그려진 이 피렌체의 수도원 공간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이 그림에서 건물안의 공간을 관람객이 원근법적 3차원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그렸다. 코린토 형식의 기둥들과 로마네스크식 둥근 아치형 집안 건물의 구조를 이용해 원근을 확실히 드러내며 3차원적으로 인물을 그 건물안에 위치시켰다.이는 2차원적 고딕미술에서 3차원적 원근법에 기초한 사실주의적 인물과 배경묘사인 르네상스 미술로 옮겨감을 알수있다. 그렇지만 인물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 작은 건물의 크기와 기둥의 높이 등으로, 그리고 인물의 모습에서 아직도 정확사실적인 르네상스적인 모습보다는 고딕적인 2차원적 표현이 드러나기에 사실 이 그림은 두 미술사적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원으로 오픈된 마루의 성모님을 향하여 대천사 가브리엘은 한쪽 무릎을 약간 꿇으며 인사하는 자세로 그려져있다. 날개는 대부분 당대의 그림과 같이 화려하고 다양한 색으로 세밀하게 그려졌으며 천사의 옷은 엻은 핑크색이다. 이는 곧 지상과 비교해 천상의 화려함을 보여주려는 의도이며 이 천사 가브리엘이 하늘의 메시지를 갖고 왔음을 상기시킨다. 날개를 퍼덕이며 공중(천상)에서 수태고지를 알리려 땅위에 가뿐히 내려 앉는 순간의 자세를 천사에게서 볼 수 있으며 그의 자세는 아직 땅위에 완전히 닿지 않고 약간은 붕 떠있는 모습이다. 천상에서 왔다는 그리고 중요한 ‘인류구원계획서’를 품고 온 천사의 중요한 임무로 보아서도 그림은 무거운 주제를 지니고 있지만 사실 그림 전체의 분위기로선 그런 무거움을 읽을 수 없다. 반대로 천사의 수려한 날개와 천사쪽(왼쪽)으로 빛이 들어와(그림자로서 빛의 위치를 감지) 집 마루를 환히 비추고 있어서 천상의 빛, 즉 하느님 은총의 온기가 감지되고 풍긴다.


이는 또 갑작스런 천사의 나타남에도 놀랍기는 커녕 겸손한 자세를 보이는 시골처녀 마리아를 향한 천사의 모습에도 그대로 보인다. 그리고 그의 가슴아래로 얌전하게 포갠 두 팔의 자세로 보아 구세주의 어머니로 선택받은 분을 향한 존경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성모님은 의자에 앉은채로 가브리엘 천사를 맞고 있으며 천사의 온화함에 다시 온화함으로 응답하는 모습이다. 그녀는 푸른색 의상을 입고있는데 이는 천상의 색이며 동정녀인 그녀의 순수함을 상징한다. 대부분의 성화에선 성모님의 옷은 푸른색이며 이는 유럽미술에서 아예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잡았다(몰타의 한 성당에서 한 화가가 붉은 색과 핑크 색을 입은 성모님을 그린 그림을 그렸다가 많은 사람들의 항의를 받은적도 있었다). 한 성인의 아이콘을 그릴 때 그 성인만의 특징을 보여주는(iconography) 것은 유럽에서 전통으로 굳어졌으며 이에 벗어날 시 제제를 받거나 무시를 당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겉옷안에 입은 속옷은 천사와 같은 색이다. 천상의 선택받음과 지상의 인간임을 동시에 가리키며 또 가브리엘 천사와 동일한 자세로 두 팔을 포개며 몸을 앞으로 약간 숙이고 있어, 이 둘 사이의 이해와 교감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이는 또 천사의 수태고지에 “예” 라는 응답과 함께 하느님 구원계획에 대한 순종의 표시로도 읽을 수 있다.


백그라운드로 나오는 수도원 회랑은 여러 코린토식 기둥들이 로마네스크 아치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이 백그라운드는 두 중심인물인 천사와 성모님을 가운데로 품으며 이를 중심에 향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림의 왼쪽으로 정원과 숲이 나오는데 울타리로 분리되어 있다. 뒤쪽의 숲에는 피렌체가 속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사이프레스(cypress) 나무들이 보이며 우거진 수풀은 원시상태, 즉 창조직후의 모습을 상징한다. 앞쪽의 잘 가꾸고 다듬어진 정원안은 ‘닫힌 정원(enclosed garden)’이란 용어로 서양미술에서 불리며 성모님의 동정성을 뜻했다. 후에 그려진 수태고지와 성모님이 나오는 여러 성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상징이다.


