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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y 27. 2017

렘브란트 그리고 용서...

예술사-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61–1669)의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는 튜울립이 활짝 핀 네덜란드를 떠나 추운 나라 러시아의  페테러스부르그(피터스버거. Petersburg) ‘허미티지(the Hermitage. 에르미타쥬)’ 박물관에 걸려있다. 이 네들란드 출신 바로크 거장은 몇 년을 걸려 죽기 2년전 1669년에 이 명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때는 렘브란트가 재정적으로 모든 걸 잃은 상태였다. 특히 몇이나 되는 자식들과 두 부인도 차례로 잃었고 경제사정도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시기는 달고 쓴 인생을 다 맛본 거장의 황혼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명작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완성됐다. 그의 인생괘적은 높낮이가 다른 음계처럼 출렁이며 그의 예술도 그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 렘브란트는 일생동안 많은(약 100점 정도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가 남긴 자화상만으로 그의 인생궤적을 따라가다보면 자화상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자서전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다. 이 거장의 말년은 그가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기록한 말년의 자화상처럼 쓸쓸했고 그는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구역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 ‘돌아온 탕자’ 그림은 너무 많이 알려졌고 또 보는 이의 감동을 자아내는데 워낙 유명해 보는 이에 따라 해석도 여러가지로 달리 할수 있다. 렘브란트와 같은 네덜란드 사람인 ‘헨리 러웬(Henry Leuwen)’ 신부는 이 그림을 모태로 책까지 썼다. 영국의 미술사가인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는 “레닌그라드(페테르스부르그)에 있는 이 그림을 본 사람은 세계 최고의 걸작이라 평해도 용서받을 것이다.(a picture which those who have seen the original in Leningrad may be forgiven for claiming as the greatest picture ever painted.)"라고 논평했다. 덧붙여, 렘브란트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로젠버그(Rosenberg)는 이 그림을 ‘기념비적(Monumental)’ 명화라 깨끗하게 한마디로 평했다.

우선 이 그림의 주제는 그림 제목처럼 신약성서 루가 복음서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The prodigal son. Luke 15:11-32)’ 이고 물론 그 내용은 용서가 주제이다. 이 비유는 루가 복음서에만 나오며 전통적으로 사순 제 3주 또는 4주 주일미사의 복음이다. 어떤 아버지가 두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자기 몫의 유산을 받아 외지에서 다 탕진하고 만다. 갈때까지 가다가 끝내 돼지우리에서까지 일하게 되는 수모를 겪자 크게  뉘우치고서 아버지께 돌아가 이젠 아들이 아닌 일꾼으로 써 달라고 찾아온다는 이야기다. 노발대발 할줄 알았던 아버지는 오히려 달려나와 ‘돌아온 아들(탕자)’를 크게 반기며 살찐 소를 잡아 잔치를 준비하라고 한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며 아버지 곁을 떠나지도, 재산을 탕진하지도 않았던 큰 아들은 이런 아버지를 이해 못하고 화를 낸다는 줄거리다. 여기서 은유적으로 돌아온 탕자를 용서하고 반기는 아버지는 ‘용서하는 하느님’이고 탕자는 죄를 뉘우치고 회심한 ‘누구나’가 될 수있다. 이 두 인물이 이 그림의 왼편 반을 차지한다. 오른편 나머지 반은 앞쪽에 서있는 큰 아들과 앉아있는 일꾼(잘 차려입은 옷으로 보아 ‘세리’라고 보기도 한다.), 그리고 뒤에 한 여인(어머니일수도 있고 또는 일하는 여자일 수도)이 서있다. 왜 화상의 구도를 반반씩 나누었을까? 화해와 용서를 하는 이 두 중심인물이 중앙에 있질 않고 한쪽에 또 그외 인물들이 다른 한편에 배치한것은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자들이 스스로 역할 대입을 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리라.

