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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y 27. 2017

어린 영혼 ‘네로’의 흔적을 보다

예술사-루벤스의 '십자가 내림'

루벤스의 '십자가 내림'. 안트워프 성모대성당 소장.


벨기에 ‘안트워프(Antwerp. 앤트워프)’의 새로 오픈한 박물관을 나와 시내로 들어갔다. 박물관이 위치한 폐기된 옛 부두는 부산항 부두처럼 어수선했지만 시내 건물은 중세의 흔적이 아직도 도처에 보였다. 시내로 들어가자 이 도시의 성모대성당(The Cathedral of Our Lady) 첨탑이 위엄있게 중심에서 하늘로 솟아 있었다. ‘저 첨탑 대성당에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의 유명한 그림들이 있지’ 생각하니 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시내 중심가인 대성당 광장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가는 주위엔 많은 기념품 상점들이 오밀조밀 밀집해 있었다.


대성당 앞에서 위로 높이 솟은 첨탑을 보다가 “네로야!” 하고 부를 뻔했다. 어린 영혼 ‘네로(Nello. 원래는 넬로. 한국에선 네로라고 했다. 일본식 이름을 갖다붙인것 같다.)’와 그의 친구 ‘파트라슈(Patrasche)’를 떠올렸다. ‘플란다스의 개(A Dog of Flanders)’란 만화영화를 tv에서 본 사람은 누구나 이 정다운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슬픈 그 마지막 장면이 바로 이 안트워프의 성당안이다(아, 지금도 슬프다. 인간의 감정이란...). 우리는 일본 만화영화를 통해 플란다스의 개를 보았지만 원작은 아버지가 프랑스인인 영국 작가 ‘위다(Ouida. 본명은 Marie Louise de la Ramée)’의 1872년 작품이다. 어린 네로는 의지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미술경연에서도 패했다. 거기에다 살던 집도 비워주어야 해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안트워프 교외의 호보켄(Hoboken)에서 이곳 대성당으로 걸어 왔다. 얼마나 추웠을까? 날씨도, 세상도… 이 세상 어디에도 의지할수 없었던 이 어린 영혼의 꿈은 성당안에 걸려 있는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성화를 보는 것이었다. 짝으로 보이는 성당 양편에 걸린 예수의 ‘십자가 올림’과 ‘십자가 내림’ 그리고 천장의 ‘성모승천(the Assumption)’까지, 네로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며 ‘와…’하고 감탄하면서 무릅을 꿇고 만다. 곧이어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는 일심동체, 파트라슈가 어두운 성당안으로 들어오고 둘은 이 그림 아래에서 동사하고 만다.

대성당의 왼쪽 채플에 ‘십자가로 올림(the Elevation of the Cross) ’이 있었고 오른쪽에 ‘십자가에서 내림(the Descent of the Cross)’이 있었다. 그리고 천장엔 ‘성모 승천(the Assumption of Our Lady)’이 그려져 있다. 십자가의 예수 두 그림은 사진 작품처럼 한 순간을 포착했지만 그림속의 ‘순간 전(before)’과 ‘순간 후(after)’를 감지할 수 있었다. 순간을 포착했지만 ‘역동적(dynamic)’이었다. 지리상, 그림 틀 안-밖으로 또 시간상, 전-후로 상상을 자연히 하게 만든단 말이다. 하지만 이 ‘십자가의 내림’은 ‘순간(moment/second)’이 ‘정적(silence)’로 다가왔다. 정적은 또 ‘성스러움(sacred)’으로 곧바로 관람자를 몰입시켰다. 삼단 그림(tryptic. 병풍같이 접을 수 있도록 한 세 폭의 그림)의 가장 큰 중앙의 그림으로 예수의 신체를 중심으로 특이하게 대각선으로 나누어 곧 예수의 몸이 앞으로 쏠려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 그림에선 8명의 인물이 중앙의 예수를 중심으로 대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맨 위의 십자가 나무 틀 양쪽에 한명씩 두 일꾼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리고 있고 그 중 오른쪽 일꾼은 예수의 하얀 수의(shroud)를 이빨로 물고서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십자 양팔의 뒷 부분에서 전체 몸을 의지하며 십자가 앞으로 굽혀 무게를 잡으며 아래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 밑으로 성 요한 제자가 보이며 그의 왼발은 땅에 다른 발은 사다리에 걸치고 예수 신체 중앙 아랫부분을 책임지며 받치고 있다. 성 요한은 성화에서 대개 붉은 옷을 걸치는데 이 그림도 예외는 아니었다. 십자가 아래서 한 스승의 말씀인 “지금부터 성모님이 너의 어머니이시고 또 잘 돌보아라”란 성서의 말씀이 있어 십자가 성화에선 단골 손님이다.


