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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y 28. 2017

카라바지오가 보여주는 깨달음이란?

예술사-카라바지오의 '묵상중인 예로니모 성인'


촛불로 불밝힌 바로셀로나 교외 몬세라트(Montserrat) 수도원의 어두침침한  성당안에서 걸어나오면 갑자기 촛불없이도 훤히 밝은 광장이 나온다. 옛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보다도 작은 광장이지만 가파른 산 중턱에 걸쳐 있기에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산세도 좋고 올려다보는 산세도 좋다. 이 조그만 산속의 광장 가운데 서면 한 폭의 동양화속에 자신이 들어가 있는 듯하다. 꼭 ‘담재 정선’의 산수화, ‘신묘년 풍악도첩’에 보이는 기암괴석들이 이 몬세라트 산 정상에 가지런히 솟아있다. 그래서 이름이 톱니(Serrated mountain. ‘Mont’는 산 그리고 ‘Serrat’은 톱니.)산 이라고 이름을 붙였는가 보다. 바로 앞에 보이는 바위산 위에는 케이블 카가 오르락 내리락 하며 속세의 관광객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광장 한편에 산세를 즐기며 걸터앉아 쉬고있는데 한 장의 포스터가 달랑거렸다. 숀 스컬리(Sean Scully)의 그림이 있다고 하는 미술관(박물관)이었다. 숀 스컬리? 그의 이름은 악명(?)높은 영국 ‘터너 프라이즈(Turner Prize)’로 익히 들어왔는데 그런 컨템포러리(contemporary) 작가의 그림이 이 산속 깊숙한 중세의 수도원 미술관에 소장되있다는 것이 초현실(surreal)적이었다. ‘얼른 가보자..’

수도원 왼쪽에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미술관이 있었고 자세히 보니 서양미술사 전체를 ‘요점정리’한듯이 보여주는 각 세기와 유파의 유명 화가들의 이름들이 주루룩 나열되어 있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미술관 숍이 나오고 거기에 매표소가 있었다. 전시장 입구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이 미술관은13세기부터 18세기까지는 베루게트(Berruguete), 엘 그레코(El Greco), 카라바지오(Caravaggio), 티에폴로(Tiepolo) 등등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었고 바로셀로나가 속한 카탈로니아 지역 미술가들의 작품도 다수 있었다. 그러나 단번에 주목을 끄는 것은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수있는 거장들의 작품들이 이 미술관에 골고루 전시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작품수로는 얼마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을 보고 작품을 대한다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더구나 이 깊은 산중에서.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인 모네(Monet), 시슬리(Sisley), 데가(Degas)와 피사로(Pissarro)의 작품이 있었고 샤갈(Chagall) 브라끄(Braque), 미로(Miró), 달리(Dalí), 피카소(Picasso) 등도 있었다. 심지어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같은 건축가의 작품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화가중 한명인 루오(Rouault)의 작품도 그 사이에 끼여 있었다. 파리의 소르본 대학 성당에서 본, ‘중광 스님의 ‘선화’처럼 간결한 검은 물감만을 사용한, 그의 ‘십자가의 길’ 14처 그림이 떠올랐다. 이름만 들어도 미술사 전체를 관통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슬슬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입구에 다다르자 왼편으로 중세의 교회 미술품을 전시해 놓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방에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지오(1571-1610. 원래 이름은 Michelangelo Merisi. 르네상스 3대 거장 미켈란젤로와 이름이 같아서 출신지를 따라 카라바지오로 불린다.)의 ‘묵상중인 성 예로니모(St. Jerome in meditation)’가 눈에 들어왔다. 미술관쪽에서 아예 특별 표지판을 달아놓아 쉽게 눈에 들어왔다.

예로니모 성인(St. Jerome. 347 – 420. 영어론 제롬.)은 초대교회 교부로 특히 그의 라틴어 성서번역은 불가타(Vulgate)번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베들레헴의 “성탄 성당(the Nativity Church. 매년 성탄절마다 tv로 생중계하는 베들레헴의 예수탄생 성당)” 옆에 있는 동굴에서 성서를 번역했다고 알려져 있고 지금 그 동굴엔 채플이 봉헌되어 순례자를 맞고있다. 그로부터 약 천년의 시간이 흐르고 카라바지오가 활동하던 당시에 예로니모 성인은 중요한 그림의 소재가 되었는데 이는 은수자적인 그의 삶과 여러 흥미있는 일화들 그리고 당시 반-종교계혁 (counter-reformation)의 심볼 중의 한사람으로 그를 소재로한 그림이 인기 있었다. 특히 가톨릭 교회가 그의 성서 번역인 불가타 번역본만을 스탠다드로 용인함으로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대한 그의 상징적 가치는 더했다. 카라바지오도 이 성인을 자주 그렸는데(8번 정도) 지금은 오직 세 작품만이 남아있고 그 중의 한 작품인 이 그림이 이 수도원 미술관에 걸려 있었다. 이 작품의 주제를 카라바지오 자신이 직접 선택했는지 아니면 부유한 후원자가 부탁해서 그렸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 작품이 빈센조 쥬스티니아니(Vincenzo Giustiniani. 카라바지오의 후원자로서 부유한 은행가)와 그의 형제인 Benedetto 추기경의 소장품(collection)으로 알고 있는데 특히 이 추기경은 종교미술 애호가로 많은 소장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몬세라트 미술관 작품은 ‘몰타’의 성 요한 공동 대성당(St. John’s co-cathedral)에서 보았던 카라바지오의 걸작인 “세례자 요한의 참수(Beheading of St. John the Baptist)’보다 훨씬 작은 스케일이었다. 하지만 똑같은 성인을 그린 ‘글쓰는 예로니모 성인(St Jerome in writing)’ 은 주제면에서나 사이즈로도 비슷하였다. 로마의 보르게세(Borghese) 미술관 소장인 그의 예로니모 성인 그림은 주제나 구도가 거의 비슷했다. 그의 작품이란 걸 단번에 알아볼수 있도록 한 것은 그의 사실적이고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 선명한 붉은색, 백색 그리고 빛으로 드러난 살색의 구별이었다.

