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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y 27. 2017

미술사란 무엇인가?

예술사-한과목 폐지된다고 세상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케이트 캠브리지 공작부인이 베르미어(Vermeer)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감상하고 있다. www.telegraph.co.uk


예술(Art)은 무엇인가?


정답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엄청 팔린 'the Story of Art'를 쓴 예술사가 '곰브리치(Gombrich)'는 말했다.

'예술가만 있고 예술은 없다.'

그래서 사실 예술 얘길하면 가끔 뜬구름 잡는 이야기 일수도 있다. 대학 수업시간에 예술사를 공부하면서 자주 멍하니 앉아 이런 생각을 했었다. 한줄기로 그저 쭉 그은 선(line) 하나, 무덤덤한 자연속에 항상 보이는 그 색깔(colour), 무심한 인물의 일상적인 동작(movement) 등 그저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이런 것들을 붙잡고 씨름하며 해석한다는게 사실 '뜬구름 잡는' 게으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렸다. 왜 쓸데없이 이 공부를 할까? 가끔 이게 '밥먹여 주냐?'로 경제성과 실용성의 잣대로  가차없이 코웃음을 날리며 무시했다.

그러나, 예술(회화, 조각, 건축, 음악 등)이 우리의 정신세계와 막바로 연결되고 바로 그 정신의 표현이란 사실을 알고부터 한 획, 한 색채, 한 동작이 예사롭게 보이질 않았다. 가시적인 것에서 비가시적인 정신을 읽어내는 작업은 힘들었다. 칸트와 하이데거의 스스르 잠이 오는, 도대체 이해못할 '미학(aesthetics)'을 그저 이들이 중요하게 다루었다는 사실 하나로, 그리고 제목만 보고서도 예술이 '진리'와 관계되며 진리를 내포함을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예술사란 각 시기의 예술품들을 공부하며 글자 그대로 예술과 사학이 합쳐진 학문이다. 즉 예술품들이 역사적 시기에 따라 어떻게 변하며 흘러왔는지, 또 '뭐가 왜' 다른지, 만약 다르다면  당시의 인간 의식구조도 달랐었는지를 분석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당시 인간의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동시에 재구성하며 그것을 동시대인의 눈으로 바라보며 인간을 알아가는 공부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사는 지금 현대의 정신세계도 사실 과거 정신세계의 발판위에 있으며, 과거의 이해없이 현재를 이해못할 것이며 또 심각한 장애가 올수도 있다(All work is made in reference to what came before)는 사실이 잘 말해준다. 이런 진화론적 예술사적 시각과 다르게, 각 시기의 독특한 스타일이나 각 예술가의 창조적인 예술작품도 겉으론 달라보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속을 구성하는 '뼈대(structure)'는 같다고 한 '구조주의의 철학'으로 예술사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한편으로, 예술은 예술 그대로 봐야지 마르크스 주의나 페니니즘 그리고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해선 안된다고 하며 예술은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는다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을 소리높여 주창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속을 파다보면 이렇게 분파와 다른 방법론을 가지고 예술을 분해 분석한다. 그리스 철학자를 빼더라도 흄과 칸트, 헤겔과 쉴러, 하이데거와 가다머, 벤야민 발터와 아도르노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과 데리다까지, 심지어 지젝까지, 어느 누구 예술에 대해 거론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여행을 가더라도 유럽의 미술관과 고딕성당들이 항상 여행 목록에 끼이고, 쉽게 볼수있는 아트 데코 장식의 호텔에 머물수도 있으며 요즘 많은 거리의 공공미술을 접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예술은 인간만의 특징이고 자존심이며 한 나라 문화의 자부심을 대표한다. 그래서 예술은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아우러는 인간문명의 총체이다. 고딕성당을 보라. 신학과 건축이, 회화와 조각이, 음악과 문학이 교류하는 공간이다. 즉, 하늘과 땅이, 창조주와 인간이 만나는 장소이다. 영국에서 예술사가 학문으로 발달한 건, 독일에서 먼저 발달한 이 과목이 나치를 피해 영국이나 미국으로 이민 온, 특히 유대인 지성들의 공헌이 지대하다. 곰브리치는 물론이고 파노프스키도 그 예이다.