그럼, 우선 인물 각각을 살펴보자. 우선 돌아온 아들을 반기며 끌어안고 있는 늙으신 아버지이다. 수염은 길게 나있고 머리도 빠진 것같다. 특히 이 아버지의 눈을 주목해 보라. 보통 눈엔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확대해보면 늙은 노인의 눈은 시력이 이미 감퇴한 듯이 눈꺼풀이 아래로 축쳐져있고 또렷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수있다. 어떤 미술사가들은 아들이 떠난 후 계속 돌아오길 기다며 수평선을 매일 바라본 애타는 ‘부모심정’을 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집나가 고생하는 자식땜에 맘 편한 날이 없었던, 그래서 아들이 돌아오기만 애타게 기다리다 늙으신 아버지시다. 그리스 정교의 ‘아이콘(Icon)’처럼 아버지의 눈을 자세히보면 한 눈(눈동자)은 돌아온 아들을 향해 자비롭게 내려다보며 또 다른 눈은 바깥으로, 즉 관람자인 우리에게로 향하고 있다. 보통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눈처럼 한 곳에 초점을 맞춘게 아니다. 아이콘의 성모님 눈동자도 이렇게 의도적으로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그래서 보는 이는 ‘사실적(real)’이지 않기에 약간 이상하다고 보일 수 있다. 아이콘에서는 이를 ‘영원(Eternity)을 응시함'을 상징했으며 이 세상(on earth)만이 아닌 저세상(Heaven/Hereafter)를 이어주는 성화나 아이콘의 본래 의미, 즉 ‘창’ 이나 ‘문’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돌아온 아들의 어깨 위 아버지의 두 손을 보자. 오른 손은 작고 길며 또 가녀린 여성, 즉 모성의 손이고, 왼손은 더 크고 약간은 거친 남성, 즉 부성의 손이다. 이 그림의 아버지는 이렇게 ‘모성과 부성’의 역할을 동시에 함을 보여주기위해 거장 렘브란트는 의도적으로 두 손을 다르게 그렸다고 한다.

그럼, 이 아버지 앞에 꿇어앉은 측은한 탕자인 아들의 모습을 보자. 우선 행색이 말이 아니다. 아버지와 오른쪽에 서있는 형이 걸친 화려한 붉은 색 겉옷에 비해 이 탕자는 닳아 누추한 옷을 걸치고 있어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단번에 보여준다. 탕자가 걸친 옷은 찟겨져 꿇어앉은 그의 허벅지가 다 보인다. 돼지우리에서 일할 만큼 그의 삶은 갈 때까지 갔었다. 구약의 이스라엘인들은 모세오경 ‘레위기’에 쓰여진 유대인의 정결례에 따라 돼지는 불결한 동물이며 그래서 유대인들은 무슬림처럼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 그만큼 죄악의 불결한 동물이란 뜻이다.  예수님이 악마들린 사람을 치유할때도 악령은 다른 동물이 아닌 돼지에게 옮겨갔다는 또 다른 성서 구절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런만큼 둘째 아들이 돼지우리에서 일했다는 것은 종교문화적 상징성도 크다. 이 아들의 삶을 또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다 헤져 뒷축이 닳아 없어져버린 슬리퍼다. 그것도 아버지를 보자마자 달려와 그대로 꿇어앉았는지 왼쪽 슬리퍼는 벗겨져 있다. 그리고 벗겨진 거친 왼쪽 발바닥을 관람자에게 그대로 다 내 보이고 있다. 이제 남은것은 아무것도 없고 잃을 것도 아무것도 없다. 세상의 끝에서 인생의 끝자락에서 오직 ‘용서빌기’ 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그에게 털끝만큼의 기대도 없다. 이는 그의 삭발한 머리를 보아서도 알수 있다. 혹자는 머리칼 속 들끓는 ‘이’로 인해 삭발했다고 하며 이는 얼마나 그가 거친 삶을 살았는지 요약해 보여준다.

그림의 오른쪽에 당당히 서있는 큰 아들은 보이는 그대로 붉은 값비싼 옷을 걸치고 아버지와 동생을 바라보고 있다. ‘정석’대로 살아온 이 큰 아들에겐 ‘뉘우침과 용서’라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회한’이 없다.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이 용서의 ‘신비(Mystery)’를 이해 할수 없다. 그의 머리엔 1은 1이고, 1에다 1을 더하면 2가 된다는 건조한 논리로 꽉차있다. 법대로 살아 온 그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이 그렇게 나무랐던 율법만 고집한 바리새인들과 사제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이란, 그리고 용서란, 이런 고지식한 율법주의만도 아니고, 수학적, 과학적 논리나 공식과도 다르다. 이런 논리를 가진 큰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를 다 써버리고 수치스럽게 탕자가 되어 돌아온 동생이 받아야 하는 것은 ‘그에 맞갖는 엄벌’이다. 이게 큰 아들이 생각하는 ‘정의(Justice)’인 것이다. 돌아온 탕자를 위해 쌀찐 소를 잡아 잔치를 여는 아버지를 그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


아버지는 이 큰 아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죽었던 동생이 살아왔는데 잔치를 여는것은 당연하고 또 기쁘단다. 그는 (생명을) 잃었다가 다시 찾았기 때문이지(But it was appropriate to celebrate and be glad, for this, your brother, was dead, and is alive again. He was lost, and is found)” Luke 15:32