여러모로 카라바지오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이 작품은 관람객에게 심오한 철학적이고도 신학적인 물음을 던진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느 누구도 피할수 없는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가끔 우리가 천년 만년 살것으로 생각하고 ‘만년 청춘’으로 망각하고 살지만 이 그림은 늙어서 노인이 된 예로니모 성인의 쭈글쭈글한 몸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아니 ‘키아로스쿠로’ 기법으로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인간의 육체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자 보아라. 오만한 너도 이렇게 된단다’ 하는 것같이. 성인 이마의 주름살은 인간 지혜를, 뱃살에 들어난 주름은 인간 탐욕을, 그리고 그의 손등에 드러난 주름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다할수 있다는 인간오만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며(로마 보르게세 미술관의 그의 작품에 주름살을 천으로 덮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모두 하느님 앞에선 보잘것없는 인간 한계와 인간조건을 보여준다. 성인의 얼굴은 관람객을 향하지도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않고 자신의 내면을 향하듯 고개를 약간 수그리고 상념에 잠겨있다. 오른손으론 그 숙여진 상념의 머리를 받치고 깊은 신비(mystery)속으로 즉 묵상(meditation)중에 있다. 잠을 자고있는 것이 아닌 영혼이 깨어난 상태로의 깊은 묵상에 몰입해있는 것이다. 건데, 뭘 묵상하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다시 보면 육체적인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로 겨우 책상 모퉁이를 잡고 버티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그가 잡고 있는, 삶에서 그를 지탱시켜준, 책상은 또 무엇인가? 평생을 걸쳐 주님의 말씀인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그 학자의 책상이 아닌가. 한 인생을 바친 그 심볼 앞에 그리고 자신이 바친 일생에 성인은 “왜(why)?”라고 의문을 던진다.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던지는 질문도 아닌 지금은 피골이 상접하고 머리가 다 벗겨진 한 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한 노인 신학자가 던지는 말이다.

그의 벗겨진 머리는 은수자로, 사제로, 그리고 번역가로 열심히 산, 그의 이력으로 보이며 또 그로 말미암아 지식의 빛을 발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지식으로 말미암아 겸손하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성인다운 자세일수도 있다. 음영이 살짝 드리워진, 고개가 숙여져 어둡게 처리된, 그의 얼굴에선 이런 인간의 지혜가 더 큰 신비인 하느님의 지혜속(바탕색인 짙은 검은색)에 감추어져있다. 삶과 죽음의 그 중간상태이다. 명암으로 즉 키아로스쿠로로 표현하기 힘든 그 경계의 상태를 보여준다. 성인의 숙여진 얼굴은 하느님을 따른 그의 삶이 이제 서서히 하느님의 더 깊은 지혜와 신비속으로 침몰해 들어감을 암시한다. 그것은 일종의 거룩한 프로세서(process)이며 인생의 순례(pilgrimage)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하느님께 돌아가는 성스러운 여정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앞에 뚜렷하게 보이는 해골이 있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햄릿이 해골을 들고 독백하는 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하는 것과 닮았다. 인간본질(human nature)을 슬쩍 건드린다. 이 해골은 그의 늙고 주름진 육체와 더불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고 세상 피조물 모두가 맞아야 하는 절대운명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카라바지오는 이 두 상징을, 늙은 몸과 해골 또는 삶과 죽음을 부각시키며 뭘 말하려는 것일까? 우선 성인의 몸을 덮은 천의 색깔을 보자. 적색과 백색이다. 적색은 삶의 고통(passion)을 보여주며 백색은 순수와 축복을 의미한다. 적색은 또 순교자의 색깔이다. 주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따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론 이 세상에서 모두 순교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백색은 축복과 부활의 상징이다. 삶은 이 세상 삶만이 아닌 또다른 삶을 암시한다. 이 세상 삶이 다는 아니다. 다만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의 기간이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자? 이 그림에서 삶이 모두 허황(Vanity/transitory)되다는 것을 카라바지오는 말하는 것일까?