사실 2017년 초 영국에선 예술사 과목이 몇년 후부터 A-레벨에서 폐지된다고 난리였다(실용적인 'Art와 Design'이란 과목은 그대로이다. 너무 반대가 심하자 다시 없던걸로 했다.). 대학입학을 위한 이 시험에서 폐지된다면 많은 학생들이 예술사를 도외시 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은 걱정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렘브란트가 흐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예술사 과목은 일년에 거의 몇만 파운드를 내며 다니는 사립학교(independent schools)에서 대부분 가르친다. 그것도 몇백명의 학생(겨우 800명 정도)이 이 과목을 A-레벨에서 선택한다. 겨우 15% 넘을 정도인 사립학교에서 이런 '희귀한(?)' 과목이 개설되 있지, 공립학교에선 거의 이 과목을 가르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비싼 돈내고 다니는 사립학교 학생이 나중에 옥스포드나 켐브리지 학생의 반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말에 어패가 있지만 영국 지배층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립학교 학생들은 이런 문화와 예술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예술을 접할 기회를 차차 잃을 것이며 예술의 계급화를 더 공공히 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리고 이는 미술관과 전시회를 찾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고 신문들은 말한다.

은연중 계급사회인 영국에서 이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즉, 예술에 관심을 갖고 즐기는 부류는 상류층이란 말이다. 그 아래 대부분 사람들은 직장갖고, 돈벌고, 먹고살기 빠듯한데 무슨 뜬구름 잡는 예술타령을 할수 있을까? 이건 미술시장의 구조를 보면 더 확실해 진다. 그리고 런던의 부유한 동네인 첼시와 켄징톤엔, 특히 Kings Road 란 거리엔 화랑과 미술품을 취급하는 숍들이 고객들을 맞고 있지만 런던의 다른 대부분의 동네에선 '파운드 숍'이 손님을 맞고 있다.

오랫동안 선진국의 지위를 누려온 영국은 대학에서 예술사 BA(스코틀랜드에선 4년 MA) 전공은 사학과와 직접 그림과 조각을 가르치는 아트 스쿨에서 독립돼 거의 30여개 대학에서 가르치며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우리나라에도 있나?). 그러나 예술사란 과목은 교양적인 과목이란 이미지가 강하게 풍기기에, 또 기술을 가르치는 실용학문이 아닌 생각하는 인문학이기에, 어디에 취직을 할수 있을까? 미술관과 박물관은 아주 제한적이다. 그럼 교사가 될수도 있을까(과목폐지로 어떻게?). 대학원에 진학해서 교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소수일 것이다. 그리고 아주 더 소수의 뛰어난 졸업생은 미술전문가가 되어 예술품과 부유층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할 수있으며 유명한 옥션 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활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30여개의 대학에서 공부한 많은 인원중에 과연 몇명이? 또 몇명이 맥도날드 매장에서 일할까?

가끔 영국에선 비아냥으로 예술사 학위를 '칵테일 파티 학위(Cocktail Party Degree)'라고 한다. 비록 나중에 지리학으로 바꿨지만 윌리암 왕자와 케이트 왕세자비가 대학에서 이 과목을 공부했다고 한다. 이들이 전공했기에 이 상류층 '칵테일 파티 학위'란 인상과 별명은 더 공고해졌다. 즉, 이 학위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가지려 전공하는 과목이 아닌 철저히 상류층 사교계의 교양과 파티에 종속되는 통과의례 공부란 것이다. 사교계의 어느 파티에 잘 차려입고 가서 와인잔을 한 손에 우아하게 들고 르네상스 거장들의 종교화 이름을 언급하거나, 바로크 거장들의 작품을 해석한다든가, 아님 잭슨 폴록이나 앤디 워홀의 작품을 가지고 이야기 나눌때 '만약' 끼이지 못하면 사교계에선 왕따이다. 가끔 야만인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최근에 베르미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앞에 선 케이트 왕세자비의 사진(위의 사진)을 앞다투어 보도한 언론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이런 상류층 명품의 이미지와 대중의 상류층에 대한 호기심과 심리적 욕구를 미디아는 그대로 전달해 주고 있다. 그렇기에 신문에선 확실한 통계없이 이 예술사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대학졸업 후에 안간힘을 다해 직장잡으려 애써는 평범한 젊은이가 아닌 졸업후에도 직장잡으려 난리칠 일없는, 먹고사는 일 걱정없는 부유층 금수저 자제들이 이 공부를 한다고 한다(정말일까?).