아버지의 용서와 탕자 동생의 뉘우침은 물 한방울 없는 건조한 사막인 그의 마음에서 자라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큰 아들은 앉지도 않고 그냥 서서 이해불가능의 장면을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두 손을 맞잡고 있는 그가 어떻게 보면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도 같다. 적어도 이런 사고를 가진 큰 아들도 이 그림에선 아버지와 동생을 떼어 놓는다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그저 이해할수 없다는 식으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그림의 전체적 분위기를 보면 램브란트의 특징인 밝음과 어둠을 대조시킨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선 또 어두움을 배경으로 감싸고 그래서 ‘동적’이라기 보단 ‘정적’이고 엄숙함의 효과가 묻어나온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중심 덕목인 이 ‘용서와 화해의 신비’를 이런 정적인 분위기로 잘 드러내고 있다. 돌아온 탕자의 뉘우침과 감사의 눈물 그리고 고대하던 아들의 귀향에 기쁨에 넘친 아버지의 환희을 상상할수 있지만 이 그림에선 이런 감동을 내면화시켜 ‘정제’되어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밝음과 어둠의 대비에서 가져오는 효과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의도적으로 밝게 처리해 관람자의 시선을 가져오려는 것은 아버지의 ‘정면 얼굴’과 큰 아들의 ‘측면 얼굴’이다(탕자의 얼굴은 뒤로 가려져 있다). 이는 관람자 스스로 아버지의 용서하는 얼굴과 이 큰 아들의 용서못하는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대비시켜보라는 뜻도 된다. 많은 미술사가들과 비평가들은 렘브란트 자신의 굴곡진 삶을 성찰해 탕자의 모델로 썼다한다. 그래서 이 성서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본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왜 이 신비의 장면을 응시하는 이해 못하는 큰 아들의 얼굴을 밝게 처리했을까? 주인공은 사실 아버지와 탕자가 아닌가? 개인적 소견으로, 큰 아들은 단순히 이 두 주인공을 응시하는 방관자가 아니며 거장 렘브란트가 의도적으로 밝게 드러내 보여주는 그의 얼굴에서 이 그림을 풀어내는 열쇠가 있다고 본다. 이 밝게 처리한 큰 아들의 측면 얼굴도 화가 자신이 한때 예술가로서 유명세를 타고 오만방자했던 시기를 나타내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헨리 너웬 신부도 비슷한 해석을 했다. 이 오만(Arogant)했던 시기가 결국 렘브란트의 재정적, 개인적, 그리고 가정적 파탄의 단초가 됐음을 그는 깨닫고 이 큰 아들을 화폭 한 편속 거의 반을 채워 그려넣었으며 또 그의 얼굴을 밝게 처리해 관람자들의 시선을 그에게 향하도록 그렸다. 돌아온 탕자인 동생은 이 용서의 거대한 힘앞에 이미 무릅을 꿇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편으론, 렘브란트에겐 이 모든 쓰라린 경험들, 심지어는 유명세까지, 이 커다란 용서라는 ‘비논리적’인 아버지의 사랑앞에 아무것도 아닌것을 이 무릎꿇은 탕자를 통해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가 특히 이 ‘탕자의 비유’ 성서 말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는데서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다. 그가 이 비유를 그린 스케치, 에칭, 드로잉 그리고 유화까지 몇 십년(1636년부터)을 두고 이 비유를 표현할 방법을 연구했다 한다. 그래서 이미 뉘우치고 용서를 구한 탕자는 뒤만 보여주고(과거형), 아직 ‘용서와 화해의 신비’를 못 깨달은 미망의 ‘현재 진행형’으로 서 있는 큰 아들의 얼굴을 역설적으로 밝게 했다. 이로인해, 렘브란트는, 관람자들, 즉 "우리"가 바로 이 큰 아들일수 있으며, 이 큰 아들이 응시하는 사랑의 신비가 발생하는 그 장면으로 우리를 이동시켜 용서와 화해의 근원인 하느님의 사랑을 보고 깨닫도록 유도한다. 즉, 용서하는자와 용서받는자가 하나(union)가 됨을 응시하는 큰 아들을 통해 그가 ‘용서받을 것도 없고 용서 하지도 못한다’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렘브란트는 ‘용서받기와 용서하기’가 가능함을 이 그림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을 통해 렘브란트는 관람자의 잠자는 영성(Spirituality)을 조용히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그림: Rembrandt van Rijn,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262 cm × 205 cm. Hermitage Museum, Saint Peters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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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시력을 다한 아버지...
둘째 아들의 슬리퍼. 그의 인생역정만큼이나 닳고 헤어졌다.
모정의 손과 부정의 손.
거만하게 우뚝 서 이 용서의 신비를 바라보나 이해 못하는 큰 아들. '나' 자신이 아닐까?
한창 때의 렘브란트.
깃털 장식을 꽂고 멋을 부린 젊을 때의 렘브란트.
자...세월이 흘렀다. 육체도 정신도 변했다.
생애 후기, 산전수전 다 겪은 후의 렘브란트. 지혜와 예술의 깊이는 더 밝고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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