요한 성인을 따라 건너 편에선 성모님이 십자가 아래에서 두팔을 자신의 아들에게로 뻗고 있다. ‘너는 나의 전부’이고 이 전부를 잃은 어머니는 사실 침묵밖에 없다. 그 아래로 예수님의 발이 마리아 막달레나의 어깨에 닿아있고 그녀의 금발 머리카락 한줌이 예수의 발과 닿아있다. 이는 성서의 말씀대로 마리아 막달레나가 창녀에서 회심하고 십자가 죽음 몇일 전 죽음의 예고로서 그녀가 머리칼로 예수님의 발을 오일(oil)로 씻기는 대목을 암시함을 알수있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나오는 그림이나 조각엔 항상 그녀는 긴 머리를 볼수 있고 또 오일 병(jar)이 옆에 있을 때도 많다. 그 뒤론 살로메(마리아 클레오파스 일지도?)가 무릎을 꿇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다시 위로 올라가서 맨 위의 두 평범한 옷차림의 두 일꾼과 다르게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오는데 왼쪽은 예수의 시신을 챙기려고 돈을 지불한 아리마테아의 요셉이 값비싸 보이는 의복을 걸치고 있으며, 그 반대편 마주 보는 곳엔 니코데모스가 있다. 그림 오른쪽 밑으로 요셉이 지불한 영수증이 보이고 그 옆에 십자가에서 빼낸 피묻은 못을 담은 대야가 놓여있어 정적속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운다. 거기다가 예수님의 몸과 그의 수의를 제외하곤 이 그림의 배경은 어두워(요한 제자의 붉은색 옷까지도) 심각함과 엄숙함을 더하며 왼편 3분의 2 아래쪽에 예루살렘의 십자가 형이 처해진 노을 진 갈바리의 하늘이 조그맣게 보임으로 어둠은 벌써 시작되었음을 암시한다. 죄의 어둠이 죄없는 십자가의 죄수와 그의 수의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은 1611년에 주문을 받고 1612년과 1614년 사이에 루벤스가 그린 것으로 나와있다. 삼단식 병풍의 중간이며 가장 규모가 크고 왼편의 그림은 성모님이 사촌인 엘리자벳을 방문하면서 두 여인이 곧 태어날 메시아를 동시에 손짓하며 가리키는 그림이고 오른쪽은 어린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아끄버지어(the Arquebusiers)란 안트워프 시 동맹에서 루벤스에게 주문했다. 이 동맹의 주보성인은 성 크리스토퍼(St. Christopher)로 성인의 그리스어 이름말처럼 ‘그리스도를 업는자(Christ-bearer)’ 라는 것에서 이 그림의 독해를 해봄직하다(삼단 병풍을 접으면 이 성인의 생애 그림이 나오도록 되어있다.). 전체 그림의 분위기는 성스럽고 고요하다. 그리고 엄숙하다. 슬픈 광경이지만 주위 인물들의 인상에선 슬픔보단 엄숙이 더 느껴진다. 심지어는 자식을 잃은 성모님의 모습에서도 다른 피에타(pieta)성화나 조각에서처럼 비탄이나 오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배경의 어두움으로 그림의 분위기를 대신해 말해주며 그림의 주제에서와 같이 인물 하나하나가 자신의 위치에서 예수님의 성체를 떠받치고 지탱한다. 즉 ‘크리스토퍼(그리스도를 없는 자)’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 숨이 멎어 파리해진(pale skin) 성체가 그 죽음의 틀인 십자가를 거의 가리고 있으며(윗 부분만 겨우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십자가임을 눈치챈다.) 이 성체가 곧 부활할 성체 즉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인 것이다. 희생의 직접적 도구인 십자가를 뒤로 은폐하고 죽은 성체를 정중앙에 배치함으로 또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동작의 상징성으로(성당의 반대편 그림 ‘십자가에 올림’과 비교해서도) 루벤스는 이 예수의 몸이 ‘성찬적(eucharistic)’ 희생 자체임을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것이다. 십자가 앞의 예수의 몸이 상징하는 성찬적인 주제를 즉 죽음과 희생없이 부활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루벤스는 바로크(쉽게 가톨릭 회화라고도 불린다)의 거장답게 가톨릭적 교리로 풀어내었다. 이는 안트워프가 경험한 종교싸움에서 가톨릭적 바로크의 특징을 나타내며 이제 이 부유했던 도시의 한 상징이 되었다(루벤스의 아버지는 칼빈주의 프로테스탄트). 그리고:


“예수님을 업어 강을 건넌 크리스토퍼 성인처럼 부활한 예수님의 ‘가벼운 몸’을 우리 삶에서 업고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희생한 예수님의 축 늘어지고 ‘무거운 몸’을 업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루벤스의 특징인 뚱뚱한 신체표현은 여기에서도 나타난다.)”.


그래서 이 그림은 그리스도를 따르려하는 자에겐 아주 교리적이다. 이 대성당에서 일요일마다 미사 참배오는 모든 신자들에게 또 성당을 방문하는 모든 관람객에게 이 그림은 400년을 넘게 이렇게 말해왔다(나폴레옹이 약탈해 파리의 루브르에 귀양살이한 20년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나를 따를 수 없고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 그림에 숨어있는 것이다.

“Then said Jesus unto his disciples, If any man will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Matthew 10:37-39; Mark 8:34-38; Luke 9:23-27)

다시 우리의 어린 영혼 네로와 파트라슈로 돌아가보자. 이 그림을 올려다보며 난 이 가공의 인물인 네로와 파트라슈가 저절로 떠올랐다. 걸작과 함께 얽힌 뒷 이야기들은 그림을 더욱 풍성하게하고 해석을 다른 각도에서 할 수있는 정보를 준다. 아, 아니 그림을 보는 느낌을 ‘진’하게 한다. 가슴을 적신다고 할까? 나는 올려다보던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림을 보는데 자꾸 축 늘어진 예수님과 네로의 얼굴이 겹쳤기 때문이다. 죄없이 선한(innocent)면에서 또 그림의 배경인 어둠, 인간의 죄로 희생된 상징적 측면에서 말이다. 그림 아래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네로와 파트라슈가 동사했던 바로 그 자리를 내려다 보았다. 그 만화영화의 장면이 쑥 들어왔다. 그림 아래에 네로처럼 나도 슬쩍  앉아보았다. 차가운 성당 바닥의 기운이 느껴졌다. 네로는 이 차가운 세상을 경험했다. 네로에겐 파트라슈외엔 아무도 없었다. 우유를 배달하며 남에게 영양을 주는 일을 하였고 화가가 되는 꿈으로 살았다. 네로만큼 내가 이 그림에 감동을 못한 것은 나의 경험이 어린 네로에 비해 아주 얕기 때문이 아닐까? 삶의 경험은 나이에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삶의 경험만큼 거장의 걸작은 관람자에게 드러난다. ‘영성적 눈(spiritual eye)’을 밝히지 않고는 선명하게 볼수 없다는 것이다. 그림도 세상도… 네로는 순수한 눈으로 이 그림을 깨끗하고 선명하게 보았다. 그렇기에 감동도 배가됐을 것이다. 어린 네로가 멀리 한국에서 온 순례자의 마음속에 다시 부활함을 느꼈다. 파트라슈가 꼬리를 흔들며 옆에 서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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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폴 루벤스
안트워프의 성모 대성당. 이 성당안에 루벤스의 걸작이 있다.
독특한 플레미시(Flemish)풍 건물.
성당 옆 광장.
거리엔 중세의 냄새가 묻어있다.
멀리서 바라 본 성모대성당.
성당에서 왼쪽 편 광장. 플레미시 풍의 건물이다.
네로와 파트라슈
도요타 회사에서 기증한 네로와 파트라슈 동상. 일본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으며 사진을 찍는다.

그림: 'The Descent of the Cross'. 1612-1614. Peter Paul Rubens. Oil on panel. 420.5 cm × 320 cm (165.6 in × 130 in). Cathedral of Our Lady, Antwe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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