그래서 이 예술사 과목이 A-레벨 과목에서 제외되면 이런 계급간의 불균형은 더 심해지고 예술은 오직 상류층만 즐기는 것으로 영구화될 것이란 의견에 이구동성 염려한다. 어느 영국신문이나 이 예술사를 논할때 계급(Class)를 논하지 않은 신문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예술의 기호를 상류층만 즐기는 건 사실 아니다. 우선 예술에 대한 관심이 영국에선 지대하다. 예술 프로그램은 아주 대중적인 tv에 자주 나오고 베스트셀러 도서 목록엔 예술사나 예술가에 대한 도서는 항상 끼인다. tv에서 아예 예술사 프로그램으로 연예인만큼 인기를 끄는 사람들도 많다. 콜롬비아 대학 예술사 교수인 영국인 '사이몬 샤마' 교수나 '앤드류 그래함-딕슨'은 좋은 예이다. 이들보다 훨씬 전에, 예술사학자인 '케네스 클락(마릴린 몬로와 한때 사랑에 빠진. 영화로도 만들어짐. 아들은 유명한 보수당 국회의원)'의 '문명(Civilisation)'이란 프로그램은 BBC 프로그램으로 몇십년전에 만들어졌으나 dvd로 책으로 뿐만 아니라 아직도 사람들은 그의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이야기한다(youtube 에 있음). 이런 예는 예술품의 기호(taste. 취미/취향/미감/맛.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에 대해 프랑스 사회학자인 '부르디외(Bourdieu)'가 말한 '자기보다 높은 계급의 소비 패턴'을 따라하려는 심리적 욕구의 표현에 딱맞는 예이다. 그리고 현대의 대중적인 tv는 이를 잘 충족시켜주고 있다.

그래서, 사실 예술의 대중화(예술을 즐기는)는 실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특히나 디지탈 문화의 보급으로 이 대중화 보편화는 더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굳이 실용적이지 않고 소수의 사립학교 전유물이 된 이 과목을 굳이 이유를 대며 A-레벨에 잔류시켜 놓기도 뭐하다. 그러면 곧 상류층 자제들 땜에 이 과목이 포함됐다고 떠들며 비판할 것이다.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겐 하여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예술사 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이런 사회의 계층화가 어릴때부터 공고해져 버리면 시대를 이끄는 예술의 주도자들(예술가들과 예술사학자들)은 항상 상류층에서만 나오게 되버린다는 것이다. 영국의 고질병인 계층간 이동은 점점 더 어려울 것이란 말이다. 그러면 일반대중은 능동적 참여자가 아닌 상류층을 항상 선망하는 수동적인 대중 소비자로 고착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인 것같다. 영국에서 유명한 '코트올드 대학(Courtauld Institute of Art)'은 예술사에 초점을 둔 미니 대학이며 이 대학이 영국의 여러 대학들 중 사립학교 출신 비율이 높은 대학들의 상위를 항상 차지한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이를 보면 얼마나 어릴때부터 예술사란 과목은 일반 평범한 가정출신의 젊은이들과 괴리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럼 무엇이 해결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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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언덕의 파르테논 신전
아직도 잘 팔리는 곰브리치의 예술사. 유럽 중심적이라 비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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