이에 더 나아가 뒤쪽 숲속에서 아담과 이브가 쫒겨나는 모습을 추가한다든가 천사가 이 내부정원에서 수태고지하는 것으로 유행은 옮겨가고 상징성있는 대상들을 추가했다. 그래서 이 그림은 단순하다. 이후의 수태고지에서 자주 보이는 순수의 상징인 백합(Lily)화병이 이 그림에선 아직  볼수없으며 성령의 상징인 비둘기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자주 성모님이 무릎 위나 책상위에 성서를 펼치고 읽는 모습도 이후의 수태고지 구림에서 자주 등장하나 이 그림에선 안 보인다. 마리아의 성서읽는 장면의 페이지는 이사야 예언서의 7장 14절로 후일 구세주가 동정녀로부터 탄생하며 그의 이름은 엠마뉴엘이라 하리라는 구절이다. (Therefore the Lord himself shall give you a sign; Behold, a virgin shall conceive, and bear a son, and shall call his name Immanuel.).


이런 여러 상징들을 볼수없는 이 그림은 그래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있다. 이런 여러 상징들은 이 수도원의 수도사를 대상으로한 이 그림에선 굳이 필요하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이 단순하고 강렬한 메시지는 ‘정제된 침묵’으로 관람객에게 전해진다. 이 그림이 던지는 주제로 보면 이 그림의 이미지는 이 인류구원계획을 고지하는 이 세기적 ‘사건’에 트럼펫을 불어야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교감의 메시지가 이 두 중심인물, 천사와 성모님 또는 천상과 지상을 통해 사실 침묵으로 전해지며 프라 안젤리코도 말씀(word)보다 시각적 침묵(visual silence)을 통해 성서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매일 이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수도사들에게 무언으로 말을 건내며 가슴에 새기도록 상기시키는 효과를 의도한 것이다. ‘침묵의 교감’으로 하는 ‘성스러운 대화’로 서양미술에선 “사크라 콘베르사찌오네(sacra conversazione. sacred conversation)”로 불렸다. 계시된 신의 말씀을 내면화, 영적화시키는 중요하고 효과적인 시각적 방법이다. 성상과 성화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사들이 사는 수도원에 그려진 이 그림은 ‘세속적인 미학적 즐거움’만을 위해 그려진건 아니다. 그림이 그려진 장소를 돌이켜보면 수도사들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하고 또 성서의 말씀을 시각적 구체적으로 표현해서 성서적 가르침을 내면에 새기도록, 즉 살아있는 말씀이 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이 그림 아래에 덧붙여진 말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영원한 동정녀이신 성모님의 이 그림앞에 서면 ‘은총이 가득하신(Ave) 분’이라고 인사하는걸 잊지마십시요(Virginis Intacte Cvm Veneris Ante Fivvram Preterevndo Cave Ne Sileatvr Ave.)”

‘아베(Ave)’는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인사한 말로 가톨릭 신자들이 비치는 성모송의 첫번째 구절이다. 하루에 다섯번의 매일기도를 바치는, 그리고 세번의 ‘삼종기도(Angelus)’를 바치는 이곳의 수도사들에게 이 그림은 500년을 넘는 세월동안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다시 상기시켰다. 이제는 이 벽화를 방문하는 모든 순례자들에게 ‘시각적 언어(visual language)’로 이를 다시 상기시키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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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The Annunciation', Angelico 1438-45. fresco (230 × 321 cm) Museo di San Marco, Flo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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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던 계단 위로 수태고지 벽화가 보인다.
가브리엘 천사의 확대한 모습. 날개를 세밀하고 화려하게 그렸다.
프라 안젤리코의 또다른 '수태고지'.
같은 수도원의 다른 수태고지 벽화. 뒤편에 도미니코 성인이 보인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프랑스 사르트르 대성당의 '수태고지' 조각. 오른쪽은 성모님이 사촌 엘리자벳을 방문하는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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