삶은 ‘허(empty)’하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서 카라바지오가 삶이 허황하다는 곳을 보여주고만 마는 것일까? 아니다. 그림을 다시한번 자세히 보자. 해골도 성인도 모두 관람자쪽으로 시선을 향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림안의 성인과 해골은 서로 마주보는 듯하다. 성인은 고개를 약간 숙이며 삶에 경건한, 또는 겸손한 자세를 해골 앞에 취하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듯하다. 대신에 해골의 반은 성인의 얼굴과 같이 ‘반어둠’으로 덮여있지만 우리는 해골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알아 챌수 있다. 해골 즉 죽음은 관람자인 우리를 향하지 않고 피골이 상접한 노인을 향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성인의 전체를 응시하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이것은 cctv가 현대인의 일상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과 같다.

두렵지 않은가?

하지만 카라바지오는 단순한 ‘죽음의 공포’를 말하려는게 아니다.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서, 죽음이 삶을 규정하며 우리 일상의 자세를 바르게 위치시키는 것이다. 이에 성인은 성인답게 겸허히 곧 다가올 죽음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여기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탐욕도 오만도 질투도 시기도 없다. 카라바지오가 해골의 방향과 성인의 얼굴을 이렇게 의도적으로 배치해 놓음으로서 관람자인 우리에게 성인의 삶을 우리 삶의 표본으로 제시하며 성화시키고 죽음의 신비앞에 두려움 대신에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르쳐준다.

사실 죽음이란 꼭 삶의 마지막, 인생의 끝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죽음이란 삶속에 있다. 죽음을 삶의 끝에 위치시킨다면 삶을 의미있게 살아내지 못한다. 우리가 천년 만년 살것같은 오만함으로 가득채운 삶을 살아간다면 삶은 더욱 더 공허(empty)할 뿐인 것이다. 이 그림속의 해골로 상징된 죽음이 우리 하루하루의 삶을 응시(gaze)하고 있는 것이다. cctv처럼. 우리 삶의 여정을 통째(holistic)로 응시하는 것이다. 불편하다.

‘보아라. 나 죽음이 너 바로 앞에 있노라’.

그래서 사제나 수도자들이 바치는 ‘밤기도’에선 ‘잠’을 죽음으로 은유하며 다음날 새벽에 다시 ‘부활’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그래서 존재론적으로(ontologically) 삶은 할수 없이 ‘삶 자체’ 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죽음을 포함시켜야 삶이 규정(definition)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삶을 더 온전하게 살수있는 것이다. 그래서 키아로스쿠로같은 극단적 명암기법이 보여주듯 ‘빛’은 ‘어둠’없이, ‘어둠’은 ‘빛’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이 그림에서처럼 삶은 죽음이 배경이어야만 빛나고 죽음과 같이 ‘함’으로 역설적이다.

결론은, 예로니모 성인 앞의 해골은 누구의 해골도 아닌 바로 “성인 자신”의 해골인 것이다. 카라바지오는 성인의 두상과 해골을 의도적으로 똑같이 그렸다. 카라바지오는 삶과(성인의 육체)과 죽음(해골)을 동시에 한 폭안에 보여줌으로 이들이 같은 존재임을 암시한다 (그렇다. 원효대사가 당나라로 유학가는 도중 맛있게 마신 그 물이 해골에 구더기와 함께 담긴 물이었다는 걸. ‘진리’는 멀리 선진 당나라에 있지않고 ‘깨달음’에 있다는 걸. 깨달음은 누구도 아닌 자신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그걸 ‘깨달은’ 대사가 ‘발길’을 돌린걸.). 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인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해골을 앞에 두고서 묵상을 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진리의 ‘깨달음’에 의해 발길을 돌릴 수 있다면?…

카라바지오도 그런 삶을 살았다. 살인자로 도망자로 나폴리로 몰타로 쫒겨 다니며 살았다. 결코 순탄치 못한 삶이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진부한 말이 생각난다. 이 한폭의 그림이 던지는 강렬한 메세지에 과연 내가 발길을 돌릴수 있을까? ‘깨달음’과 ‘못 깨달음’의 차이일 것이다.

그림: ‘묵상중의 예로니모 성인(Saint Jerome in Meditation. c. 1605)’ by Caravaggio.
Oil on canvas. 140.5 cm × 101.5 cm (55.3 in × 40.0 in), Museo del Monasterio de Santa M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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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지오. 일생의 대부분을 도망자로 지냈다.
'글쓰는 예로니모 성인'.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셨기에 혹시 '번역중인 예로니모 성인'?
바로셀로나 근교, 몬세라트 수도원. 기암괴석 아래로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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